목회학(목회자론)
주 제: 목회학(목회자론)
학 번: 200451088
이 름: 김 소 망
목 차
I. 여는 글
II. 펴는 글
1.목회자의 소명과 자격
1) 목회자의 소명
2) 목회자의 자격
2.목회자의 기본자세와 목회 신학
1) 목회자의 기본자세
2) 목회자의 자질과 자기 훈련
3) 목회와 신학
3.목회자의 올바른 좌표
1) 목회의 목적
2) 목회자의 5대 과제
3) 목회지침
4.목회자로서의 준비
1) 영적인 준비
2) 지적인 준비
3) 실천적 준비
4) 바람직한 목회자의 아내
III. 맺는 글
I. 여는 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의 인류와 문화,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사회는 복잡한 사회 분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사회의 여러 구조와 제도들의 복잡한 분화는 각 부분들이 기능적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통하여, 상호 보완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다변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목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사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모든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는 하나님의 계시와 기독교회의 전통에 근거해야 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의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 세상 속에 실현하는 것이다.
목회는 성경적 기초위에서 수행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교회에게 구체적인 역사 현장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교회가 그 말씀에 응답하여 실천 하였던 기독교 전통과 연속성이 있어야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원하는 뜻을 이 땅 위에서 실천하는 목회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영광을 위하여 목회를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검증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저 유대인의 실수를 또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목회의 주체는 교회이다. 우리는 목사를 세워 하나님이 목회하게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근본적인 목사는 목회자라기보다는 지도자요, 인도자요, 감독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다 목회자로 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각기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와 이 세상에서 봉사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목사와 평신도의 구별은 없는 것인가? 모두가 목회자라면 목사의 독특성은 무엇일까? 분명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는 중대한 구별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사명을 받았으나, 이 사명은 훈련과 지도 감독을 받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없는 하나님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목사를 세워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며, 그들의 목회를 지도하며 감독하게 하신 것이다. 목사는 목회자나 모든 성도들의 목회를 훈련, 지도, 감독하는 사명을 받으면서, 구체적인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목회하는 사명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것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목회의 주체가 목사요, 교회는 세상을 소외시켜 버릴 수 있는 큰 과오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목사로서의 진정 추구하는 목회자의 바른 목적과 목자의 상,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끌리어 나가는 목회의 모습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펴는 글
1.목회자의 소명과 자격
1) 목회자의 소명
사람이 학교나 직업을 선택할 때, 자기의 능력과 소질을 생각하여 적성에 맞게 선택하는 것처럼 목회자도 하나님의 양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며 관리함에 있어서, 성공적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 여러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조건들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소명(召命=Calling) 이다. 임명 받지 않은 사람이 타국에 대사로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 즉 목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명을 받지 않고 목사직에 발을 디뎌 놓는 것은 실패를 자취(自取)하는 일이다. 목사직의 소명은 명령적이요, 불가피한 (imperative)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직을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나 사회적인 명예 획득이나 교양의 여가를 얻기 위한 동기를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이와 같이 목회직의 소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목사가 되지 않거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목사가 됨으로써 일생을 어려움 가운데서 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목사직은 자기가 하고자 함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누가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간의 노력이나 행동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다만 하나님만 따르른 것도 아니다. 목회자는 사죄의 복음을 짊어진 대변자요, 또한 전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과 이성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목사직에 관한 소명의 올바른 인식이 없이 목사직에 뛰어든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방해하거나 교회의 부흥을 저해 한다.
(1) 소명에 대한 정의(定義)
소명에는 2가지가 있으니, 일반 소명(General Call)과 특수 소명(Specific Call)이다. 하나님은 이 양자의 창시자이시며, 성령님은 이 양자 속에서 역사하신다. “일반 소명”이란, 크리스챤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자라는 말이다. 중세기에 있어서 성직제(聖職制)도 수도원 제도의 발달에 따라 직업에도 성속(聖俗)의 구별이 생겨졌다. 그리하여 교회에서는 성직만을 소명으로 불렀다. 그런데 종교 개혁을 거쳐 루터(Luther)는 “소명”이라는 용어를 모든 직업에 적용하고 성속의 구별을 철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책임 이수는 교직자나 평신도나 동일하다고 본다. 특수 소명은 성직자 자신의 힘과 이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인 각자 각자를 부르시는 일반 소명을 넘어서는 특수한 소명이다. 특수 소명은 목사직에 한한 소명이므로 누구나 할 수 없다. 칼빈이 “소명 없이 교회의 공적인 직무를 받은 사람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참된 봉사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사람이 옳게 부름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다음에 자신이 소명에 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특수 소명을 말한 것이다. 웹스터(Webster's) 사전엔 소명의 뜻으로 16가지 의미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다루고 있는 유일한 의미는 어떤 특수한 임무, 직분, 혹은 직업에로의 소환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파들은 전통적으로 목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명은 목사직으로서의 소명을 정의하므로 그의 말씀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일에 관계되는 기타 임무들을 부여 받았다는 내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이 소명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집행하시며 역사하신다.
(2) 목사적 소명의 증거
❶ 내적 증거
목사직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자부심과 함께 언제나 어디에서나 혹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영혼에 대한 열정
일반적으로 부름 받은 초기에는 내적 확신이 약하지만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강하여져서 나중에는 예레미야 선지 같이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란 고백처럼 되고, 바울 같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고 되어야 한다. 이는 선교의 긴급성(the imperativeness of the mission)에 대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목사는 소명을 통하여 내적 확신이 강하여지고 자신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변할 수 없는 확신이 생겨나야 한다.
둘째, 진정한 기쁨
목사는 자기의 소원이 주를 기쁘게 하기 위한 생활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사역은 영적 사업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진정한 감사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대하여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쳤으며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롬 11:13). 그래서 바울은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족할 줄 알았고 불평이나 원망이 없이 항상 감사함으로 충성하였다. 이와 같이 진정으로 부름을 받은 일군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진정한 감사가 넘쳐 난다.
❷ 외적 증거
첫째, 효과적인 사역
목사의 소명의 외적 증거 중 첫째는, 그가 하는 사역에 있어서의 효과에 있다. 하나님께서 삶을 헌신하도록 영향을 끼친 그들로부터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둘째, 타인의 지지
만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그를 부르셨다면 거의 필연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디모데전서 4:14과 디모데전서 1:6의 말은 만일 장로의 회(장로교 헌법에 의하면 노회를 두고 말함)에서 인정을 받지 목하면 안수를 받지 못할 것이요, 안수를 받지 못하면 목사가 되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손을 얹고 안수를 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에 대해 인간이 인정하는 것뿐이다. 노회 목사와 장로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교회 교인들의 지지도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목사와 교사로서의 은사의 확증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에게 기능을 주셨는데 그 은사 중의 하나가 목사와 교사로서의 은사(the gift of a pastor-teacher이다(엡 4:11). 이는「목사, 혹은 교사(Pastor or Teacher)로서의 은사」가 아니고 「목사와 교사(Pastor-Teacher)로서의 은사」이다. 목회자는 목자일 뿐만 아니라 교사이다.
2) 목회자의 자격
목회자는 단순한 직업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전능자의 사신이며,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이며, 진리의 해석자로서 고귀하고 거룩한 직분이다.
목회자가 됨에 있어서 소명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요소이나, 그 외에도 갖추어야 할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개인적인 자격
웟치만 니(Wachman Nee)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자」란 저서를 통하여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 자격에 관하여 다음 10가지를 열거하였다.
➀ 근면한 사람
➁ 견실한 사람
➂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➃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
➄ 말을 조심하는 사람
➅ 주관적이 아닌 사람
➆ 자기 몸을 쳐 단련할 줄 아는 사람
➇ 고난 받을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➈ 금전 문제에 성실한 사람
➉ 진리에 충실한 사람
디모데전서 3:1-7, 디도서 1:5-9, 그리고 베드로전서 5:1-3을 근거로 목사의 개인적인 자격을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❶ 하나님에 대하여
첫째, 근신하는 사람(딤전 3:2, 딛 1:8)
둘째, 의로운(Just) 사람(딛 1:7,8)
셋째, 거룩한 사람(딛 1:8)
❷ 자신에 대하여
첫째, 절제(딛 1:8)
둘째, 술을 즐기지 아니함(딤전 3:3, 딛 1:7)
셋째, 선을 좋아하는 사람(딛 1:7,8)
넷째, 비난 받는 일이 없는 사람(딤전 3:2)
❸ 가정에 대하여
첫째, 한 아내의 남편(딤전 3:2)
둘째,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을 잘 순종케 하는 자(딤전 3:4)
셋째, 나그네를 따뜻이 영접하여 잘 대접할 줄 아는 자(딤전 3:2, 딛 1:7)
❹ 교회에 대하여
첫째,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닌 자(Not a New Convert, 딤전 3:6)
둘째,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Able to Teach, 딤전 3:2, 딛 1:9)
셋째,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자
(Neither as being lords over God's heritage, but being ensamples to the flock,
벧전 5:3)
❺ 대인 관계에 대하여
첫째, 급히 분내지 아니해야 한다(Not Ouick Tempered, 딛 1:7).
둘째, 구타하지 아니해야 한다(No Striker, 딛 1:7).
❻ 세상에 대하여
첫째,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야 한다(Blameless, 딤전 3:2, 딛 1:6).
둘째, 아담해야 한다(Good Behavior, 딤전 3:2).
: 이 말은 “질서를 잘 지키는”(orderly), 혹은 “잘 정돈되어 있다(well arranged)" 라는 뜻으로 작업상에 가지는 규칙보다는 도덕상의 규칙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돈을 사랑하지 아니해야 한다(Not Covetous, 딤전 3:3).
❼ 사명에 대하여
첫째,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
(벧전 5:2)
둘째, 제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벧전 5:3)
(2) 개성상의 자격
➀ 진실성
➁ 경건성
➂ 침묵성
➃ 조화성
➄ 인내심
➅ 근면성
➆ 충성심
(3) 영적 자격
➀ 기도
➁ 성경 연구
목회자에게 있어 영적 경건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는,
첫째, 목사직을 직업시 하는 일이다. 그런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기도와 회개 등등을 평범한 기계적인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사명을 감당할 때 기쁨과 축복이 따른다(고전 15:10, 고후 12:7-10, 약 1:2,4,12).
둘째, 자기를 잊고 남을 교도하는 데만 진력하는 것
셋째, 자기 자신을 독특한 사람으로 자부하는 것
넷째, 과실이 있거나 교만하고 게으른 것
다섯째, 시기심을 갖는 것 등이다
2. 목회자의 기본자세와 목회와 신학
1) 목회자의 기본 자세
(1) 목회자의 권위
목회자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권위다. 권위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요청되는 교역자의 기본 문제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도 권위 있는 목회자를 요구하는 시대다. 오락 삼아 전도에 나섰든지 직업으로 생각하고 이 길을 택했든지 하여튼 어떤 자기만족의 테두리에서 움직이는 교역자가 아닌 정말 인간의 깊은 내적 고민의 세계에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권위의 목회자가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는 목회자의 생명이다.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웅변이 좋아도 목회자가 권위를 잃으면 그 지식과 웅변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것이며 맛 잃은 소금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해방 후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은 그 기틀이 되는 권위를 상실했다. 그 원인은 목회자의 최대 관심을 그리스도에게 두기보다는 교권과 정치에 두었고, 내용과 생명에 두기보다는 전통과 형식에 치중했으며, 신학과 파쟁에 두었기 때문이다. 고로 세상은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그런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목회자의 권위는 과거와 같이 어떤 형식이나 규율을 강요하는 외부적 제약이나 강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맞는 권위는 인간의 내부에 파고 들어가서 그 깊은 의지를 움직여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어 주는 굳은 신념과 높은 사상과 생활철학을 동반하는 인격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가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권위는 외적, 형식적,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정신적, 인격적 능력을 의미한다. 인도의 4억 대중을 움직인 것은 영국의 문화나 무력의 힘이 아니라 다섯 자도 못 되는 작은 키의 반 벌거숭이 간디의 인격의 힘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오늘의 세상 여론을 들어보면 기독교의 진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경의를 갖고 있으나 오늘의 기독교 지도자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존경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가슴을 쳐도 슬퍼할 줄 모르는 이 세상만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피리 부는 사람 자체에 무슨 이상이 없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부는 피리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멜로디를 낸다 해도 피리 부는 사람 자신이 관중들의 눈에 거슬리는 모양을 보여줄 때 그 연주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2) 목회자의 투철한 소명의식
성경은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헌신의 기본 사상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없이 신자가 될 수 없고 예언자나 전도자는 더욱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자천이 아니라 타천에 의해서다. 벧엘의 제사 아마샤가 아모스 선지자에게 왕성에서는 예언을 못하도록 금지했을 때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선지자도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자로다.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백성에게 예언하라 하셨다."
신자의 확신도, 예언자의 권위도, 전도자의 사명도 하나님의 성도(聖召)에서 온다. 예수께서 공생애에 나서면서 무리들을 부르실 때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고 또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자진해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의해서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헌신에 대해서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었다"고 하였고, 또 갈라디아서 1:5에서는 "내 모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하였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성소를 받은 위대한 인물 셋이 있다. 한 사람은 출애굽기 3장에서 4장에 기록된 모세의 성소요, 둘째 사람은 이사야 6장에 기록된 이사야의 성소요, 세번째 사람은 예레미야서 1장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성소다. 모세는 미디안 사막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감히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니 너는 두려워 말고 가라."고 명령하셨다.
예레미야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다."너는 열방에 가서 예언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 나는 어린아이라 말할 줄을 모르나이다" 하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을 바꾸지 않고 "내가 너를 복중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출생하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하였다.
이사야는 모세와는 달리 사막이 아니라 성전에서 소명을 받았다. 모세는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았고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환상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죄 많은 자신의 진상, 그리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발견하고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하고 순종하였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전도직의 발의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자진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에 의하여 헌신한 일꾼은 어떤 방해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사양할 수 없고 중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는 성직의 발단이요, 원인이요, 지속수행의 원동력이다.
(3) 목회자의 조화된 인격
조화된 인격은 기본적으로 정확한 사고로 진리를 분별하며, 모든 문제를 바로 판단하여 상담하며, 모든 성도들과 동고동락 할 수 있는 풍부한 정서, 그리고 양떼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견고한 의지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조화된 인격 위에 순수한 인간성을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나라고 하는 어떤 인간성을 어떤 장식품 속에, 성직이라는 법 옷 속에 숨기고 스스로를 인간 이상의 자리에 올려놓지 말아야 한다. 거짓 없는 마음씨, 그것이 곧 힘이다. 사람을 움직이고 그 깊은 곳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은 어떤 기교나 재능의 우수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진실한 마음에 있다.
목회자에게 때로는 정치적인 수완도 필요하고 방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목회자의 기본상은 역시 진실성에 있다. 내가 진실해야 생각도, 행동도, 표현도 진실할 수 있다. 고로 실존철인 키에르케고르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실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목회자는 모든 것에 앞서서 진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요사이 사회니 국가니 세계니 하는 전체라는 용어가 유행되어 개체의 진실성을 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현대인은 대중 속에 몰래 숨어서 행동하다가 무슨 수가 날 듯 하면 넌지시 나서고, 자기에게 해로울 듯 하면 뒷문으로 새어버리는 것이 요령 있는 처세술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간에게는 진실의 꽃이 영원히 피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는 다른 재주는 좀 부족해도 진실성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진실성은 목회자의 생명이요 인격의 전부다. 수완과 방법으로도 목회에 성공하는 예가 혹시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목사를 만나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또는 사나운 시어머니 앞에 선 며느리의 기분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목회자의 손에는 꼭 성경책과 찬송가, 그 입에는 비난과 꾸짖는 말만 함으로 청년들이 접근하는 데 언제나 거리감을 준다. 이런 태도가 목회자의 외부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현대인에게 존대를 받기는 어렵다.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다"는 성경말씀대로 참 목회자의 생명은 그 능에 있지 모양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 목회자는 모름지기 목사가 되기에 앞서 좋은 신자가 되야 하고, 신자이기 전에 먼저 순수한 인간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목회자는 대인관계에서 원만한 인품을 지녀야 한다. 목회자는 언제나 양을 기르고 치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여러 계층의 삶을 만나게 되고 많은 사람을 심방하게 되고 찾아드는 많은 사람의 상담에 응해야 한다. 목회자가 만나는 많은 현대인은 제각기 다른 내용의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사회가 복잡하고 기계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서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언제나 긴장상태에 있다. 고로 현대인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도 정신적인 균형을 잃어버리고 실패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이런 현대인을 지도하는 목회자는 언제나 적절한 판단과 부동의 신념과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적절한 충고와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4) 목회자의 기본 교육
목회자의 기본상의 또 하나는 충분한 기본 교육이다. 예수님은 전도 초기에 제자들에게 배우고 가르치라고 하셨고 그는 친히 제자들이 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의 종교운동은 그 당시로 끝나고 오늘의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목회자는 언제나 배우는 데 겸손해야 한다. 평소 목회자가 저지르기 쉬운 과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모르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알면서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아는 것은 힘이요 지식은 인생의 무기다.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요 배우는 것은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은 '생즉학' (生則學)이라 했다. 목회자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격변하는 사회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 적응력을 상실한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이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지식폭발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0년만 지나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지식은 모두 낡은 지식이 되고 만다. 새 시대에 창조적인 적응을 하려면 부지런히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 목회자가 부단히 새 지식을 흡수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젊은 정열과 시간을 다 바쳐 교회 성장에만 바치다 보면 일의 분량은 많아지고 생계는 넉넉지 못하여 서재는 빈곤해지고 모습도 초라해진다. 이렇게 될 때 목회자는 자신의 주변정리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사실 한국 목회자의 형편은 자신의 향상을 위해서 깊은 명상과 독서에 시간을 바칠 환경이 되어 있지 못하다. 이렇게 지나는 동안에 은혜의 감격도 다 잃어버리고 영감이나 사상적 내용도 없는 설교만 반복하게 된다. 케케묵은 사상과 생활의 때를 벗지 못한다. 이때는 하는 수 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 되어 끝에 가서는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보수니 정통이니 하는 것을 내세워 자기의 부족을 은폐하고 현재의 위치를 보존하려 한다.
이런 방편으로 방언의 은사를 내세우기도 하고 신유니, 40일 금식기도니, 또는 예언이니 하는 것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시적인 자기방어의 수단은 될지 모르나 계속적인 목회성공의 길은 아니다.
또한 배움에는 두 가지 정신이 필요하다. 하나는 겸손의 정신이요, 또 하나는 향상의 정신이다. 동시에 목회자는 열심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르치는 것이 바로 배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배우고 가르침으로 얻은 지식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저술이요 글이다. 말은 사상의 표현이요 지식의 전달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남지 못한다. 그렇지만 글은 영원히 남는다. 그 사람의 인격과 업적을 후대에 남기는 것은 저술이다.
2. 목회자의 자질과 자기훈련
(1) 목회자의 자질
요즘은 신학대학과 신학교가 많아서 많은 목회자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분들은 포화상태라고 말한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신학교 나오신 목회자들을 자질문제가 있다는 시비를 거는 경우를 본다. 마치 신학대학이 신학교가 목회자의 자질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를 깔보는 태도를 보이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본다. 개척 교회를 하거나 성도가 적은 교회는 능력 없는 목회자, 커다란 예배당과 성도가 많은 교회는 능력 있는 목회자로 통하는 시대이다. 달변과 학벌과 지식이 많은 설교자는 능력있는 설교자이며, 그렇지 못한 설교자는 무능한 설교자로 통한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기관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도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철저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사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적으로 되어 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목회자는 교단의 신학대학이나 신학교를 나오면 몇 년의 과정을 통해 목사직이 주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교단이 목회자를 주거나 선배 목사의 안수에 의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목사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질은 다음과 같다.
❶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뜻에 따라 목사가 된 것이다. 이것은 신학대학이나 신학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지 않고, 직업으로서 선택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격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지 신학대학이나 신학교의 교육의 질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❷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어야 한다. 택정함이란 원어로 ‘갈라놓다, 거룩하게 구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철저히 목회자가 자기의 의지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졌다는 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적용된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 학교의 명성이 권위가 목회자의 자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사람인가의 문제이다.
개척 교회, 지방 교회, 타교파 목회자에 대해서 성도들마저 깔보는 태도를 본다. 이것은 세상의 직업이 일정한 기준을 갖추어야 되는 것처럼 학위나 자격증으로 목회자도 결정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구별되어진 사람이다. 교파를 초월해서 목회자의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배당의 크고 작고, 성도가 많고 적고에 따라서 판단되어져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학벌에 의해서도 아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사람인가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즉 목회자의 자질은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판단으로 목회자를 재단해서는 안된다. 지식이 있고, 달변가가 없어서 한국 교회의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종이 적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성장이 멈춘 것이라고 생각된다.
(2) 목회자의 자기훈련
목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목사직을 직업시 하는 것이고, 남을 교도하기에만 전력하고 자기훈련을 하지 않는 것과 목사는 자기자신을 특수한 사람으로 자부하는 것이다. 또한 교만, 자기, 게으름 등의 과실이다. 목사의 영혼을 위하여 근심하며 힘쓰는 사람이 없다.
3) 목회와 신학
신중하고 질서있는 목회사역을 위하여서는 기초작업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 건물을 예로들자면 건물의 기초작업은 치밀하고 신중한 청사진(설계도)에 따라 세밀하고 신중하게 살펴서 철저하고도 질서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목회자에 있어 청사진(목회학의 근원)은 성경과 신학교육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목회의 기본적인 원리원칙 자체는 사람들이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폐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목회사역은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며, 온 양떼를 돌보도록 성령을 감독자로 삼고, 그의 지도와 도우심 그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로 두고 있다. 요한 웨슬러(John Wesley)는 “목회사역은 성경에 근거한 것으로 성경에 서 찾아야 되며, 인간의 이성이나 인간의 경험도 성경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교회의 기본적 본질 및 기능과 마찬가지로 목회사역도 교회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사역의 중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목회사역은 성경을 근원으로 하고 근원으로 한 말씀이 아니면 진리말씀의 개념을 바로 파악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목회자는 신학자여야 한다. 신학대학의 교수만이 신학자가 아니다.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된 사람은 신학자인 것이다. 목사가 신학자가 아니라는 말은 병원을 하는 의사가 의술을 모른다고 하는 것과 같다.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으면 'Master of Divinity'학위를 주는데 신적인 것에 관한 능통한 자라는 뜻이다. 신학(theology)이라는 말의 뜻은 '기도로 하나님과 함께 한다'라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신학함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글과 말 등은 보조적인 것일 뿐이다.
목회사역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직무이므로,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존귀와 영광의 사역이다. 윌슨(,Bishop Wilson)에 의하면, “하나님의 주관적 역사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의 긍지에 의해 지배되는 사역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한도에서 말하고 사람을 대하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신학적 토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칼빈도 목회사역에 있어서 신학적 근원을 강조하였다.
신학사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알려진 문제들은 목회자가 신학에서 배운 지식을 상황에 맞게 잘 응용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이유는 먼저 목회자로서의 영성을 갖추기 위함이고, 다음으로 성도들로부터 제기되는 각종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것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건강한 삶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런 교육을 통해서 ‘신학적 판단능력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신학적 판단능력을 위해 바른 인성과 전문가적 능력이 필요하다. ‘신학이 필요 없는 목회’가 이 땅에 성행하는 이유는 신학적 판단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신학적 판단능력이 부재’라 함은 문제에 직면해 신학에 근거해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성이 갖춰져 있지 않고 전문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단 목회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더 큰 책임은 신학함을 전문으로 하는 신학자에게 있다. 다시 말해 신학교육이 문제해결을 위한 능력을 배양하기 보다는 단순히 신학지식을 전수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교육의 상당 부분이 목회자 윤리에 집중돼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국 사회가 오랜 유교 전통으로 인해 윤리와 도덕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지나침은 분명하다. 또한 신학교육이 지식전달에만 매달려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신앙 전통으로 굳어진 신학지식은 이미 알려진 문재니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전해 주는 일에 매우 요긴하다.
하지만 그것은 신학을 질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한 결과이다. 신학을 형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때 문제를 신학적으로 인식한다. 또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결함에서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 원리를 제공한다. 곧 신학의 과제 중에 하나는 신학적 문제나 목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신학 교육이 지식전달로만 이뤄진다면 그런 능력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제 해결 중심의 교육은 교회 안의 문제에 대한 안목을 열어 주고 또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검토함으로써 앞으로 나타날 문제들에 대한 사전 준비를 가능케 한다. 목회적 관점에서 지식습득과 관련해 신학 교육에서 질료적일 뿐 아니라 형식적인 차원이 깊이 고려돼야 하며 또한 임상 훈련에 해당하는 실습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3. 목회자의 올바른 좌표
1) 목회의 목적
예수그리스도의 목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된다. 말씀 선포, 병자 치유,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일 등 예수의 목회사역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여 그 나라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다(마 3:2; 10:7; 12:28; 13:11; 눅 17:21). 즉,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데 목회의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사역이 구체적으로 지속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1)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2)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3) 예수의 가르침을 전달하여 그것을 지키며 살도록 명령하였다(마 28:19-20).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목회 사역은 교회의 다양한 직무, 곧 성령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성령이 교회에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엡 4:12)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바울 서신에서 볼 수 있는 목회는 교회를 교회답게 돌보는 사역이다. 그의 목회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있다.
(1) 목회의 3대 목적
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역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예수님을 존귀케 하기 위하여(빌 1:20), 성령을 힘입어(행 16:7) 사역하라.
❷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역하라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이 구원하기 위하여(고전 9:22), 한 영혼이라도 실족치 않게 하려고 성심껏 사역하라(고전 8:9).
❸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역하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불의와 심판을 경고하고(겔 33:7) 하나님의 공의를 일으켜 세우며(암5:14-15)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 사역하라(고전 10:33).
(2)목회의 3중 사명
흔히들 목사의 직분의 원형과 예표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직과 선지자직, 왕의 직분을 갖는 것처럼 목사직도 이에 관련된다고 본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서 보는 것 처럼 목사는 <선한 목자>이어야 한다. 목사에게는 마땅히 이런 직분들이 동시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는 얼마나 왕적 지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왕직은 군림하는 폭군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겸손의 왕이며 의의 왕이시다. 그는 섬김을 받는 왕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왕이었다. 목회자는 선지자직만 강조되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독선적인 책망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리로 책망할 때라도 눈물 없이는 아무 효과가 없다. 선지자적인 직분만 감당할 것이 아니고 양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길 줄 알고 양들의 고뇌를 나의 것으로 가지고 제단 앞에 엎드리는 목회자가 되어야 그것이 참 목자가 아니겠는가?
❶ 제사장적인 사명(목장 안의 양을 위해)
성직자는 예배를 집례하고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와 생활을 지도하는 제사장적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❷ 왕적 사명
지역사회 전체 주민을 위한 윤리 도덕의 지도자, 영혼의 지도자 그리고 자애로운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
❸ 예언자적 사명(선지자적 사명)
개인의 범죄와 구조 악에 대하여 회개를 권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지도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2) 목회자의 5대 과제
(1) 설교
설교는 신학의 열매이며 목회의 꽃이라고 한다.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설교가 부흥할 때는 교회도 부흥했고 설교가 침체할 때는 교회도 침체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는 곧 설교의 역사인 것이다. 설교는 기독교 신앙을 일으키는 출처이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롬 10:17). 교회를 완전하게 하는 많은 활동들이 있으나 설교가 없다면 교회는 소멸되어 버리고, 설교가 없는 교회는 명목상의 교회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D. M. Loyd-Jones는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오늘날 교회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진정한 설교이며, 그것은 역시 명백하게도 세상이 가장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설교 사역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설교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또 초기의 사도들도 우선적으로 설교자들이었다.
(2) 교육
슈페너에 따르면 교회교육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했다. 교회교육은 머리보다 가슴을 이해하고, 인격적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슈페너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암기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중심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는 사람의 인격이고, 교육의 목적은 삶 안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데 있었다.
예수님의 분부를 가르쳐 지키게 하기 위하여(마 28:20) 성경교육, 교리교육, 윤리교육, 생활교육, 충성교육을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실행하라.
(3) 교회 행정
행정 업무에서 교역을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행정의 안전한 규율은 목사가 교회의 업무행정을 위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거하도록 요청한 사도들과 같이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사도들은 기도의 중요한 일과 말씀의 교역에 더 전력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목사는 그의 영적인 책임에 더 많은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교회 일에 책임 맡은 사람이 더 많아질수록 더 많은 관심이 그의 일반적인 성공에 투여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 영감, 감독 및 성공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주로 목사가 져야 한다. 우리가 당면하는 위험은 목사가 행정에 대한 준비를 문의조차 하지 않고 철저한 신학 훈련을 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행정은 자연적으로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있다. 목사의 성공은 주로 행정가로서의 그의 성공으로 측정된다. 행정의 세부가, 목사가 관심하는 한, 거의 자동적으로 되는 그런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는 교역의 다른 부분도 수월해질 것이다. 성직자 중에 대다수의 좌절은 요구가 너무나 많거나 일손이 너무 적은 사실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행정적인 무능으로 돌려져야 한다. 새로운 상황으로 옮기면서 목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조직을 세우기는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는 현존하는 프로그램에 자신이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되고, 그 프로그램은 자기 이념에 더 가까이 맞게 하도록 주의 깊게 점차로 바꿔가야 한다. 현명한 목사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에 가능한 한 표면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4) 심방
성도들의 개인 영혼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대 심방(가정부흥회), 기관별 심방(남여선교회, 청년회, 중고등부, 초등부), 지역사회 불신자 심방, 직장 심방, 조찬기도회, 상담심방, 통신심방, 출타자 심방, 전화 심방, 유고자 심방을 정성껏 실시하라.
(5) 선교
목회자는 전도에 시범을 보이고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도록 훈련하며 전도하고 선교하게 함으로 교회 성장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구조 복음화(정치복음화, 경제복음화, 문화복음화, 사회복음화 등을 위하여 교회의 선교력을 집중시키는 선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목회지침
(1) 목회자가 조심해야 할 세 가지
❶ 물질의 욕망을 자제하라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미련을 버리고 돈 거래에 공명정대하고 돈 소개나 보증을 서지 않도록 주의하라.
❷ 이성의 욕망을 자제하라
미모의 여 성도를 편애하지 말며, 여성과 단들이 만나는 일을 삼가고 부부 생활에 원만하라.
❸ 명예의 욕망을 자제하라
권위의식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군림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세를 가지라. 노회장, 총회장 운동을 하는 추태를 자행치 말라.
(2) 목회자의 세가지 각오
❶ 욕을 먹을 각오
“천사같이 목회해도 반대하는 교인이 있고 악마같이 목회해도 지지하는 교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과 사도바울도 욕과 핍박을 당했다. 목회자는 마귀와 전투하는 지휘관이니 마땅히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❷ 고난 받을 각오
목회자는 항상 빈곤과 핍박이 따라다닌다. 불의에 항거하고 꾸짖으면 반드시 빈곤과 핍박이 따르는 것이니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❸ 순교할 각오
목회자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죽는(고전 15:31), 매일의 순교자가 될 각오가 있어야 하며 최후에는 순교자와 순직자가 되려는 각오를 가지고 목회에 임해야 할 것이다.
(3) 충성하는 목회자가 되자 (마 25: 14-30)
무릇 목회자는 무능하지 않고 달란트를 2배로 남긴 충성된 종과 같이 적극적이며,
활동적이며, 생산적이며, 창조적 태도를 가지고 충성해야 할 것이다.
➀ 사명적인 충성 - 하나님께 사명 받은 목회자라는 사명감으로 사역하라.
➁ 은밀한 충성 - 사람들에게 눈가림하지 말고 성실하고 진실되게 사역하라.
➂ 작은 일에 충성 - 많은 일을 하려 하기보다 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➃ 값없는 충성 - 이 세상에서 상급을 바라지 말고 내세의 상급을 바라보고 충성하라.
➄ 재능대로 충성 - 내게 주신 재능과 직책에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라.
➅ 끝까지 충성 - 주님 오실 때까지 시종일관 변함없이 충성하라.
➆ 죽도록 충성 - 주님 위해 목숨을 바치고 충성하면 불가능이 없는 것이다.
(4)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네 가지 조건
첫째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신속하게 이해하고 채워 주어야 한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이는 성도들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에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기도함으로써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곡 필요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둘째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남을 성공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우리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랫사람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 주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유능하고 실력이 있는 사람은 그 실력을 잘 활용하여 더욱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적성에 맞는 일을 맡기며, 능력이 부족하여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격려해 주고 가르쳐서 성공시켜야 한다.
셋째로,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면 개척 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지도자가 안정만을 추구하며 그 단체를 이끌어 나간다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험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지도자는 평범한 사람과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면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많이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의 종은 모두 지도자이다. 남보다 큰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온 힘을 기울이라. 그러면 자연히 여러분은 자연히 유능한 지도자로 성장될 것이다.
넷째로,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들이나 세기를 주름잡던 지도자들 중에 자기 개발을 게을리 한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다.
(5) 목회할 때의 유의할 점
첫째로, 주의 종들은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한다. 주의 종으로서 성도들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상의 한계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주의 종은 하나님의 대변자이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실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성도들과 인간적으로 너무 친밀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약점을 다 드러내게 되면, 그 주의 종은 그때부터 목회 사역이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주의 종은 언제나 성도들과 알맞은 경계선을 두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주의 종들이 조심하여야 할 것은 금전 관계이다. 주의 종들은 절대로 양 무리와 금전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금전 거래 역시 자신의 목회를 파멸로 이끄는 원흉인 것이다.
셋째로, 주의 종들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조심을 해야 한다. 주의 종들 중에 성도들에게 “기도 열심히 해.” “그러지 말고 잘해.” 하는 식의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좋지 않은 태도이다. 이로 인해 성도들이 마음에 시험이 들 수가 있다. 또한 성도들 앞에서 주의 종들 간에 서로 반말 투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덕이 되지 않는 일이다.
4. 목회자로서의 준비
예비 목회자로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다. 이런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 사역을 감당한 다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고갈 시키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양들을 파멸시키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목회자가 준비해야할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한다.
1) 영적인 준비
(1) 말씀 연구
지금과 같이 수많은 설교를 쉽게 듣고 찾아 듣는 설교 홍수 시대에 말씀 연구를 게을리 하는 목회자는 도태되어 버릴 것이다. 이것은 모든 목회자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 일 것이다. 분명한 기준과 피나는 노력 없이는 앞으로의 목회 사역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 원칙들을 세워야 한다.
❶ 설교에 올바른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그 우선권이라는 것은 목회의 다른 사역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뿐 아니라 교회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주로 말씀 전파와 가르치는 일이셨다. 또한 우리에게 주셨던 명령과 사도행전 속에서 살펴보더라도 설교는 교회 사역의 중심이었으며 교회사 속에서도 강조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부흥에서, 18세기 대각성 운동에서 설교는 중심적 자리를 차지했다. 이처럼 설교는 매우 중요한 우선권을 가지고 설교를 제 위치에 두지 않는 목회자의 목회 사역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결코 성공적일 수 없을 것이다.
❷ 설교에는 바른 기초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너무 나도 잘 아는 것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설교는 예화 중심이며 심리학과 사회 논평과 정치적 수사법을 강조하며 선포되어 진다. 이것은 성경 중심 설교의 적실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어난 현상인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것은 설교자들은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했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설교가 쇠퇴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성경적 기초가 없는 설교는 이제 그 정체성을 상실해서 복음의 능력을 선포할 수 없는 하나의 강연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확실하게 가져야 할 마음은 우리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❸ 설교 안에 바른 내용이 있어야 한다. 설교안의 내용은 복음 선포와 교훈이다. 이것은 성경이 설교의 기초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며 설교자는 교인들에게 배운 성경의 진리를 적용하도록 권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포이다. 또한 교훈해야 한다. 바울은 디도에게 반드시 “바른 교훈으로 권면”(딛 1:9)할 수 있어야 된다고 썼다. 이것은 성경의 진리에 순종하기를 온유하면서도 열렬하고 강력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거짓 가르침으로 파멸의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양떼와 함께하면서 유익하고 신령한 가르침으로 그들을 튼튼하게 권면해야 한다.
(2) 기도생활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의 주도구로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과 기도가 적적하게 섞여 사용될 때 가장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가 말씀 준비뿐 아니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기도생활이다. 이것의 중요성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목회에 성공하려면 시간을 내어서 기도해야 한다. 전에는 다섯 시간을 기도했으나 요즈음은 너무 바빠서 세 시간만 기도한다.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의 감동을 그만큼 많이 느낀다. 나는 내 설교가 뱃속에서부터 흘러나올 때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기도는 설교자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며 설교자의 선포가 힘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8절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에 대해 권고하고 있다. 18절에서 보듯이 모든이 반복되어 있다. 그 이유는 기도는 전력을 다하여 하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기도는 모든 상황에서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항상 하는 것이다.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하는 것이다. 흔들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는 신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의 방법들을 지켜나가면서 무시로 기도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순종하는 생활
목회자로서 범하기 쉬운 죄 가운데 하나가 교만일 것이다. 이런 죄 가운데 넘어지지 않도록 목회자는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순종의 기본 마음가짐은 겸손이다. 그렇다면 순종하기 위한 겸손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올바른 신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❶ 겸손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살전 2:2). 이런 마음가짐이 있는 목회자는 목회의 사소한 결정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게 될 것이다.
❷ 겸손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하게 설교자가 받은 소명에 대한 매춘 행위 일 것이며 설교자의 교만의 표현이기도 하다. 겸손한 설교자는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하여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딤후 2:15)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설교하는 설교자는 설교한 대로 행동하는 목회자의 본이 될 것이다.
❸ 겸손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몰두하게 된다. 여기에 겸손의 진수가 담겨있다. 자기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동시에 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광스러운 것은 새 언약이지(고후 3:7~11) 그 사역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고후 4:7).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순종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목회자이며 리더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를 수많은 유혹가운데 넘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 유혹 중에 모든 사역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순종의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의 주재권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목회의 지름길이며 목회자가 반드시 지녀야할 소양일 것이다.
2) 지적인 준비
보통 목회 사역의 평가를 풍부한 성경 지식이나 다재다능한 목회 기술이 목회 의욕의 정당성을 판가를 하는 첫 번째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인품이 경건한가를 주된 시금석으로 삼는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 일 뿐 아니라. 목회사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인품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지도력을 갖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1) 거룩한 인품의 분야
첫째 도덕생활이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거룩한 인품의 기초에는 도덕성의 문제가 있다. 목회자는 인생의 고된 훈련을 통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감각을 훈련해야 한다. 또한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 진리와 경건을 드러내야 한다. 둘째, 가정생활이다. 목회 지원자는 가정에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강력하게 추구해야 한다. 아내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그 사랑에 항상 취해야 한다. 또한 자녀도 같은 믿음 안에서 양육해야 한다. 사역 때문에 자녀들을 돌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한다. 셋째는 성숙이다. 성숙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는 은사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골짜기들과 그늘진 곳들을 지날 때 말씀의 원칙들을 적용해 가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것이다. 넷째, 좋은 평판이다. 인생의 학교에서 성숙을 배우는 동안 거룩한 도덕생활과 가정생활, 그런 성숙을 추구함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질 때 목회자는 영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다.
(2) 거룩한 인품을 얻기 위한 노력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고하고 있듯이 경건의 거룩한 인품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서 목회자들이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있다. 여기서는 그 근본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한 가지 만을 살피고자 한다. 첫째. 근본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야 말로 경건에 이르는 왕도일 것이다. 성경은 거룩한 생활의 규범들을 분명히 가르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함으로써(골 3:16) 그 규범들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경건의 완전한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일 것이다. 예수는 바쁜 일상 중에서도 한적한 장소로 옮겨서 하나님과 단둘의 시간을 가지셨다. 또한 제자들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때 조용한 곳에서 쉬며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막 6:31). 이와 동일하게 우리는 한적한 곳에서 단둘이 하나님과 만나는 묵상을 통해서 경건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실천적으로 다른 거룩한 사람들과 영적 지도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영적 책임성과 성숙을 증진할 수 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는 것 같이”(잠 27:17) 말이다. 또한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 크게 들어 쓰신 사람들의 전기를 읽는 것도 인생의 틀을 세우고 거룩한 인품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3) 실천적 측면
(1) 체력
❶ 휴식
목회자에게 휴식은 매우 중요하다. 휴식 없이 계속해서 목회사역에 뛰어 든다면 그것은 목회자를 탈진 시키고 말 것이다. 탈진이라는 것은 일에 지나치게 헌신하거나 개입됨으로 고질적인 피로나 무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들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확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런 고질적인 환경 속에서 빠져 나와서 우리를 위한 우리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 사역을 하다 보면 그런 마음을 갖기 힘들게 된다. 사역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애매모호한 때가 많아서 언제 일을 제대로 완수할 것인지 언제 쉬어도 되는지를 가리기 쉽지가 않다. 휴식을 취하려고 하여도 모든 사역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한 가지만 더 하자.’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목회자가 휴식을 갖는 것은 본인 뿐 아니라. 사역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목회자는 본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휴식 리듬을 생각하여 그것을 토대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 범위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하루 중에서, 일주일 중에서, 3개월에 한 번씩, 1년 단위로, 안식년 단위로
위에서 제시한 방법을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제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화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가 쉰다는 것이 예전처럼 비난을 받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감행할 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기 전에 먼저 선행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에게 충분하게 목회자의 휴식의 필요성을 성도들에게 인지 시켜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의 동의를 끌어내어서 사역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진정한 쉼을 얻고 재충전되어 사역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한다.
❷ 운동
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필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절감하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운동을 기피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일 지라도 운동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 목회 현장의 특성이다. 하지만 목회자에게 운동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일정한 운동은 병의 발생률을 줄이며 심장병, 암, 당뇨, 그리고 비만을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운동을 하지 않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목회임무에 충실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일정하게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는 착각 속에서 사역으로 지친 몸을 가지고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지쳐 있을수록 운동을 하면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이다. 운동 종목을 선택함에 있어서 운동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면 우리가 할 운동 종목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선택하는 데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시간, 나이, 건강상태, 비용, 그리고 어떤 것이 자신에게 편리한지를 살펴야 한다. 즐길만한 운동을 한 가지 정도 선택해서 하며 지루해지기 전에 미리 다른 운동을 시험 삼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❸ 식습관 관리
잘못된 식습관은 과도한 스트레스나 탈진과 연관되어 겪는 어려움이 복합될 때 나온다. 하루 종일 감정적 괴로움과 오만가지 생각들에 의해 학대당한 신체에 그것도 모자라 커피, 소금, 지방, 흰 밀가루 등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하루 중 적당한 시간에 정기적이고 균형 있는 식사를 통해 삶에 나타나는 스트레스와 탈진의 증상 중 많은 부분들을 경감시킬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설탕, 소금, 흰 밀가루, 포화지방, 이 네 가지 기본 식품의 소비만 줄여도 우리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체중 감량을 위해서 체중감량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은 체중 감량 프로그램이 발달 되어서 본인과 맞는 프로그램으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4) 바람직한 목회자의 아내
사모는 전문직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맡기신 자리이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모가 되야 한다. 그럼 사모로써 알아봐야 할 것을 정리해보자
(1) 사모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
❶ 건강한 자아상이 있어야 한다
: 사모는 하나님의 걸작품이요, 목사에게는 온 세계에서 단 하난뿐인 아내이다.
❷ 확실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 전능하시고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모로 창조하시고, 부르시고, 또 남편을 목사로 부르시고 어느 날 어느 시에 부부로 맺어주셔서 사모가 되었다는 사명감
❸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 사모는 말씀을 사랑하고 매일 묵상해야 하며, 적용으로 말씀이 내 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❹ 기도로 충만해야 한다
: 기도 시간에 어떤 기준은 없지만 사모는 가장 많이 기도하는 성도보다 더 기도해야 한다.
평소의 기도는 유사시에 출혈을 막아 준다.
❺ 믿음이 있어야 한다 : 믿음은 모든 것을 기본요건이다.
❻ 덕망이 있어야 한다 : 성경에 보면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는다”(잠 11:16)이라고 말씀 하셨다.
❼ 겸손해야 한다 : 겸손은 모든 사모의 생명이다.
❽ 사랑이 있어야 한다
: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사랑 앞에 대적도 원수도 없다.
(2) 목회자의 아내와 자기 훈련
보통 사모들은 하나님의 감격스런 은혜로 인해 자신을 불태워도 아까워 하지 않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는 사모로서의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최선을 다하는 교육과 수련을 통해서 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정신 의학자인 마리온 H. 넬슨 박사는 “목회자의 아내라는 것은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가장 모험적이고 위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모는 자신의 훈련을 통해서 계속 목회자의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교육의 방법은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을텐데, 첫째는 결혼 전에 교육을 받아두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며, 둘째 결혼 후 늦게라도 남편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방법이 있으며, 마지막은 유능한 선배 동역자를 통하여 보고 듣고 배움으로써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사모의 역할
목사의 아내만큼 어려운 자리는 없다고 본다. 분명하게 어떤 역할을 하라고 명문화된 것이 없이 교회의 사정에 따라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역할을 적어보라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❶ 한 아내로서의 역할
① 목회자의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② 목회자를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목회자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사모이다.
③ 목회자의 텅빈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줘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용기를 불러 일으키고 소망을 주어야 한다.
❷ 돕는 베필로서의 역할
① 모든 문제를 객관화시켜 보고,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② 정보를 분석 할 수 있어야 한다.
③ 성도와 목사님 간의 다리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④ 설교를 듣고 성도들의 반응을 재고, 분석해 주어야 한다.
❸ 동역자로서의 역할
① 모든 문제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② 목회자의 영적생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4) 사모로서의 유의할 점
① 성도들의 돈 문제에 절대로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②‘이 교회가 우리 것이다’라는 생각은 가장 큰 금기 사항이다.
③ 성도 중 어느 한 사람만 자주 만나지 말아야 한다.
④ 남편인 목사를 낙담케 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⑤ 타인의 눈이 무서워 벌벌 기는 사모가 되지 말아야 한다.
⑥ 남편은 성직에 있으니 절대로 바람을 피울 염려가 없다는 생각을 버리라.
⑦ 성도들의 가정사인 부부문제에 깊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⑧ 위기가 닥쳤을 때 성급하게 나대며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⑨ 교인들의 숫자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III. 맺는 글
목사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사역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깨달은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받은 은사로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감명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목사는 자기를 교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위치에로 올려놓을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목사는 자기 교인들을 지나칠 만큼 사랑해야 한다. 교인들이 목사의 하는 일을 통하여 그가 정말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목사가 어느 정도 실수를 해도 쉽게 용서한다. 이런 류의 사랑은 목사가 그들에게 보여주는 민감의 정도에 따라 스스로 증가한다. 교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말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때 이것은 나타난다. 그것도 목사의 어떤 계획을 성취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 수단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즐겨서는 안 된다. 목사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기꺼이 비난을 수용하고, 자기도 모든 대답의 해답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교인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하고, 그들이 마음 상할 때 그들과 더불어 마음의 용서를 구할 때, 교인들과 사랑의 관계는 좀 더 극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두번째로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선포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다루라는 말도 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을 복종시키는 채찍으로 사용한다. 목사는 반드시 성경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행실에 관하여 그리고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목사가 좋아하는 행정적 구조나 사업계획이나 방법에 맹목적으로 다르기만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목사는 주석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래서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정말로 말씀하시는 바를 깨닫게 해야 한다.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 목회를 하는데 있어 할 일의 다양성 때문에 모든 일의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목회 사역을 위하여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부르시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본인들 스스로 교만 속에 뛰어나다고 착각 속에 있는 경우는 제외하고 보통은 신실함에 뛰어나며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평범한 사람을 부르신다. 비록 대단한 은사를 받지 못했을 지라도 신약성경의 달란트 비유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하고 투자하여 최대의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게 생활하여야 한다. 진정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 木 죽을 死 를 본받아 제자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짐하여 본다.
<출처: 예배자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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