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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C. 오덴의 목회신학

까망쑤나 2011. 4. 19. 00:27

토마스 C. 오덴의 목회신

지도교수: 김상백 교수님

제 출 일: 2009년 5월 7일

제 출 자 학번: T071011

이름: 육 순 왕

Ⅰ. 저자-토마스 C. 오덴

감리교 목사이며, 신학자 토마스 C. 오덴은 1931년 10월에 오클라호마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음악선생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식으로 퍼킨스 신학학교 (남부 감리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오클라호마 컨퍼런스 미국 감리 교회에서 집사(1954), 장로(1956)등 그는 다양한 교구 부처에 재직했다. 1956년 그는 예일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리고 1958년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58 년 퍼킨스 신학대학원에서 전문 교육 강사로 그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교수 1960년부터 누른 필립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71 년 드류 대학에서 정년퇴직까지 몸을 담았고 그곳에서 석좌교수가 되었다.

Ⅱ. 내용요약

목회신학은 목사의 직무, 은사들, 기능들을 다루는 기독교 신학의 한 지류이다. 목회신학은 하나의 신학으로서 성경에 의하여 증언되고, 전통을 통하여 중보 되고, 비평적 놀이에 의하여 성찰되고,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구현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성찰할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자원들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목회신학은 교회의 일반 교역과 안수 교역의 삶과 과제들, 그리고 직제 화된 교역의 다양한 주요 직책들에 대하여 분명한 정의를 제공함으로 교역실천의 갱신을 목표로 하여 목회적 직책과 그 기능들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1부 목사가 된다는 것

1. 목사직의 정체성의 발견

현대인의 눈에 비추어진 초라한 교역자의 모습은 우리시대에 얼마나 목회에 관한 분명한 이해가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것들은 참 목회자의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심력 있는 목회가 이루어지고, 목회신학 방법론을 제시하고, 교역의 필요성을 적립함으로 목사직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

구심력있는 목회는 목사의 모든 다양한 활동들이 하나의 중심,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집중되어야 한다. 또 성직자의 사역은 평신도의 사역과 구분되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고. 목사직의 세분화는 하나의 중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목회신학은 어떠한 방법론으로 전개 되어야 하는가? 목사의 직무수행의 방향은 성경, 전통, 이성, 경험 이 네 가지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적 자기계시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성경은 목사직과 그 기능에 대한 일차적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우리는 성경을 에큐메니칼한 합의에 의해 일치된 정경으로 이해하고, 취사선택해서 읽거나 부수적 역사자료로 사용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치유와 교훈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전승은 교회가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자 노력해 온 지속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여러 상황과 환경에 대한 교역 실천의 역사적 경험이다. 또 이성을 목회적 성찰의 표준으로서 사용한다는 것은 건설적으로, 엄격하게, 일관성 있게 사고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노력을 의미하며, 동시에 방대한 목회적 지혜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성찰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경험은 자신의 실존적 경험과 지나온 과거의 삶과, 다른 목회자들의 경험을 통해 목회적 통찰력을 얻도록 해야 한다. 복음은 무시간적 추상관념이 아니라 독특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목회신학은 자신의 문화적 상황, 정치적 맥락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주변 풍토에 대하여 비평적 의식을 소유하여야 한다.

교역은 왜 필요한가? 하나님이 창조를 계획하셨기 때문에 창조가 일어난 것처럼,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나타났으며, 교역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2. 교역의 소명

교역의 소명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하여 부름 받았다는 내적 확신과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우리의 잠재적인 섬김을 평가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외적소명 모두를 필요로 한다.

내적 부르심(자아검토)- 목회에로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식에 관하여 스스로 자문해보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가끔씩 대두된다. 소명의식이 계속하여 일어나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비판하면서 그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내적 자아를 검토한 후에 나의 잠재적인 목회자질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견해를 타진할 수 있다.

외적인 부르심- 독단주의, 주관주의를 피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확증이 필요하다. 목회에 대한 외적인 소명의 목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사역할 후보자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평가함으로서 내적인 부르심에 대한 최초의 직감을 검토하고 확증해야 한다. 기준- 모든 평가 작업의 핵심은 내적인 부르심과 외적인 부르심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적인 부르심을 계속 가까이 하시고 도와주시는 성령의 권능의 결과이며, 조만간 성령은 사람을 목회에 대한 교회의 외적인 부르심에 더욱더 가까이 부르시기 때문이다. 외적인 부르심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서 내적인 부르심을 확증하여 주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행위이다.

3. 목사안수의 의미

목회는 곧 그리스도의 목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곧 아들을 통하여 성령에 의하여 수행되는 아버지의 목회이다. 모든 신자들은 복음을 증거하고, 병든 자를 방문하며, 궁핍한 자를 돌보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을 도우라고 부름 받았다. 이러한 일반적인 목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평신도의 일반교역)으로 부과되어 있다. 그리고 목사안수는 오직 한 번뿐이며, 마치 세례를 반복해서 받지 않는 것처럼 목사안수도 반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안수는 평생에 걸친 언약의 관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안수는 가볍게 들어설 수 없는 하나의 엄숙한 계약행위이다. 안수의 내적 실체는 하나님의 은총을 영접하는 일이고 외적인 사건은 기도와 함께 손을 얹어 안수하는 일이다. 손을 얹어서 안수하는 것은 축복을 간구하거나 헌물과 희생을 드릴 때, 또는 병고칠 때, 한 개인에게 성직의 사명을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부여할 때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안수는 직책을 위임하는 유대적 개념에서 나왔다. 안수행위의 두 가지 핵심요소는 안수하는 것과 중재(교회의 중보) 기도이다.

목회의 은사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인가?

디모데는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딤전 4:14)라는 충고를 받았다. 이것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신적 은사는 장로들을 통하여 성령으로부터 받았고, 이 내적 선물은 안수의 의식을 통하여 받았다. 그리고 이 선물을 받는 일은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었다. 목회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능력은 조심스럽게 성장되어야 하며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안수 식은 필요한가?

안수식의 숨은 의미는 교회의 간절한 중재의 기도로 성령께서 이 목회 위에 권능을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인 면은 손을 얹어 안수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사건으로 외부에 나타난다. 중재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이러한 은사를 끊임없이 부어주실 것과 성령께서 항상 함께 계시기를 간청한다.

안수 받은 자의 책임은 딤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딤전 4,12) 힘쓰며,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딤후 2,15), 말에나 행실에나 사랑에나 믿음에나 순결에 있어서(딤전 4,12) 믿는 자에게 본이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할 만한 준비를 갖추도록(디도 3,1)하며, 참고 온유(딤후 2,23)하면서도 절도있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4. 여성과 목사직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 성스러운 교역에 부름을 받을 수 있다. 만일 모든 세례교인들이 대표 교역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대신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성별 때문에 이러한 남을 대신하는 교역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배재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도 자신의 교회를 향한 의도 가운데 깊이 스며있다.

문제점

여성들이 목사와 예배 인도자, 설교자, 교회 행정가가 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의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에 의하여 믿어지는 교리만을 신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스도 사건 가운데는 영원히 동일한 신앙의 본질이 있으나,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역사적 발전을 거듭해 왔다. 법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동등한 위엄을 지닌다는 관념, 대의적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관념들은 성경과 전승의 핵심적인 맥락 가운데 이미 함축되어 있었으나 그 깊은 본래적 의미는 기나긴 역사적 발전의 과정을 통해 발견되었다. 우리는 기독교 전승이 너무 지나치게 사제직을 남성 전유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과 여성들을 교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충분히 인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일찍 시인하는 것이 좋다.

권리문제인가? 아니면 의식문제인가?

여성안수반대자들의 근거는 전통의 연속성, 예식 집행자로서의 적합성, 신실한 성서주석등 을 내세우고 있다. 전통이란 역사의 발전에 맞추어 변화되어 왔다. 따라서 여성 안수에 대한 문제도 현대의 가치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성경과 전통을 통해 계시하시며, 교회는 언제나 새롭게 귀 기울일 능력과 책임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마리아 유비

어떤 이들은 마리아가 여성들의 일반적인 사역의 불변의 범례라는 근거에서 여성안수를 반대해 왔다. 즉,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역할이 곧 여성의 역할이며, 남성의 역할은 예수와 제자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마리아가 2000년 동안 종말론적 희망, 기도, 신실함의 모본이 되어왔다는 사실과, 성서에는 자녀의 출산이 성령의 은사 목록들 가운데 언급된 일조차 없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상실한다.

특수성이 지니는 스캔들

그리스도가 남성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 때문에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으로 갈릴리에 나타나셨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구체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 여성에 대한 배척의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2 부 목사의 직책

5. 핵심적인 유비로서의 목양

목회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 우는데, 이는 신앙공동체가 목회에 대하여 거는 기대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구목사(Parson)는 교회를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성숙도와 경험의 차원을 지칭하고, 장로(Elder)는 교회를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성숙도와 경험의 차원을 지칭며, 보조교역자( Curate)는 교구에서“치료하는 사람”, 즉 치유를 담당하는 자를 말한다. 설교자(Preacher)는 공개적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목회 직무의 주요 기능으로 강조한다. 사제(Priest)는 목회의 중심을 성례전 집행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의 중재를 강조 한다. 교역자(Minister)는 성직자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봉사가 핵심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도자(evangelist)는 말씀을 전하고 순회하면서 목회하는 일을 강조한다. 목사(Clergy)는 목회자가 가지고 있었던 것 또는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행정적인 수완이나 지식을 강조한다. 성직자(Reverend)는 목회자에게 붙이는 존경을 표시하는 통칭이다. 교목(Chaplain)은 공공기관의 예배당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 또는 다양한 기관목회자를 의미한다.

목회자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임재하시고 교회를 양육하시며 세상 끝날 까지 교회와 같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목회자는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부름 받아 안수 식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하나님의 자기 노출에 전적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하도록 따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된 하나의 구성원이다.

6. 교역의 직책과 은사들

사도행전에 기록된 최초의 사건들을 통해 보여 지는 것은 성령이 오순절날 교회 위에 임하였다. 베드로의 설교에 의하여 삼천명이 개종하였다. 유다의 빈자리에 맛디아가 선정되어 사도의 사역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 목회의 직무는 예수의 목회의 계속성을 유지하도록 고안되었다. 맛디아에 대한 사도적 위임(행 1:15-26)은 부활 후 그리스도의 교역과 초세대적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신생 교회의 절박한 관심을 반영한다. 교역의 주된 패턴은 항상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예수 자신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동일한 사역을 수행하되 그럼에도 의미 있는 노동의 구분을 두어 수행하기 위하여 교역의 세 가지 주된 영역들과 차원들이 발달하였다. 그것들은 물질적 필요물들 및 섬기는 역할에 비교적 초점을 둔 집사직(diakonos): 목회적 교훈, 인도, 기독교 회중에 대한 목회적 교훈, 장로직(presbuteros): 흔히 관범위한 기반을 중심으로 하여 양떼에 대한 감독과 공적인 보호에 비교적 중점을 두는 감독직(episkopos)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사명을 강화하시기 위하여 교회에 많은 은사들을 제공하신다.“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에 따라” 각각 다른 이들 은사들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전체 기독교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의도된 것들이다. 이러한 은사들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함께 결합 시킬 때 그리스도의 몸의 복잡한 통일성을 나타낸다. 교역에 부여된 은사들 가운데는 사도직, 예언, 복음전도, 목양, 가르침, 기적, 치유, 치리, 방언 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그의 백성들을 무장시키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주어진다(고전12장, 엡 4장)

3 부 목사의 역할과 그 이유

7. 예배공동체의 목사

신자의 삶에 있어 중요한 다섯 가지 기념일들이 있다. 출생일, 세례, 입교, 혼인, 사망 이 다섯 날에 초대를 받아 참여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이가 목사이다. 목회의 정체성에서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는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다.

제사장직과 예언자직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언자는 하나님 편에서 백성들에게 말한다.(말씀선포), 제사장은 백성들 편에서 하나님께 말한다.(성례전)

제사장과 평신도의 차이는 제사장은 안수를 받음으로 영적 은사들이 인정되며 말씀을 전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사도적 전승의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치리한다. 그러나 성례전의 직책은 모든 세례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수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총은 목사의 인격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책에 의해서 내려진다.

제사장직의 현대적 기능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공동체를 대신하여 중보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배를 인도한다. 현대의 예배는 예수의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능욕을 감당하며 오직 선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결단하는 시간이다.

기독교적 예배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은 기도와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예배행위에서 목사는 주관하는 사람, 곧 하나님께 한 목소리로 경배와 확신과 봉헌을 드리도록 회중을 연합하는 사람이다. 예배의식은 기독교 신앙과 경험전체에 대한 간결한 요약이다. 그러므로 예배집례 자는 그 공동체의 전통을 존중하여 예배의식을 거행한다.

예배인도의 몇 가지 원칙

첫째,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그러한 행위가 없는 예배는 기독교의 예배가 아니다. 둘째, 예배에는 내면적인 실재에 맞먹는 어떤 외적인 질서가 필요하다. 절기 행사들과 같이 시간을 구분하여, 즉각적이고,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셋째, 공동체에게 역사적인 경험과 시간을 통하여 현대의 시점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넷째, 고정적인 순서에 따라 반복적인 회상을 기초로 하는 독립된 예배행위도 매일 새로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목사는 공동예배와 개인예배 모두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계발시키는 임무가 부여된다. 여섯째, 예배는 침묵 없이 행할 수 없으며 동시에 말없이 행하여질 수도 없다. 일곱째, 예배와 음악을 적절히 통합시킨다.

공동기도의 모형(삼위일체적 모형)

먼저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임재를 요청, 찬미와 감사하며, 성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억하며 이 복음의 조명을 받아서 아들을 통하여 나타난 용서를 받기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복음에 응답하여 살 수 있도록 성령의 인도를 간구한다.

8. 세례와 성례전의 교역

성례전의 교역을 통하여 신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물을 통하여 정결하게 되고,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영적으로 먹고 마시어 새 힘을 얻는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깨끗하게 하는 용서의 목욕으로 시작하여 영혼의 돌봄을 위하여 자양분 있는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지속된다. 두 짝의 유비적인 성경의 의식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계약의 내적, 외적 측면들을 시연한다. 할례와 유월절, 세례와 성만찬이 그것이다. 모두 유사한 구조들을 소유한다. 그것들은 신적으로 성취되고 신실한 계약 공동체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외적이고 가시적인 징표에 의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한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참여의 시작을 특징하듯이 주의 만찬은 더 이상의 알맞은 성장을 양육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계속된 삶의 성례전이다. 비록 성만찬의 교역은 재단-탁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수반되는 것들은 매우 광범위하여 고백, 공감적귀기울임, 교인들을 보상의 행동 쪽으로 인도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을 대표하여 행하는 하나님의 용서의 제공의 많은 행동들을 포함한다. 성만찬 교역의 네 가지 핵심적인 행동들은 고린도 전서 11:23-26에서 재연된다. 즉 그가 떡을 취하사(봉납), 감사하시고(감사기도), 떡을 떼사(뗌) 그의 제자들에게 주시며 (성찬분배)“이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9. 설교를 통한 말씀교역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좋은 소식의 선포를 의미한다. - 설교의 네 차원 : 복음전도의 차원, 목회적 차원, 교리적 차원, 도덕형성의 차원

설교의 대상은 누구인가? 설교는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사건이지만 각 사람의 심령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인격화된 통찰력이나 공적인 정체성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거나 결여된다면 말씀의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설교에서 인격과 직책은 가장 실천적인 균형과 창조적 균형에 속하는 문제이다. 설교는 불변인가 아니면 항상 변하는가 하는 문제는 설교의 종류를 선교적 설교 또는 복음 전도적인 설교와 목회적 설교 또는 회중설교로 구분하게 하였다. 설교는 복음의 증언을 통한 공동체의 확장과 영적 양육을 통한 공동체의 심화 모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형태의 설교는 흔히 혼합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설교의 은사는 교역의 본질적인 자격요건이다. 훌륭한 설교는 성령의 은사로 믿어진다. 그리고 과제로서의 설교가 은사라는 사실은 이 은사를 받고 발전시키는 데 요구되는 에너지와 지적능력과 위탁의 필요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설교도 성령의 각성케 하는 인도와 최상의 인간의 노력 사이의 협동적 관계 아래 있다. 설교의 형태 또는 모양은 설교의 내용과 일치하여야 한다. 설교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설교에 접근하는 방법이 결정된다. 성서의 생명력과 관계성을 상실한 설교는 쉽사리 자아 중심적인 변덕과 기만 그리고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버린다. 설교는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구원시키며 또한 그 행동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무엇이 설교의 여러 가지 행위를 통일시키는가?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기 노출의 원초적인 사건, 즉 하나님의 자기 노출의 모든 다른 것들을 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건인 것이다. 설교의 깊이와 단순성은 동일한 점에서 만난다. 최상의 설교는 단순한 데 있지 복잡한 데 있지 않다. 설교자의 권위는 말하는 사람이 계시된 말씀과 얼마나 깊이 교통하고 있느냐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을 토대로 하여 사람들은 설교자의 말을 듣고 믿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듣는 자의 권리이다. Kerux(“선포자”)는 청중들이 설교자의 설교 가운데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때, 즉 설교자의 설교자 믿을 만하다고 느낄 때에만 권위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다. 목회를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는 곧 이러한 권위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교의 직무는 일정한 위엄이 따른다. 즉 내적권위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예언자적 설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깊이 스며든 사회적인 불의라는 관점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전하고 있다. 설교자는 공동체의 양심을 대변하는 용기를 가지고 부패된 사회에 대하여 과감하게 비판을 해야 하는 때도 있다. 기름부음 받은 축복이 넘치는 설교란 유연한 가운데서도 확고부동한 메시지가 있으며 경외심이 예배 속에 가득차고 도덕적 강화에 있어서 사랑으로 충만한 설교를 말한다. 이 용어는 확고함에 부드러움이 수반될 때와 공중예배에서 경외가 일어날 때와 도덕적 위탁에 사랑이 결부될 때에 사용되었다.

10. 가르치는 장로 : 목사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가르치는 공동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회적 직무는 가르치는 직무이다. 세대마다 기독교 공동체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상징체계들과 가정들로 기독교 메시지를 의미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한다. 목사는 공동체에 있어서 가르치는 장로이다. 목사는 선포, 예배, 성만찬을 통하여 정규적이고도 공적으로, 또한 목회를 통하여 상호 인격적으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범적 행위를 통하여 가르친다. 목사의 교육적 책임은 우선 일차적인 배움의 맥락으로서 가족에 초점을 둔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교회학교, 청년수양회, 평신도 신학교와 같은 다양한 영역들을 포함한다. 높은 수준의 평신도 교육은 계획하고 조직하고 모집하고 실제로 가르치는 데 있어서의 의미 있는 목사의 관여에 의하여 최대로 성취된다. 예수는 흔히 교사로 언급된다. 예수는 그 자신의 제자들-가까이에 있는 소수의 친한 무리-를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군중들, 심지어는 단 한 번만 들어보려던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목회의 직무는 예수의 분부에 부응하여 젊은이들과 어린이들과 같이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파악할 수 있게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중대한 사명을 포함하고 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교육적 업무들 가운데 하나는 분명 젊은이들을 준비시켜 세례서약을 재확인하도록 준비시키고, 거룩한 역사를 재경험하고, 신앙고백을 설명하며 사도신조를 가르치며,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을 도와 성만찬에 대비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은 응답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청소년들이다. 목회적 교리문답은 소수의 문제들인 핵심적인 기독교 교훈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많은 전통에서 입교예식은 유아세례를 통하여 봉인되었던 것을 확인하는 기회로 믿는다. 만일 세례가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요, 봉인이라면 입교는 그 약속을 그 본래의 수령자, 즉 세례 받은 개인에 의하여 의도적이요 사려 깊게 받아들이는 예식으로 기념된다. 예식 중에 고백되는 사도 신조의 의미는 가장 일반적인 지침으로 성경 진리에 대한 일종의 핵심적 천명이라 할 수 있다.

11. 교회행정과 평신도 교역훈련

목회신학은 또한 교회의 물질 자원의 청지기로서의 목사의 역할을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은 교회가 말씀의 교역, 성례전, 직제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그것은 행정을 소유한다(행정은 “목회자를 위하여”이루어 지는 것으로, 즉 목회를 가능하게 하기위하여 수행된다). 그 사명은 민첩한 조직적 재능, 숙련된 지도력, 정통한 지도력, 분명한 목표, 조심스러운 계획, 효율적 조직에 대한 현명한 치리를 요구한다. 행정의 세 가지 주요 영역들 모두에 있어서(일반 행정, 교육 행정, 재정 행정), 목사는 가르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복잡한 조직적 노력을 감독하고 그 동기를 유발하도록 요청받는다. 그 목표는 평신도를 무장시켜 세상에서 교역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4 부 목회상담

12. 목회심방

“가정을 방문하는” 의무는 목회 직무에 본질적인 것으로 폭넓게 인정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하여 우리가 섬기는 지역에 방문하여 그의 구속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육신을 통하여 인격적이고 육신적으로 임재 하셨듯이 우리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절실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친히 함께 있도록 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사람들에 대한 목회심방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간 방문의 영광을 성찰하고 잃은 양을 찾으며 죄를 구속하며 고통을 치료하는 한 방법이다. 목사의 직책은 정의를 내린다면 양떼와의 단순한 만남만이 아니라 계속적인 감독과 양육을 포함하는 목양적 업무이다.

심방 모델 예수 1) 예수의 교역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대인관계를 통하여 인격적으로 행하였다. 예)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백부장 등. 2) 예수의 교역에서 치유에는 일반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중대한 인격적 대인관계가 수반되었다. 예) 문둥병자, 바디매오, 날 때부터 소경 등. 3) 예수께서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마을들을 방문하셔서 그들의 형편에 따라 교역하셨다. 4) 예수께서는 특징적으로 사람들이 생활하거나 일하는 일상적인 활동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예) 바닷가, 우물가, 길가, 장터, 세관, 성전 등. 5) 예수께서는 온간 종류, 온간 형편의 사람들에게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통치)를 증거 하셨다. 예) 사두개인, 바리새인, 헤롯 당원, 로마인, 열심당원 등. 6) 예수의 가장 중요한 자기 노출들 가운데 어떤 것(변화산에서의 노출과 같은)은 서두름이 없이 그의 제자들과 친숙하게 대화하는 성격의 배경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7) 예수께서는 가정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셨다는 것은 교역을 위한 ‘가정’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예) 세리 레위의 집, 가나의 혼인, 바리새인의 집 등. 8)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가정과 작업하는 장소에서 만나셨다. 그곳에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회개와 신앙에로 그들을 부르시었다.

사도들의 관행은 예수의 위탁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위탁에서 심방은 설교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가정되었다. 목사는 환경에 따라 “그의 어조를 바꾸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억양과 몸의 언어로 전달하는 상황에 따른 미묘한 조절은 기록된 말씀이나 또는 형식적인 연설을 통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이고 응답적인 개인적 만남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정규적인 성례전적 수단으로 성례전에 앞서서 목사와 고해자가 일대 일의 대인관계에 참여하는 비밀 고해를 마련해 놓았었다. 가정을 심방하는 사도적인 관행에 복귀함으로써 개신교는 비밀 고해에 대한 효율적인 대안을 고안하였다. 고해를 듣는 사제가 인내와 지혜와 훌륭한 듣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듯이 심방을 통한 개신교 목사의 임무는 훌륭한 조언자가 되기보다는 훌륭한 듣는 자가 되는 것이다.

직접 심방을 통하여서만이 설교에 필수적인 양떼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지식을 획들 할 수 있다. 그 모든 만남에 있어서 중심 되는 과업은 동일하다. 즉 그리스도를 세상에 구현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중보 하는 것이다.

13. 영혼의 목회

영혼 목회는 설교와 성례전, 교육과 교회 행정의 교역들을 포함한 목사의 전체 교역을 기술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목사의 전체 교역은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불리 우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 : 고전적인 기독교 개념에 따르면 인간의 내적 능력들을 통일시키는 중앙이다. 희랍어 ‘푸쉬케’, 라틴어 ‘아니마’이며 두 단어는 히브리어 ‘네페스’를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에 포함된 중요한 의미는 “생명을 소유함” 또는 “살아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 푸쉬케는 신앙생활과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중심이다.

영혼 목회는 인간의 내면 생명에 대한 목회요, 느끼고 결정하는 인간의 중심을 교정하고 양육하는 것이며, 지혜와 신중함과 사랑을 가지고 개인적인 결정을 하게 하는 내적인 핵심을 돌보려는 것이다.

비록 돌보는 사역들이 사실상 전체 평신도의 책임이기는 하지만 영혼들에 대한 목사의 돌봄(cura animarum)은 전체 교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즉 말씀, 성례전, 권면, 교정적인 인도, 공감 형성을 목사 자신의 개인적 통찰을 근거로 해서가 아니라 대표 교역에로 부름을 받고 준비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권위를 부여 받았다는 사실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진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그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전체 몸에 속하여 있는 영혼들에 대한 돌봄에 착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 목회에 필수적인 개인적인 능력들 가운데는 다양한 상황들에 있어서 성경이 적용되는 방법에 대한 실제적 지식, 성숙한 자기 지식, 사람들에 대한 방어적이 아닌 확고한 연민, 정확한 공감형성, 현명한 전후 사정파악과 판단, 적응성, 개방성, 용기, 유머이다. 훌륭한 목회는 개인의 육체적, 도덕적, 영적인 안녕, 성장, 성화에 대한 전인적 관심을 유지한다.

14. 성령의 위로와 권고와 훈련

누테시아(nouthesia)는 일반적으로“경고",“권면”,“경계”또는 교훈”으로 번역된다. 권고는 교구민에 대한 목회 안내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권고는 사랑의 맥락 가운데서 이루어질 때 타당성을 지닌다. 바울은 권고에서 부드러움과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데 수반해야 할 건전한 자기비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맥락 가운데서 경계하라고 사도들에게 요구하시므로 기독교 상담의 패턴을 정해 주셨다. 시간이 경과하자 책망의 의무는 신학적으로는 성화의 교리와 실천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는 실천적인 행위와 연결되었다. 따라서 책망은 내가 선한 양심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권고의 목적은 자기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고 보다 선한 행실을 재형성함으로써 더 높은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보다 전통적으로 표현한다면 그 목적은 회개와 성결과 용서와 개선과 회복이다. 권고의 또 다른 측면은 사람을 위한 구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잘못 인도받고 있는 자를 개혁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교제 가운데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교정의 대화는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과 상호간의 진정한 신뢰에 기초하여야 한다. 권고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믿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하여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목회적 인도는 신자에게 권면의 교정적 교역을 행해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시도될 때는 언제나 사랑의 맥락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 훈련을 위한 유일한 지레 장치는 도덕적 설득, 양식의 내면적 주장들 그리고 성경의 증거이다.

제5부 위기목회

15. 목회실천을 위한 신정론

신정론(theodicy; 神正論)은 고통, 악의 존재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속성, 특히 정의와 자비와 사랑을 옹호하는 것을 말한다.

고전적인 목회적 신정론은 누구도 능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어디에도 비교될 수없는 하나님의 능력, 세상에 있어서 악과 고난의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라는 삼중적인 주장을 모순 없이 결속 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것은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어렵고도 거듭되는 신학적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므로 중요한 고전적인 목회적 신정론들은 세심하게 연구될만한 가치가 있다. 그 핵심적 주장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고난을 의도하시지 않는다는 것, 창조는 피조물에게서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희생을 치루지 않는 한 타락의 자유와 죄를 면하게 할 도리가 없었으리라는 것, 하나님의 능력은 어떠한 악으로부터도 선을 도출 하실 수 있다는 것, 악은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못한다는 것, 달리는 쉽사리 발견될 수 없는 중요한 교훈들이 고난이라는 한계들을 통하여 정확하게 학습될 수 있다는 것, 악은 선의 결핍을 의미 한다는 것, 이 세상도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이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세례요, 또 그렇게 존속하기 때문에 비록 타락된 자유 가운데서 조차 최선의 세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목회적 위안들은 특별한 어려움과 도전이 깃든 세 영역들 내의 특수한 상황들에 대단한 지혜로서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병자에 대한 돌봄, 임종자와 사별자에 대한 돌봄이다.

16. 환자목회

체적으로 병든 사람을 위한 목회는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을 돌보는 평신도의 일반 교역의 맥락 가운데 설정된다. 환자를 돌보는 평신도 교역도 중요하기는 하나 우리의 초점은 이보다 특별히 안수 교역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의무에 있다. 그 의무는 1) 병자를 돌보는 평신도의 교역을 촉진하고 조직하고 무장시키는 것, 2) 병자에 대한 중대한 목회적 소명을 받은 목사는 그리스도의 전체 몸을 대표하는 교역자로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병자를 섬기는 것이다.

병든 이웃을 방문하므로 우리는 사실상 이웃의 결핍 가운데 조용히 숨어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을 부지중에 방문한다. 냉수 한 컵이 메마른 입술을 적셔 줄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공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당장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다. 칼빈은 질병이 목회적인 봉사를 “최대로 필요로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였다.

목회적 모험에 대해 페어베언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고 목사가 위험스러운 영역에서부터 몸을 사리는 것은 직무태만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웃 사람들의 몸을 근심하여 기꺼이 가려는 곳을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목사가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치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목회 대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목회의 실천의 기초가 되는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논리를 밝히는 것이다.

1)심방을 자주 하라, 그러나 심방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하지 않도록 하라. 2)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가급적이면 홀로 교인을 방문하도록 하라. 3) 필요하다면 육체적으로 불편한 곳을 돌보아 주라. 4)공감적인 기도가 화려한 기도보다 더욱 중요하다. 5)기도는 하나님보다는 앓고 있는 교인을 대상으로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6)합리적인 논증보다는 절실한 환자의 욕구에 성경말씀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목회관계의 특성-훌륭한 목회 대화는 자발적이고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여 주의 집중적이며 그 순간의 정확한 감정의 기복을 예리하게 파악한다. 그러한 목회 대화는 바로 그 순간에 환자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 꾸밈없는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게 한다. 그 목적은 고통과 한계 사이에서 투쟁하는 환자를 위로하고 힘을 주며 때로는 고백을 통하여 마음의 짐을 덜게 하는 것이다. 목회 지혜는 하나님 자신이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보시고 있다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병자의 적나라한 고난을 바라보게 한다.

병자를 위한 연도(litanies, 連禱)-육체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한 교역자의 사역 중에 예배의 측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목회 전통에는 여러 세기 동안 환자 목회 사용되고 개정되어 온 많은 기도문과 연도와 예배모범이 있다. 이러한 기도들은 흔히 간결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목회 대화의 본질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러한 성서일과의 일부를 요약하여 병자심방을 위한 모델들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1979년 성공회 기도서 개정 본은 “말씀의 교역”, “안수와 기름 바름”, “성만찬”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이 세 가지는 개별적으로 또는 함께 사용될 수 있다.

기름 바름과 치유의 예배-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마가복음 6: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다. 야고보서 5:14-16 병든 사람들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 교회는 트렌트 회의 결과를 거쳐 기름 바름의 근본적 이유를 하나님의 용서를 중보 하는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기름 바름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치유보다는 위로와 신앙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성례전적인 완화제의 역할을 하였다.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내면의 정신상태가 신체적 여건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기독교 심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주지되어 왔었다. 인간 자유는 물질과 영성의 미묘한 균형, 인과관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과 자유로운 자기 결정과의 미묘한 균형 등 정신․육체 간의 상호작용의 양극 사이에 있다. Health(건강)이라는 영어 용어의 뿌리들은 이러한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의 건전성을 반영한다. 건강은 인간 실존의 흡사 독립적 차원들같이 보이는 육체적, 영적 차원 모두의 건전함이나 훌륭한 기능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병자에 대한 현명한 목회는 도덕적 종교적인 정신 상태와 심리학적인 왜곡들이 정신, 신체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목회적 응답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영적치유는 다양한 상황들과 변하는 질병의 증후들에 응답해야만 한다는 목회의 다양성의 원리를 앞에서 진술하였다.

환자 목회는 1) 목회적 응답은 교인이 만성적 질환자냐 급성환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만성적 질환은 보다 뿌리가 깊고 장기간에 걸친다. 장기간의 지탱 목회와 의미하나 꾸준한 희망의 제시와 우정과 위로의 목회를 필요로 한다. 급성질환자에게는 즉각적이고 예리하나 지속 기간이 짧은 통증이 있다. 교역의 일반적 특징은 즉각적인 반응이다. 2) 정당하게 세례를 받고 교훈을 받았으며 입교문답을 받아 교리문답을 교육받은 사람과 신앙과 훈련에서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환자 목회에 보다 큰 도전을 받아 새롭게 일어설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소박한 용기도 강하게 될 수 있기에 조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원리적 도전은 목회관계의 기초로서 먼저 인격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3) 완전히 맑고 분명한 정신 상태로부터 혼수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의식의 정도는 또 다른 중요한 변수이다. 무의식 상태에 있는 병자에 대한 목회는 본질적으로 중보의 목회요, 언어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을 위하여 전체 교회를 대신하여 기도하는 대표 교역이요, 가족과 친구들과의 조용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희망적 대화를 나누는 교역이다.

17. 가난한 자를 위한 목회

가난한 자를 위한 목회는 집사직 자체의 근본적인 존재의식이며 동시에 목회신학의 항구적인 주제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교회의 돌보는 행위의 영역은 전통적으로 과부들과 고아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 취업 또는 구제 식료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정치적 죄수들, 무능력자들에 이르기까지, 또한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적극적인 정치적 변화의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확대되어 왔다. 가난한 자에 대한 목사의 공감 형성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들로 가서 직접 실질적인 결핍을 배우므로 가장 잘 이루어지게 된다. 기독교 목사는 때때로 가난한 자를 대신하여 부자에게 또한 육체적, 도덕적, 영적 투쟁을 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영적인 인도를 제공하도록 요청받는다. 예수와 사도들은 자의적 빈곤의 길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기독교 교역 또한 방어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위하여 평신도에 의하여 제공되는 자의적인 선물들로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의를 내리자면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자원들을 소유하지 못했고, 또한 그것들을 용이하게 획득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들이 그분 앞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소유한 바 없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돌봄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듯이 그들은 우리의 자비로운 돌봄을 급박하게 필요로 한다.

18. 임종자를 위한 목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한다는 것과 은총은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목사를 찾는 이유는 사람들은 죽음의 상황 가운데서 목사에게 죽음의 두려운 신비를 거쳐서 그 신비 너머에까지 도달하는 교역을 기대한다.

교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의 자각 가운데서 교역은 개인적인 우정을 넘어서, 전체 교회를 대신하여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증거 하는 대표적 직책으로 인식된다. 또 임종에 대한 교역은 대항과 도전을 포함하기는 하나 대체로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을 그 근심을 대신“(사61:1-3)하는 조용한 위로와 위안과 희망의 교역이다.

목사는 죽음에의 접근하는 순간들이 영적 성장을 위한 특별한 기회들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러한 순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완전한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러한 순간이 넘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 민감한 돌봄이 필요하다.

환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행장을 갖추고 죽음의 결과들에 관하여 생각하고 삶의 의미에 대하여 성찰하기 위해서 시간과 돌보는 맥락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생명이 지니는 가장 제한된 상황 아래에서조차 가장 완전한 영적 형성을 이룰 수 있도록 이 사람을 개방시키는 것이다.

약물투여와 진정제 사용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환자들로 하여금 고통을 덜 느끼도록 돕는 진통제 투여에 반대해야 한다는 결론을 성급하게 끌어 내지 말도록 해야 한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죄책과 죽음의 저주를 제거하고 또한 신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함으로 죽음의 공허와 공포로부터 구속하시고자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기독교의 전체 가르침은 영혼을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원에로 위탁하는 이 짧은 순간을 통하여 회상하고 또한 요약한다.

노자성체(Viaticum) 병자와 임종 자를 돌보는 로마 가톨릭 예배는 세 가지 부분들로 이루어진다. 고해, 기름 바름, 노자성체가 그것이다. 고해는 고백의 직무요, 기름 바름은 병자의 치유를 위한 직무요, 노자성체는 임종 자를 위한 직무이다.

기독교 영결예배 모든 유대교 관행들은 상징에 있어서의 한 가지 중요한 변천이 이루어지면서 기독교 전통을 넘어 왔다. 즉 부활의 기쁨에 대한 언급이 초기 기독교 장례예배의 일부가 되었다. 기독교 영결식은 본질적으로 위탁의 기도들로 구성된다. 이 예배는 모든 세례받는 성체를 분급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었다.

영결의식은 성경과 기도를 통하여 사별한 자에게 위안을, 손실 가운데서 공동체적인 지원의 맥락을, 신실하신 하나님과 부활의 소망에 대한 증언을 제공한다. 영결식은 그 개인의 선한 행적을 회고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선함에 대한 회고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선이라는 보다 큰 맥락 가운데 두기를 원한다. 영결식은 죽음과 별리에 취약성을 지니는 인간의 동료정신에 일차적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종식되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 됨에 초점을 맞춘다.

Ⅲ. 독서후기

독서후기

오늘의 목회 현장은 너무나 다분화 되고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변화와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목회에 대한 안일한 생각이나 구태의연한 방식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의 요구도 달라졌고 사람들의 생활 및 사고 패턴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앞서 수고하신 선배 목회자들이 잘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그들의 뒤만 좇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게으르고, 나태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목회의 교역을 감당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및 신학자들을 통해 제시된 목회의 중요 요소들인 예배, 성례, 설교, 행정, 심방, 교육, 권징, 환자, 가난, 임종 목회에 대한 기초 이론들을 정립하여야 한다. 토마스 C. 오덴은 5부에 걸쳐서 목사가 된다는 것, 목사의 직책, 목사의 역할과 그 이유, 목회상담, 위기목회순서로 목회교역에 대해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실제 목회에 적용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목회신학은 하나의 신학으로서 성경에 의하여 증언되고, 전통을 통하여 중보 되고, 비평적 놀이에 의하여 성찰되고,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구현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원들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목회신학은 교회의 일반 교역, 교역의 삶과 과제들, 그리고 직제 화된 교역의 다양한 주요 직책들에 대하여 분명한 정의를 도와주고 있다. 토마스 C 오든의 목회신학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와 닿았던 점은 본서가 목회교역에 대해 정말 자세히 기술하고 있고, 실제적용에 유리하게 저술해 놓은 서적이라는 점이다. 본서를 온전히 정리하고, 이해한 내용을 현장에서 목회 교역에 참여, 적용 한다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목회의 교역자로서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 토의 질문

1. 임종 자를 위한 목회에 있어서 환자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당신이 담임목사라면 이 사실을 환자에게 어떻게 하겠는가? 과연 환자에게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2. 환자에게 약물 투여로 삶을 연장하고 고통을 줄이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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