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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직의 정체성의 발견
1) 구심력있는 목회(중심 :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돕기 위해 발달되고 세분화되던 학문들(실용주의적인 행정이나 목회상담 따위의)이 교역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고 있다. 과연 목사는 상담가인가? 아니면 교역자인가? 치료비를 받거나 정신요법을 쓴다. 정체성의 모호는 기력소진(Burn out)을 부른다. 고전적인 목회적 지혜 필요.
2) 어째서 지금인가?
여성에게도 목사 안수를: 여성에게도 뛰어난 은사를 부어주시는 시대니 성령을 `그녀`라 부르자-모성적 양육 이미지 있으니, 현대의 저술가 보다는 아타나시우스, 바실리우스, 나지우스의 그레고리,크리스소스톰,암브로시우스,제롬,어거스틴,대그레고리를 인용: 전통에 귀를 기울이는 게 옳아 반율법주의에 반대 ,예언적 직책: 값싼 은총, 성적 무절제, 이기주의적 낭만주의, 무정부 상태거부,`진보된 신학`(목사와 평신도의 교역의 구별 없다, 성례전은 희생의 문화적 상징모델, 부활은 어떤 의미에서고 발생하지 않아, 신앙의 핵심 아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이라 어떤`율법적 행위`도 요구치 않는다). 모든 기독교 전통을 포괄한다. 좌파(메노, 퀘이커), 동방정교, 성공회, 로마카톨릭, 5C의 빈센트의 원리에 따라 교부들과 반종교개혁, 감리교단, 그리스도교단, 그리스도의 제자교단 등
3) 방법론
목회신학도 신학이다.
a) 성서 : 교회의 책(정경),목사직과 기능이해에 목회적 지혜에 교역의 이해에 준거.
b) 전통 : 주석(exegesis-교회가 성서를 이해해온 과정),전통의 긍정적 수용 필요.
c) 이성 : 목회적 지혜를 조직, 성찰, 체계화해야 시행착오 없이 일관성있고 설득력있는 발전.
d) 경험 : 나와 타인의 개인적 경험,Context에 대한 비평적 의식 필요.
4) 교역이 왜 필요한가?
a) 왜 통일성있는 목회신학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의 몸을 합당하게 목양하려고
b) 교역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이 그러라 하셨으니-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하시고 인간이 말씀과 성례전을 하도록 작정하심
c) 그러므로 하나님이 수단을 제공하시는 한도내에서만 교역은 존재.
2. 교역의 소명
1) 내적 소명 : 자기 검토
a) 서두르지 마라-지속적이다. 첫 감동 후에 기도의 공동체에서 성장하라.
b) 자기를 검토하라-지적능력, 문장력, 사고능력, 성례전의 의미, 설득력, 논리력, 기도하는 법, 가난한자 소외된 자 병든 자들을 위한 헌신, 순교의 각오, 상처 입은 자와의 공감대 형성, 아가페 사랑과 은사, 영도력, 성서 해석능력 등등
c) 다른 사람에게 나의 잠재은사 검토
2) 외적 소명
보이는 믿음의 공동체의 확증 필수-사도적 전승을 의미하는 전체 교회(목사안수위원회)-비록 오류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목사안수위원회지만 절대권력은 아니나 기도함으로 분별력을 받아 `아니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리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한다.
3) 교역자 후보생 선발기준-외적 소명.
a) 연령 : 30세-314년 네오가이사랴회의 카톨릭은 25세 어느 전통은 21세이지만
b) 지금 확신 중-내적 소명이 오랜 고심.
c) 성령의 은사 소유-교역에 필요한 자기인식, 인내로 동역, 사랑, 연민, 존경포함.
d) 건강-교역을 무능하게 할 가능성.
e) 좋은 인품-이웃에게 인정.
f) 가르칠 능력-양심에 부끄럼 없이 성서와 전통에 합당하게 기독교의 진리.
g) 이유 : 기독교 공동체를 보호.
1. 소명을 확인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내적 소명은 기본, 외적 소명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가족, 친구, 교인, 심지어 주일학교 어린이들...)로부터, 내가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을 얻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내적 소명을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최종적인 근거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바람직한 목회자상의 회복을 꿈꾸며(독후감)
바람직한 목회자상의 회복을 꿈꾸며(독후감)
개신교가 생겨난 1세기 사이에 세계 선교사상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는 이 책의 첯 머리를 읽었을 때는 잠시 생각에 잠겨야 했다. 과연 그럴까 정녕 그러할까. 하나님의 교회의 진정한 발전이란 무엇이기게... 교회가 많아진 것... 성도가 많아진 것... 풋내기 신학생으로서 건방진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나 한사람 개인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첫 제목에서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바람직한 목회자상의 회복을 꿈꾸며”라고 이 말이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라면 이 시대의 목회자들의 잘못된 사상의 회복을 바란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난 1세기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는 저자의 말은 모순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목회자 상을 배우기 위하여 신중하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위 내용의 상반됨을 이해 할 수가 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발전과 회복 그것이 1세기의 역사 안에서 갈등하고 어우러지며 급변하는 시대의 환경변화를 견디어 낼 수 가 있었고 많은 목자들의 끝없는 반성과 회개는 어느 한 시대에 멈추어진 단막의 역대기가 아니고 영원한 진행형으로서 그 시대마다 회복을 꿈꾸며 지켜온 수많은 목회자들의 눈물로 갈고리를 둔 회개의 역사 그것이 발전의 모토이자 기독교의 끝없는 추구이자 현실이라는 것 즉. 하나님의 회복사업은 모든 것을 포함한 인류의 최선으로 둔 염원이며 1901년 이 땅에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지고 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까지 선교사들이 가르쳐온 그리스도의 진리, 그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저자의 가르침이 지난 1세기 동안 이 땅을 일구어온 한국 교회위에 거듭 요구하는 진정한 회복일 것이다.
1:목회자의 이미지를 찾아서
나를 아는 것이 곧 세상을 아는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다. 자기 교회의 모호하고 실망스러운 현실을 잘 견디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잃지 않는 목회자들은 자신의 소명과 직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목회자는 제사장 의식과 함께 예언자적 의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목회의 동기와 방향감각은 자신의 분명한 소명에 있다고 본다. 내적 소명이 검토라면 외적 소명은 신앙 공동체의 확증으로서 자기의 소명의식이 교회 공동체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아울러 소명 받은 목회자의 사명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엡4:12)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1.성령이 충만하여야 하고, 2.비전(Vision)이 있어야 하며, 3.리더십(leadership)과,4.자기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고, 5.인격적이어야 하며, 6.마음이 넓고 부지런해야 하며, 7.스스로 성장하는 것과, 8.이미지를 잘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1장의 가르침이 마무리 되는 요점들을 살피면서 언어로는 단 30분 안에 읽고 쓸 수 있는 교훈들이 목자가 되어서 실천으로 행하여지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할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성훈련이 없거나 투철한 소명의식이 없이는 꿈도 꾸어 볼 수가 없는 목회자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2: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상
목회자라는 명칭은 구약의 목자라는 말에서 온 보편적인 직업이었다. 은유적으로 보았을 때는 다스리는 사람, 즉 감독이라는 뜻이었다. 희랍어로는(ποίμήν)을 번역한 것으로서 ‘보호 한다’ 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회자의 개념은 쯔빙글리에 의하여 목사는 목자와 같은 기능을 연상케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목회자란 목회를 천직으로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 된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의 이미지를 통하여 목회자 상을 찾아 볼 수 있겠다. 1)선포자,(막1:15) 2)예언자,(신18:15-18) 3)청지기,(막(1:14-15) 4)종,(요13:4-5) 5)목자,(요10:11) 등이다. 또한 “목자” 의 어원적 어근은 고어인 ‘레우’의 동족어이며, 아카드의 사르곤 시대 이후로 왕의 명칭들과 비문들에 영예로운 칭호로 사용되었다.(주전2300) 이 단어의 동족어들은 아람어, 페니기아어 및 다른 셈어 들에서도 발견된다. 이 단어는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가리키는 일자적인 용어다. 상고 시대 팔레스틴에서 가장 일반 적인 직업은 양을 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용어는 모든 역사적 시기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술하는 데 상용된 기본적인 용어이다. 이 단어는 창세기 29장7절에서 최초로 나오며, 역본들은 이 단어를 ’먹이다‘ 로 번역한다. 함무라비를 비롯한 고대 서아시아의 많은 지배자들이 ’목자‘라고 불렸으며 그 들은 백성들에게 꼴을 먹여주는 자’ 라고 기술되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선지자, 제사장, 및 왕의 직분을 나타내는 표시들 중 하나이며 왕위에 대한 다윗의 주장은 백성들을 먹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삼하5;2) 이스라엘 관리들이 배성들에게 실량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는 것은 중대한 죄로 간주되었다.(겔24:2이하) 가장 분명한 예는 고레스 왕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종, 즉 목자로서 임명되었다.(사44:28) 목자가 보호하고 이끌어 주면, 양은 목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그래야 목자와 양의 관계가 성립된다. 문제는 양의 속성이다. 양은 시력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청각은 발달되어 있다. 바로 가까이 있는 것도 볼 수 없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의존할 것은 인간의 모든 형편을 잘 알고 계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뿐이다. 라는 가르침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이러한 내용을 외국 번역서적을 통하여 배우려면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인내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책을 다 읽어도 머릿속에는 남은 것이 없고 옮겨 적을 내용을 찾을 길도 없다. 물론 아직 부족함이 많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불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의 본질은 많은 정보를 전해서 공유하자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언어로 서술되어 머리를 아프게 하던 정보들을 쉽고도 간략하게 그리고 성서적인 말씀까지 정확히 명시하여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3:목회자에 관한 역사적 조명
1)초대교회 : 초대교회의 목회자상은 사도시대로부터 교부시대에 를 말 할 수 있겠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사도(아포스토로스)라고 불렸다. 이 말의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 “대사” 전령자 “ 그리고 순회전도자”등이며 그들의 직무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었다. 그 후 신약시대를 지나 2-3세기 말까지는 교회가 점차적으로 정돈되어 가며, 조직화되었다. 이때 교회는 성례와 세례를 강조하였고 한 지역의 감독은 지방교회에 있던 장로들에게 성례전을 거행할 권한을 주었다. 4세기에 이르러 교회가 로만제국에 공인받고 기독교의 영향이 점차로 커짐에 따라 감독은 일반 문제에 대한 재판권도 갖게 되었으며 황제의 고문이 되기도 했다.
2)중세교회 :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교회는 자체 내의 기반을 견고케 하는 동시에,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감독은 교회내의 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목자나 선포자로서 보다는 정치와 행정 쪽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5세게 초 민족 대이동과 더불어 동쪽에서 침범해온 반달족에게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게 되었고 교회도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6세기에 있었던 회교도들의 침입은 동로마 제국과 교회의 위축을 초래하였다. 어떤 수도원에서는 술과 털과 양곡을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여 다 소비하지 못하자 수도원 밖으로 내다 팔아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또한 전쟁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수차에 걸친 십자군 운동에 신자와 성직자들이 직접 참가 하였다. 당시의 목사는 고해성사를 하는 자에게서 인간생활의 가장 비밀스런 부분까지 조사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3)종교개혁기 종교개혁 가들은 습관적으로 목회자(minister)들을 목사(pastor)라고 불러다. 목사라는 용어는 경건주의 특히 교회의 경건주의 의 영향에 있던 18세기에만 보편적으로 사용 되었을 뿐이다. 중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권의 강화를 위해서 국가 위에 군림을 하고 미사와 고해성사를 통해서 신자들을 지배했다. 결국 예배의식에 치우쳐 설교역시 제한을 받던 시대였다. 루터는 설교를 성령의 직무라고 했으며 설교자는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의 사신이고 천사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제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다 설교하고 가르치고 제사장이 되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지는 사명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고 또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한 사람이 택함을 받아 설교자의 직책을 맡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설교하시고 가르치시는 이는 성령이라고 했다.
4)현대교회 :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시기는 교회가 다시금 세속화 시대에서 그 적응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교회는 역사를 이끌고 나가는 세력이 되는 것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시대의 조류가 교회를 이끌고 나가게 되었다. 독일의 경건과 운동은 라이프찌히 대학을 중심으로 한 성경운동의 활동의 결과로서 할례대학을 중심으로 경건운동과 열렬한 선교활동 그리고 교리주의에 빠져있는 교회에 영적 각성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현대 과학주의에 영합하면서 기독교의 전통, 교회와 과학과 문화를 조화시키면서 복음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근본주의 목사들은 성서와 대립되는 냉용을 가진 과학적 지식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으며 개인의 신앙생활을 강조했던 자들이다. 목회자의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이미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목자와 감독자로서의 목회사상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중세는 로마 카 톨릭이 지배하던 시대로 성직자 계급이 군림하고 지배하는 위치에서 정치와 행정, 정신적인 문제까지도 지배하였다. 특히 교황은 교회의 머리로서 국가에 대한 간접적인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16세기에는 종교 개혁기를 거치면서 17세기에는 정통주의 시대가 열렸고, 18세기에는 영적 각성운동과 19세기에의 유럽의 세속화 신학, 독일의 자유주의적 개신교 신학이 나오게 되었고 선교역사상 위대한 시기로 기록 될 만 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20세기에는1-2차 세계 대전과 1960년대 이 세계사적 격동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즘과 세계복음 주의 운동을 통해서 기독교의 활력을 경험하고 있다. 20세기 현대교회는 목회신학을 발달시켰으며 다양한 자질을 갖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목회신학의 발달로 신앙상담과 영적 치유를 통한 목회상담자가 전문적인 임상목회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4:설교에 나타난 목회자상
제1기는 1884년부터 1919년까지로 알렌 박사가 개신교 선교사로서 처음 땅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해부터를 “형성기”로 본다. 제2기는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하에서 민족과 함께 교회가 수난을 당한 시기부터 해방되던 시기까지로, 교회가 발전과 수난을 함께 당한 시기입니다. 이 처럼 나라의 몰락과 외세의 침략으로 찌들대로 찌든 사람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다. 그때의 한국은 열강들의 도전으로 개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안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자유와 개화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국민족의 갈 길을 밝혀주는 유일한 등불이었다. -한애봉-
소명(The Call)
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셔서 우리를 준비 시키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진보시키기 위해 주신 일들.
1) 일반적(내적) 소명: 1. 교제 2. 자유 3. 평화(평강) 4. 증인 5. 고난 6. 영광 7. 거룩함
2) 특별한(외적) 소명: 각자에게 주신 부르심.
* 세상으로의 부르심 vs 목회로의 부르심
→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으나, 단지 포지션이 다를 뿐이다.
목회 - 내적) 자기 스스로가 점검
- 외적) 환경, 공동체가 점검
→ 지적능력, 동점심(하나님의 마음 vs 나의 짜증, 분노의 마음), 육체건강, 타인의 추천, 교육,
영향력(사역의 열매), 소명에 대한 자각, 천성/기질, 목회자마인드, 동역자 의식,
타인의 격려/지지, 내적의지(죽음의 길), 기호
* CALL
Compomention: 확신(하나님/사람)
Ability: 능력, 은사
Longings: 갈망, 기대, 소망(=passion)
Life: 삶
교회에 허락된 다양한 직분들은 내적소명과 외적소명을 요구한다. 내적소명이란 개인 성도가 특정 직분을 감당할수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부르심이 있느냐 하는 문제이며, 외적 소명이란 교회의 회중이 그를 직분자로 부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세워 교회의 직분자가 되게 하실 때, 그 자신이 느끼는 바 내적인 소명을 교회 회중이 선출하는 방법의 외적인 소명을 통해 인쳐주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직분으로 부르신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 목회자의 소명
목회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이다. 죤 칼빈은 `만약 어느 누가 교회의 참 목자로 간주되려면, 그는 교회의 객관적 혹은 외적인 소명과 목사 자신만 의식하는 은밀한 내적 소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목회는 내적 부르심과 외적 부르심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목회자는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인가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먼저 자아 검토를 한 후 자신이 잠재적인 목회 자질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견해를 타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의 소명의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목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개인적이고 내적이며, 직감적인 감정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그러한 감정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독단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잘못을 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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