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독교 윤리학 개론
서 론
오늘날 우리 사회에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무질서하며 생명의 존엄성이 상실되어버린 이런 사회속에서 기독교 윤리의 공부를 통하여 우리 기독인들의 진정한 인격적인 성장과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일은 우리가 먼저 해야할 과제인 것 같아 어깨가 무겁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식하고 바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결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지 않는다. 목적이 선하면 수단도 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는 많은 부분들이 상황 윤리적인 것을 볼 수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그 원리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셔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자녀가 1,200 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많은 성장을 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이 땅의 사회는, 기독교 문화가 역사 하는 것이 아니라 비 도덕적 상황윤리를 인하여 이 세상이 얼마나 부패되어 있는지를 그냥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 문화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모두가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이원론적 구원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과 세상일을 다르게 가르치면서, 개인 구원론 만을 가르치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과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의 빛으로서 소금으로서의 삶의 조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기독교 문화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지 교회 양적 성장만 추구하면서 개인주의 및 지 교회 중심의 교육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하고 말씀과 타협하고 자기 자신과 타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온전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식자층에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인격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관계속에서 정의를 위해 진리를 행동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써 이 한국땅에 거룩한 성경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이 임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서게 될 것이며, 사회가 되어 질 것이다.
본 론
1. 기독교 윤리의 정의와 기초
1) 정의
"성경과 이성과 자연의 조명 속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근원과 원칙, 그리고 실천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미국 루터교 학자인 카이저(L. S. Keyser)는 말했으며 저자는 기독교 윤리의 방향을 사회 안에서의 개인의 전반적인 삶에 적용되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실제화된 예수의 도덕적 모범과 가르침에 관한 조직적인 해설이라고 정의하며 제시하고 있다.
(1) 과제와 범위
①과제 : 윤리학은 두가지 기능을 갖는데 하나는 '최고선'(最高善)을 정의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최고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간의 행위인 원칙들을 선언한다. 철학적 윤리학에 있어서는 삶에 관한 최고선(summum bonum)을 위한 탐구는 쾌락, 행복, 권력, 의무, 자신을 위한 의무 그리고 자아 실현과 같은 여러 가지 이론을 이끌어 냈으며 성경적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윤리적 목표로서 설명한다. 성경 해석과 주석을 통하여 기독교 윤리학자는 인간 행동을 위한 하나님의 뜻의 성격과 목적을 결정하고자 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②범위 : 기독교인은 개인 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산업, 국가의 영역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이 영역 속에서 살도록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더 부합하도록 자기의 몫을 이행하게끔 부름 받은 것이며 아디아포리즘(adiaphorism)- 어떤 행위가 선에도 악에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 - 역시 기독교 윤리 범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기독교 윤리는 넓게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라는 용어로 나누어지기도 하는데 목적론적 윤리는 인간의 목표 혹은 종말에 관한 문제와 더불어 시작한다. 또한 의무론적 윤리는 순종의 윤리이다. 기독교 윤리는 성격상 의무론적이기도 하고 목적론적이기도 한 것이 분명하다.
㈏ 다른 학문과의 관계
기독교 윤리는 다양한 사회 과학, 특별한 사회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윤리학은 사회 현상에 관한 자료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조건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위하여 이와 같은 학문을 주시한다. 또한 철학과 관련을 갖는데 철학적 통찰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사도바울 역시도 헬라의 도덕, 특별히 스토익의 영향력을 반영하며 온유와 절제를 실천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모두 헬라적 개념인 것이다.
철학적 윤리는 이성과 더불어 출발하는 반면 기독교 윤리는 계시로부터 시작한다. 이성으로 출발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게시로 출발되는 것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학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은 상담을 위함이요 도덕적 성장을 자극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신학적인 것만큼 또한 윤리적이었기 때문에 복음의 윤리적인 내용을 이해함과 강조함이 없이 기독교를 바로 해석할 수 없다고 저자 바네트는 연구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2) 기초
우리는 가정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러기에 과학자들은 자연의 가해성(可解性)과 일률성(一律性)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며 철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며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출발하는 전제 조건을 신앙이며 마찬가지로 기독교 윤리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생명으로 시작한다.
비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나름대로의 신을 숭배하는 범신론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의 견해는 하나님은 인격적이고, 주권자이며, 거룩하고 영적인 분인 유일신으로 의의 완전한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윤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초하고 있는 신 중심적이며 의의 완전한 표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기초가 된 신학 윤리이다.
양심은 도덕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양심을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마음"이라 정의했다. 양심은 인류의 보편적 소유물이며 양심에 대한 기독교의 명확한 개념은 '선한 양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함을 받았다. 기독교 윤리는 속죄의 윤리이다. 십자가는 도덕적인 논제가 사회적 맥락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가 이상적인 것으로 충족된다 할지라도 도덕의 문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것임을 나타낸다.
2. 히브리 도덕과 성경 윤리의 특징
히브리 윤리는 하나님 자신의 본성에 관한 히브리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철저하게 신 중심적인 것이다. 하나님 뜻에의 복종은 구약 성경 윤리의 기본적인 원칙이며 하나님 뜻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무'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은 최고선이며 불순종은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사랑이며 구약 성경 속에서 선택과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과 히브리인들 사이에 있는 계약적 관계의 기초이기도 하다. 계약과 선택적인 사랑은 도덕적 책임과 봉사를 포함하며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은 또한 도덕적인 책임을 포함한다. 아울러 거룩한 선택은 또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뜻의 대행자는 인간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 있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통치권의 일부를 대리케 하신 것이다. 결국 구약 성경 윤리는 그 사회적 목적으로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는데 있다.
이스라엘의 도덕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의 도덕적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들이지 사람들의 습속이나 관습이 아니다.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를 다루며 5계명부터 10계명의 여섯 계명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적합하게 요약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 도덕의 최고 수위(首位)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들 수 있는데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그리고 예언자들의 윤리는 학문적이거나 사색적인 도덕이 아니라 의롭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 기초한 도덕이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거룩한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는데 소수의 통치자 및 탐욕스러운 토지 소유자들에 의해 억압하고 가난하게 되었으며 법정은 부패하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는 등 망국적 현상인 술, 통치자의 사치스러움을 달렸을 때 예언자들은 심판과 희망을 선포했다. 윤리적으로는 정의와 의, 자비 그리고 사랑의 원칙들을 강조했다. 참으로 에언자들이 우리들의 세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늘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혜자들(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을 통해 시도된 도덕적 진리에 관한 요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행위의 핵심적인 규범들을 우리들이 간직하는데 도움을 주며 구약 성경의 종합적 윤리 개념은 인간의 이성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율법과 예언자들 그리고 지혜서에서 나타내 보여진 것처럼 사랑과 충성과 의와 정의이다.
3. 그리스도의 윤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관한 완전한 원계시(原啓示)이다(히1:1-2). 그 속에서 율법과 예언자 그리고 지혜자들의 윤리적 교훈의 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을 '사로잡은 관념'은 하나님 나라였다. 그것이 메시지의 핵심이었고 그의 사역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의 최고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이다. 성경 속의 의는 삼중적인 의미를 갖는데 곧 구원론적인(구속, 혹은 구원으로서의 하나님의 의), 윤리적인(행위의 규범으로서의 하나님의 의), 종말론적인 (역사 속에서 그분의 목적 성취로서의 하나님의 의) 의미를 갖는다.
결국 예수의 규범은 하나님의 의와 일치하며 공동의 관습에 대한 일치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분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하며 그분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해야 하고 그분이 자비로운 것처럼 자비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의의 규범은 단지 사회의 관례나 관습이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의 의 인 것이다.
이것은 산상수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의의 윤리는 산상수훈에 나타난 주제 또는 맥락이다. 산상수훈에는 예수의 성품, 영향력, 동기, 행위 등 이 독특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설교야 말로 도덕적 교훈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으며 기독교인의 태도와 행위 속에서 근본적인 모범을 제시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윤리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겠다.
4. 성경 저자의 윤리
성경의 저자 중 사도 바울은 초대 기독교의 윤리적인 문제들과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정'을 해석한 최초의 위대한 해석자였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 안에서의 특별한 도덕적 문제들의 출현은 그에게 예수님의 윤리적인 이상들을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의 윤리적 교훈은 신학적 교리 위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바울의 윤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령의 윤리이며, 회개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교회의 윤리이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는 윤리적 강조점은 바울의 저작 속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약 성경의 다른 저작자들의 저작 속에서도 나타나 있다. 요한의 저작들은 복음서와 바울 속에 있는 사랑의 우월성을 해석해 주고 있고, 야고보서의 서신은 산상수훈의 반복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그리고 유다서도 윤리적 도덕적 원칙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성령을 우리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기여해 주고 있다. 원칙적인 면은 대부분의 윤리적 자료는 예수님과 바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5. 성령의 윤리
기독교 윤리중 주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소홀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성령에 관한 것이다. 만약 성령의 도덕성에 대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흐려진 유리창을 통해' 이교훈들을 보게 되는데 초기 구약 성경 문헌에서 성령은 인격적으로가 아니라 힘으로 묘사되었으며 윤리적 개념으로서는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또한 예언자의 카리스마적 은사와 관련을 갖고 있었으며 포로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령에 대한 지배적인 개념은 무도덕적인 것이었다.
신약 성경 속에서 성령의 개념은 인격적이고 윤리적으로 되었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성령이며 종종 성령행전 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성령은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도덕은 다양하기에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고 유지된다. 성령은 세상의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고 확증케 한다. 그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며 살도록 하신다. 또한 우리에게 힘을 주어 활동하게 하시고 모든 은사의 출처가 되시어서 공동체의 일반적 선을 위해 공헌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도덕적 성품을 발전시키게 해주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시는 신비적인 것이 아닌 도덕적이며 감상적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며 인격적인 것이다.
6. 적용 및 문제점
자신에 대한 의무
기독교 윤리에 기본적이 문제는 자기 사랑(self-love) 타인 사랑(selfless-love)의 의미이다. 자신을 위한 사랑의 척도는 타인을 위한 사랑의 표준이 된다. 이타적인 사랑의 이론은 자기 수용과 자기 실현의 타당성을 거부함으로써 그 품위를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윤리의 특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아닌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신학적 의미에서 자아 부정은 자아 파괴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 실현으로 아가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과 동일시 될 때 아가페의 사랑의 의미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봉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이기적이 아닌 것이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을 적당하게 돌보아야 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자의 몸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고전6:13), 성령의 전이요(고전 6: 19), '산 제사'로써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 드려져야 한다고(롬12:1) 선언했다.
인간의 생명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위탁받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목적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영광 돌려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데 자살은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는 것이 된다. 또한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 조차라도 지성을 계발하고 단련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영적 생활 수련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기도 하기에 몸과 마음을 잘 단련시키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개개인의 가정에 대한 헌신과, 활동적인 교회 생활, 소유에 대한 청지기 생활 등을 전개함으로 성령 충만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를 수 있는 인격적 하나님의 사랑을 지녀야 한다.
가족에 대한 의무
가족은 모든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된다.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혼이 전제가 되는데 결혼은 하나님께서 신성하게 제정해 주셨고 모든 존제의 기초로 주셨던 것이다. 결혼은 목적이 있다. 성경을 근거로 한다면 상호 동반 자적인 목적이 있고 자녀 생산에 있으며 건설적인 성적 완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하며 상대방에 대하여 신뢰하며 순결하며 아가페의 사랑을 바탕으로한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이혼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결혼식장에서 주례자의 선포함을 듣게 되는데 하나님이 짝지워 준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다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함으로 이혼의 사유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나 우리들의 공동속에 아가페의 사랑이 있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긴장의 요인으로는 결혼후 배우자를 고쳐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되며 재정적인 문제, 성적인 문제, 자녀문제 신앙문제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혼을 하지 말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않된다.
사회적인 의무
윤리적으로 사회에서 대두되는 문제는 너무 방대하다. 인종문제, 경제생활, 정치적인 삶, 의료 윤리 등 참으로 고민되며 해결해야 될 현안 문제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가페의 사랑이 있을 때 인종문제는 해결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차별되어서는 안되며 고유에 있는 인격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만 한다.
성경 전체를 볼 때 재산에 관계되는 윤리를 많이 제시 하셨는데 가장 좋은 본보기를 사도시대의 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경제에 대해서 청지기의 자세로 임해야 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 서로 나누어주며 통용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되 노동의 의무를 허락하셨으며 직업에 대해서도 기독교적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을 택하여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오늘날은 경제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자국의 이익 때문에 피해를 보는 약소국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무리한 요구는 지향하며 세계의 공익과 평화를 위해 윤리적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약육강식하는 풍조는 사라짐이 마땅하다.
생명윤리는 행위가 도덕적 가치와 원리의 조명아래 수행되는, 생명 과학과 건강 보호 영역 내의 인간 행위에 관한 체계적 연구라고 정의 된다. (임신중절, 복제인간, 안락사 등). 우리 주님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존귀히 여기시고 친히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의료행위를 하셨다. 이처럼 사람의 생명은 존귀하다. 그러나 일정한 원칙은 세워야 하며 벗어나는 것은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 만이 행하실 고유의 권한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하며 죽음조차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며 존귀함이 있어야 하는것이 의료 윤리의 핵심이라 하겠다.
결 론
의의 윤리는 산상수훈 전체에 나타나 있는 주제 또는 맥락이다. 그리스도인의 성품, 영향력, 동기, 행위 그리고 성품의 시금석들이 독특하게 서술되었다. 분명한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설교 속에 윤리의 모든것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에도 언급하고 있다. 이 설교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것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설교에는 도덕적 교훈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으며 기독교인의 태도와 행위속에서 표현되어야 할 진리에 관한 근본적인 모범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인간의 기본 특색은 자기가 자기에게로 구부러져 있다. 그래서 출발도 자기, 중간도 자기, 마지막 결론도 자기여서 자기에게서 시작하여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모든것을 다 자기를 위해서 이용하고 마지막에 자기가 선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이용한다.
우리 기독교가 상황에 따라서 모든것을 이해 하면 모든것이 다 정당화 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알것은 기독교의 계율주의를 무시할때 과연 그 기독교가 생명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한 윤리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인간의 삶의 기준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땅위에 펼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나의 삶에 전적으로 임하게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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