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선택한 순간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은 시국의 급박성 이념 갈등 등이
삶을 짓누르던 시기였다 주위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농성 현장으로 나갔고 그런 상황에서 기독 학생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떳떳이 드러내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내가 신앙을 부끄러워한 근본적인 이유는
학내 주류 집단으 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술을 마시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세상을 의식하면서 살던 나를 일깨운 사건이 있었다.
학과의 공식 술자리에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유행가 한 곡을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문득 나의 걸음걸이가 흔들리고 있고,
다음날 주일학교 공과 공부를 인도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들 앞에 선
내 모습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때 내 안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아이들 앞에 서는 것만 부끄럽다고 여기니?
나는 매일 네 앞에 있었단다.”
그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행위를 부끄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생활에서 나의 행동 기준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리스도를 선택한 순간 내가 세상과
충돌하기로 선택한 것임을 깨달았다.
세상에 한 발을 딛고 있으면 하나님의 빛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 내게는 자명한 진리가 되었다.
-「내려놓음」/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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