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
본문/ 빌 1:3-11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ꡒ감사와 기도ꡓ 그리고 그 ꡒ열매ꡓ에 관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바울은 왜 하나님께 감사 했습니까? (3-4, 7-8절)
본문 3-4절에 ꡒ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ꡓ했습니다.
주의 종이 나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생각한다면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주의 종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무엇을 생각했기에 감사했습니까?
7,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ꡒ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내 증인이시니라.ꡓ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항상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3절). 왜 그렇게 그들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해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7절). ꡐ이는ꡑ이라는 말은 ꡐ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는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바울은 감사했습니까?
첫째,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7절 上).
ꡒ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ꡓ 이 말씀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마음에서 떠날 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들을 바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을까요?
또한 반대로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바울의 마음에 그들이 떠나지 않았을까요? 이 모두는 바로 ꡐ사랑의 관계ꡑ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이 사랑하는 사랑은 서로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계획적으로 베푼 사랑에 갑절로 받아 내기 위한 그런 음모가 섞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조건이 없습니다. 너와 내가 ꡐ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십자가를 사랑한다ꡑ면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20-21절에서는 ꡒ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주께 이 계명을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ꡓ고 했습니다.
둘째,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은혜에 참예했기 때문입니다(7절 下).
다음 두 번째로 빌립보에 있는 모든 교인들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는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증함과 확증한 일에 그들이 함께 하고 참예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를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7절 하반절에 보면 ꡒ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ꡓ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할 때 기도해 주는 자들이 바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복음에 참예한 자들입니다. 고후 1:11절에서 ꡒ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ꡓ고 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사모하고 생각한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8절).
본문 8절에 ꡒ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ꡓ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를 위해서 지극히 사모하는데 얼마만큼 어떻게 사모하느냐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떼에 대한 사랑의 심장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연상하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 빌립보교회의 목자인데 목자가 지금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떼인 빌립보교회를 지금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장이란 원어상 감정의 장소로서 심장, 간, 폐 등 내장을 가리킨다. 정(情)에 대한 가장 강한 표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뭉클한 정을 가지고 사모한 것입니다.
이같이 사모한 것은 하나님이 증인이시라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이런 정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런 심장과 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쁨으로 간구하게 했습니까?(4-6절)
본문 4절에서 바울은 ꡒ간구 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ꡓ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기도했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시간을 초월합니다. 한정된 어느 때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기도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시간마다, 즉 기도 때마다 빌립보교회 온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되 기쁨으로 기도했습니다. 여기 ꡒ너희 무리를 위하여ꡓ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은 7절과 8절에도 나옵니다. 이 말은 ꡒ너희 모두ꡓ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온 성도들을 지칭할 때 ꡒ너희 모두ꡓ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일부러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 모두를 생각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쩌면 빌립보교회 내의 내분과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어느 한 편의 사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 온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어필되어 있습니다.
첫째, 처음부터 끝까지 바울의 복음 사역과 함께 했고 그와 교제했기 때문입니다(5절).
5절 말씀에 ꡒ첫날부터 이제까지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ꡓ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이 빌립보교회 온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이유와 그 성도들을 위한 확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한 이유로서는 ꡒ첫날부터 이제까지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ꡓ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처음 복음을 증거하여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복음의 사역을 했습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여기서 빌립보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감당할 때 그 사역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헌금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 두 번 그들이 헌금을 보낸 것을 염두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빌 4:16).
빌4:15-16절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 빌립보인들이 두 번이나 헌금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4:18절에 보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또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 왔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사역에 빌립보인들이 참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때 빌립보 교인들이 동참했습니다.
요한삼서 1:8절에 ꡒ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ꡓ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 ꡒ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한 자들ꡓ입니다.
한결 같이 복음 증거를 위해서 헌금으로 동참했습니다. 헌금에 동참한 성도들 역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함께 동참한 자들이요, 함께 수고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현장에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지 못할 것 같으면 헌금으로 동참해서 함께 복음을 증거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기도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기도하면서 각자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도록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ꡐ간구ꡑ라는 말은 ꡐ결핍을 채워 달라ꡑ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즐겨 사용하는 ꡐ기도ꡑ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특별히 ꡐ결핍을 채워 달라ꡑ는 의미에 해당되는 ꡐ간구ꡑ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ꡒ너희 속에 착한 일ꡓ때문입니다(6절).
바울은 계속해서 6절에 ꡒ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ꡓ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한 ꡒ너희 속에 착한 일ꡓ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본문의 문맥에서 ꡒ우리에게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신 이ꡓ가 누구냐고 말하느냐면 바로 하나님임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인들의 그러한 바울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헌금으로 인한 교제의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다면 그 열매로써 반드시 착한 일이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즉 복음을 위해서 헌금하고 봉사하고 땀흘리는 일로 나타나야 합니다.
믿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ꡒ그 믿음이 능히 자신을 구원하겠느냐ꡓ(약 2:14)고 말씀합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ꡒ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ꡓ고 했습니다.
ꡒ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ꡓ이란 심판의 날입니다. 즉 종말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 믿는 자들에게 완성될 구원을 허락할 그 종말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날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 선지자들의 선포에 ꡐ주의 날ꡑ이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종말,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신실한 백성들이 구원의 완성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까지 너희 속에 이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꼭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는 말씀입니다.
3.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9-11절)
ꡒ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ꡓ
바울은 이제 빌립보교인들을 향한 감사 기도를 끝맺는 부분에 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한 기도 내용입니다.
첫째, 빌립보인들의 사랑이 더욱 풍성해 지기를 기도합니다(9절).
빌립보인들은 사랑이 풍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바울에게 구체적으로 같이 걱정해 주었습니다. 바울을 위해서 헌금을 보내 주었습니다. 옥바라지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으로 그들의 사랑이 잘 나타났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원래 사랑이 많은 사람인데 그 사랑이 더욱더 풍성해 지도록 기도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랑은 맹목적이 아니라 ① 지식과 ② 총명을 동반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말 번역에 ꡒ지식과 총명ꡓ이라고 하는데 여기 지식이란 더 깊은 깨달음, 구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 깊어짐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더 깊이 깨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ꡐ총명ꡑ이란 ꡐ통찰력, 분별력ꡑ입니다.
이것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풍성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풍성한 사랑을 갖추게 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① ꡒ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ꡓ ② ꡒ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ꡓ라고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란다는 기도입니다(11절).
올바른 믿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해 지기를 구하는 바울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결국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이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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