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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요한복음 연구 - 3)

까망쑤나 2011. 10. 13. 12:41

 

(아레오바고 요한복음 연구 - 3)

표적들의 책-1

• 요 2-4장


- 2-12장 표적들의 책(위의 실체를 드러내는 Sign) - 1:11절과 상응/공적계시

- 7개의 표적 :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표적은 하늘의 영원한 실체를 띈다. 위의 세상 진리 계시.

  구조: 표적 + 유대인의 오해 + 예수님의 강론(오해기법:misunderstanding technique)

  ①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2:1-11)

  ②고관의 아들 치유(4:46-50)

  ③베데스타 못에서 38년 된 병자 치유(5:1-15)

  ④오천명을 먹임(6:1-15)

  ⑤물 위를 걸음(6:16-21)

  ⑥소경 치유(9:1-12)

  ⑦나사로를 부활시킴(11장)


- 2장의 가나혼인잔치와 성전시위사건 : 종말에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여 하나님의 구원 잔치를 베푸시는 분

  구약에서는 종종 구원을 잔치로 표현(시 23:5, 사 25:6; 55:1-2) - 흥겨운 잔치를 가져온 자, 예수

  잔치: 풍요로움, 배부름, 만족, 기쁨 /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창조주의 무한한 부요함에 참여하는 것!

         탕자의 비유(15:11-32) - 쥐엄 열매도 없어서 못 먹는 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니 상속자의 지위 회복

                             살진 송아지를 잡고 풍악을 울리는 잔치로 표현


- 가나의 혼인잔치

    한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 기쁨의 잔치가 죽어버린 것.

    유대교 결례를 위한 여섯 돌 항아리(성전을 상징 2:6)

       - 유대교의 정결의식(제사)은 더 이상 잔치를 지속할만한 힘이 없다  

   예수께서 새 포도주를 만드시다 - 기쁨의 잔치 재개


- 성전시위사건

   예수께서 효능이 없어진 유대교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완성하고 대치하여 종말의 구원을 가져오심을 상징

   성전이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잔치하고 교제하는 곳

   이 잔치,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와 소통을 방해하는 것 - 죄,

   성전제사 - 이 죄를 제물의 피로 덮어버림으로써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

   피상적인 제사(성전 마당만 밟는 것) - 관습적이라도 제사만 드리면 땅의 일이 잘 풀릴 것

   예수님의 성전시위 -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은 제사를 더 이상 받으시지 않겠다는 것

                     너희가 이 성전을 헐리라=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 21:6)

   성전정화 - 단순히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

   성전시위 -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과 교제의 장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선언하신 것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잔치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

   성전을 3일 만에 다시?

      -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 최종적인(종말론적) 제사(인간의 죄를 씻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함)를 수행,

         예수님의 육체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죄 씻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됨의 기능을 수행)이 됨.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

- 니고데모의 방문(3:2)

  니고데모: 유대인의 선생, 유대인의 관원, 경건한 바리새인, 예수님을 찾아올 정도의 열심히 있는 자

  방문시기: 밤(아래세상 사람, 암흑의 사람), 그가 빛이신 예수님(8:12)께 나아온다.

           ↔유다의 배반장면(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가니 밤이러라”


- 니고데모의 질문(3:2) 당신은 하늘에서 오신 분

  예수님의 대답(3:3)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아노텐 anoten) ‘위로부터’, ‘다시’- 이중의미

                    cf. 요한이 즐겨쓰는 기법 - 오해기법(바리새인들의 오해), 이중의미, 역설(irony)

  니고데모의 질문, 오해(3:4)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는가? 모태에 다시 들어가는 것인가?

  예수님의 대답(3:5) 물-세례, 성령-위에서 오는 하나님의 힘

  니고데모의 질문(3:9) 어찌 이런 일이...

  예수님의 대답(3:10-15) 땅의 일도 믿지 않으면서 하늘의 일은 말해서 무엇하랴?(3:12)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3:13) - 하늘에서 온 자만이 하늘로...

                      인자도 구리뱀처럼 들려야!(3:14) → 영생!(3:15)  cf. 민 21:4-9

                      구리뱀처럼(십자가), 구리뱀을 본다(눈을 들어 하나님, 위를 바라볼 때) 

                         -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도를 닦는다고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구리뱀을 본 자가 구원을 받았듯이 들려진 인자를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 하나님의 사랑과 내어줌/보내심의 형식

  ‘인자의 들려올려짐’에 대한 해설(3:16-17)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3:17). 왜? 심판이 아니라 구원!!! - 보냄의 형식(롬 8:3, 갈 4:4)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주셨다(3:16). 사랑, 은혜 때문에 - 내어줌의 형식(롬 8:32, 갈 2:20)

    이것이 유일하고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인자의 들려올려짐/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사건

            그리하여 어둠에 빛이, 증오에 사랑이, 환상에 본질이 계시된다.

    유대교의 최고봉 니고데몰 할지라도 구원을 보증받지 못한다. 구원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 = 인자!

    구원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십자가의 대속과 새언약의 제사로 내어 주시는 사랑을 베푸셨기에 가능!

     -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사랑의 실현(움직임)이다.

 

- 구원/심판, 동전의 양면(3:18-21)

    빛 , 어둠의 선택, 예수님을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하나님이 세상에 빛을 가져 오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암흑을 좋아해서 그 빛에게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이 어둠의 자식임을 드러내는 것 - 역설적 표현  


-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의 분리(4:6-9)

  솔로몬 이후 남조유다, 북조이스라엘로 분리

   북조 이스라엘(주전 722-721)은 앗시리아에게 멸망/대다수가 노예로 끌려감/

      그들이 살던 사마리아 땅에는 이방사람들이 많이 이주 → 혈통적/종교적 혼합된 족속

   남조 유다(주전 587-586)는 바벨론에게 멸망 → 바벨론 노예로 끌려감/

    70년후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칙령으로 1차 귀환 -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여 민족공동체를 이루려고 함

      바로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땅에 살던 유다의 정착을 방해/적대적 행위(에스라 느헤미야)

     유대인의 입장: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불결한 족속이요, 유대인의 원수!


-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호와를 섬기며 모세의 율법을 따른다고 주장!

- 유대인들은 사마리아교를 시내산 언약체계의 저질적 왜곡으로 봄.

- 이런 갈등이 사마리아(게리심 or 그리심 산의 성전)와 유다(이스라엘 성전)의 종교적 갈등으로 확산!


- 그런 배경 하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남(야곱의 우물과 영생의 생수!)

    목 마르다 물을 달라고 하더니, 자신은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고 한다. 이해? 오해!

    여인은 시내산 언약으로 살기에 더 이상 물이 은혜가 필요없다고 한다.

    자신들은 야곱의 우물(시내산 언약체계, 율법의 언약체계)로 구원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야곱의 우물은 결국 목마르게 될 것이다(4:13). -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다.  

     종말에는 성령이 퍼부어지리라(요엘 2:28-29)는 예언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물, 영생의 생수를

       먹어야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야곱의 우물이 아니다. 


-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4:20): 그렇다면 예배는?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이냐?

- 예수님의 대답? 둘 다 아니다. 위에계신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4:21), 땅의 모조예배가 아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은혜)과 진리(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예배!        

    →  “진정(진리)” 알렉세이아 : 그림자나 모조품의 반대말인 ‘실체’

    →  “신령”: 성령이 가져다주는,

    →   신령과 진정: 성령이 가져다주는 실체로서의 예배/기존예배: 모조품, 그림자와 같은 예배


※ 예수께서 성전을 완성함으로써(2:13-17)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 내주하시는 것이 가능하므로, 이제 땅의 백성들도 실체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를 알고 예배하는 시대가 곧 열린다는 뜻.

이는 결국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열리는 것이다. 종전의 성전예배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다만 그리스도의 구원의 완성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유대교 최고봉인 니고데모도 오로지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고, 사마리아의 여인도 그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은 은혜로만 가능하기에 제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제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