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 다중 문화인의 시대
흔히 오늘날을 가리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라 일컫는다. 이 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촌으로 좁혀진 세계 속에서 한 나라의 일은 그 나라의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문제가 되기 십상이고, 또 국제적 이슈는 한 나라의 현안으로 곧바로 부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갈수록 국가 사이의 칸막이는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지구공동체의 시대에는 여러 '문화'에 여러 갈래의 '뿌리'를 내리는, 이른바 '다중 문화적 국제인'들이 많이 나타난다. 단순히 국적을 여러 개 가진 물리적 다중 국적자가 아니라 여러 문화와 언어를 자기의 태반으로 간직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과 판단, 상상과 창조를 여러 언어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이들을 여러 국가와 국경을 접한 유럽의 다문화 전통에서는 이미 익숙히 보아온 바다. 하지만 이제 동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권 국가 중에서도 한 두 사람의 예외적 천재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무리를 지은 허다한 사람들이 다중 언어인, 다중 문화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이전 시대에는 짐작도 못할 규모의 인적·물적 교류, 통신과 교통의 발전에 따른 문화소통이 이런 현상들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다중 문화인들의 가장 두드러진 역사적 사례는 유대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1) 이들은 그 사는 곳이 어디든 자신들의 야훼 신앙을 견지하는 동안에는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의 정체성을 필연적으로 간직해왔다. 이와 동시에 자신이 새로 뿌리내리는 지역의 문화와 언어에도 함께 참여함으로 적어도 2중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런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주관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전혀' 다른 기원의 발상을 제시하게 될 때 그들이 살던 서구세계에선 '계시'와도 같은 새로운 사유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진 발상, 이쪽 세계에서는 꿈에도
그릴 수 없던 어떤 생각 보따리가 저쪽 세계에서는 일상의 지혜로 흔할 수 있다면, 다른 발상을 이쪽 사유세계로 끌어들임으로 가져오는 문화적 충격은 마치 내면의 눈을 뜨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생각의 뭉치를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 창조의 촉매자 또는 매개자로 일컬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유대인들을 이른바 천재들의 집단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던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들은 2000년 이상을 이러한 이질 문화의 정체성을 따로 견지하면서 동서양 문화의 매개자 역할을 서구 역사에 해왔다. 그 역할이 일단은 충격과 혼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사유의 자극과 참신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생각의 개척자로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된다. 우리는 이 같은 다중 문화 소속의 특수성이나 문화 매개의 역할 등의 본질적 성격을 염두에 두고, 초기 기독교에서 이런 성격들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하나님 경외자'들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 기독교 형성과 전개의 연구에서 그 역사의 단편들은 사도행전을 통해 거의 전적으로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이 문제에 관한 시사점들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II. 사도행전의 다중문화 귀속인 :
디아스포라, '하나님 경외자'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초기 기독교 선교 수행자인 핵심 인물들을 제시함에 있어 어떤 의도성이라 할까, 공통점을 보인다. 즉 사도행전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2중 문화자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주로 두 가지 다른 문화적 세계에 동시에 포함된 2중 정체자들로 규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인물들을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1) 우선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이 이방선교의 중요 수행자들로 나타난다. 바벨론 포로 귀환시대 이래 세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야말로 유대교와 이방세계에 동시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다중문화 귀속인들이었다.
2) 또한 정반대로 이방인이면서 유대적 종교, 문화, 관습 등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성서는 지칭하고 있다. 아래에서 이 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기로 한다.
A. 디아스포라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신약의 선교, 특히 사도행전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 중 몇몇 핵심 인물들을 가까이서 검토해 보자.
(1) 바울
디아스포라 초기 기독교인의 대표로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바울을 꼽을 수밖에 없다. 그의 디아스포라로서의 면모와 역할은 널리 알려진 바 있지만, 이에 관한 일반적 이해의 수준을 넘어 상론하려 한다면 또 다른 논의의 마당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비교적 간략히 특징적 모습만을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방지역 출신 유대인 바울은 그 정체의 이중성에 걸맞게 바리새적 열정을 가졌는가 하면(행 22:3-5; 23:6) 로마 시민(행 22:18)의 지위를 가졌다는 점이 그의 활동과 역할의 특이성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 게다가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로마시민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적 교양과 학문을 겸비한 국제인이었음이 이런 측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유대인이며 로마제국의 시민이라는 이중 정체, 거기에 덧붙여 정확하게는 기독교인이라는 3중 정체를 가졌던 바울, 그의 이 세 정체의 규명이 이 인물의 배후를 파악하는 일이 된다. 즉 바울은 동시에 세 가지 다른 세계, 다른 문화 속에 살았던 전형적 다중 문화인이었다.
물론 바울 자신은 자기의 출생지를 밝히지 않는다. 4세기 문서에는 갈릴리 출생이라는 기록도 있지만,2)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명백히 길리기아 수도 다소3) 출신인 것으로 3차례나 나타난다(행 9:11; 21:39; 22:3).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가 당시의 희랍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바울이 가졌던 희랍 문화의 배후를 명백히 입증하고 있는 것은 그가 헬라어로 '말하고,' '글썼다'는 사실이다. 무슨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어느 문명, 어느 문화의 영향을 받았느냐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와 더불어 분명한 또 하나의 사실은 바울이 이중 언어 사용자였다는 점, 곧 희랍어와 아람어를 자유로이 구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바울의 희랍어 구사 능력은 그가 희랍철학과 수사학의 정규 고등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것
으로 볼 수 없다는 일반적 평가를 받는다.4) 바울 당시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의 희랍 문화에 대한 소양과 지식은 무시할 만한 정도의 것은 아니다.
이처럼 히브리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희랍의 고급 정신세계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2중 귀속성이 바울을 1세기 최대의 선교사로 만들었던 기본 배경이었다. 당시의 희랍 로마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 범주와 사유 지평에 융합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사상들을 발전시킬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5) 그러므로 바울이 유대인이면서 다소 출생의 로마시민권 소지자라는 점, 그리고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 당시의 유대와 희랍 쪽의 높은 교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등이 그를 당시 세계 선교의 강력한 추진자가 될 수 있게 한 사항들이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이 가진 다중 문화적 귀속과 그 경험이 '선교자' 바울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2) 바나바
구브로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인 바나바의 소개는 행 4장에 처음 나타난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6-37). 누가는 행 13장 이후에 가서야 이방인 선교 활동을 보고하게 되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인 행 4장에 벌써 이 인물을 소개시킨다. 이때는 이방선교에 관해 생각도 않던 시점이다. 그런데 그 이른 시점, 즉 이방선교 보다는 유대인 선교에 관심이 있던 그 시점에 누가는 바나바의 정체를 미리 말한다. 그러면서 유대인 위주의 선교 시기에 걸맞게, 그가 유대전통을 확고히 유지하는 레위족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누가는 바나바가 레위인, 즉 유대전통에 집착하는 사람이면서도 예루살렘 유대교에는 속하지 않은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가 구브로(Cyprus)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유대교 전통의 본산과도 잘 맞을 수 있고, 이방세계와도 친화를 이룰 수 있는 두 세계, 두 문화권에 동시에 발을 디딘 2중적 문화 귀속자로 행 4장에서 일찌감치 누가에 의해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바나바의 2중 귀속의 특성은 그가 맡는 사도행전에서의 역할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한다. 사도행전에서 바나바의 존재 의미는 바울을 소개하고 이끄는 역할에 모아져 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는(행 11장까지) 전체적으로 보아, 베드로 관련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 후로는 바울이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베드로 중심의 이야기 전개에서 바울 중심으로 이동이 벌어지는 것이 11-13장까지이다. 이 두 주인공 교체의 접점에 바나바가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 안디옥 교회 이야기가 삽입된다. 바울이 나타날 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울을 곧바로 안디옥 교회의 주요 인물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보냄을 받은'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권면활동을 하고, 그 바나바가 당시 다소에 머물고 있던 사울을 '만나 데려오는' 모습이 바울의 본격적 선교활동("온 일 년 동안 교회 사람들과 만나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행 11:26) 개시 이전에 묘사된다.6) 바울에 앞서 바나바가 제시되고, 그 바나바를 통해 바울이 이끌려 나타나는 형국이다. 저자는 바나바를 등장시킨 다음, 바울과 바나바를 동시에 나타나게 하여 함께 활동하도록 하다가, 기근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동행하는 것으로 묘사한다(행 11:30).7) 한편 바나바는 행 4:36절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예루살렘에 잘 알려져 있기도 했고, 또 그곳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8) 이러한 장면들을 종합하면, 결국 바나바가 바울을 '안디옥 교회'에게 소개시키기도 하고, 또 예루살렘까지 동행함으로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명백하게 그가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적 교회의 신앙과 권위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9) 바울은 바로 바나바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의 연대와 계속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바나바는 바울이 이방선교의 최초 기지였던 안디옥 교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펼쳐질 이방세계에서의 선교활동의 '도약대'(spring board)에 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바나바는 기독교 세계의 신인(新人)인 바울을 예루살렘 총사령부와 안디옥 야전군 사령부에 소개시키는 거간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가는 바나바가 구브로라는 섬 출신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구브로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여행이 처음 이루어졌던 곳이다. 행 13장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이 이방종교 세력과의 대결에서 첫 승리를 기록한 곳이다. 즉 마술사 엘루마라는 사람을 완전 제압하고 마침내 총독 서기오 바울이 회심을 일으
키기까지 했다는 곳이다. 따라서 이 첫 선교여행은 매우 상징적인 뜻을 갖는다. 바울이 본격적 선교의 여행을 출발함에 있어 그 첫 지역이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였다는 점, 또 바울이 유대교에서 떠나 이방지역 또는 이방종교로의 전이를 이루는데 바나바라는 인물이 동행하고 바울을 안내하여 이방 선교 지역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10) 요컨대, 바나바는 유대교에서 이방종교에로의 전이를 시사하는 인물, 즉 양자의 가교(架橋)적 존재라는 뜻을 갖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에 등장하게 만드는 도입의 역할, 바울의 위상을 돋보이게 만드는 구실만 수행한다.11) 그리고 일단 바울이 등장한 이후는 온전한 바울의 무대가 펼쳐지게 된다. 이후 누가의 기록은 사도들의 행전이 아니라 거의 바울의 행전이 되는 것이다.
(3) 디모데
디모데는 바나바를 대체한 인물로서 아버지가 유대인이며, 어머니는 희랍인이었던 대표적 문화와 혈통의 혼혈인이었다. 그리고 이 디모데라는 인물이 사도행전에서는 2중 소속 교회를 상징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에 관한 사도행전 묘사(행 16:1c-3)12)에는 몇몇 주목할 부분이 있다. 먼저 누가는 디모데와 관련한 이 짧은 묘사를 통해 그를 '제자'라고 지칭한다. 또 신약 인물 소개에서는 매우 드물게 가족을 통하여, 즉 부모를 언급하며 디모데를 등장시킨다.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혼혈인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바울이 그에게 할례를 준 사실을 알리고 있다.13) 이렇게 등장한 디모데는 바나바 또는 문제의 인물인 '마가 요한'을 대체하거나, 새로 구성된 선교 진용의 멤버로 누가의 서술 가운데 '중간에' 갑자기 충원된다.14) 이런 등장의 '중도성'은 그의 존재가 갖는 사도행전 선교에서의 기능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디모데는 바울의 활동과 선교,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복음의 확대에서 매개적·중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뜻이다. 우선 그의 혈통이 이런 매개를 가능하게 하는 주요 요소다. 그는 유대인과 희랍인 사이에 출생한 '문화와 혈통'의 혼혈인이었다. 혈통으로는 말할 것 없거니와 그가 유대인 디아스포라 어머니의 후예라는 점에서도 다른 디아스포라 유대인처럼 문화적 중간지대에서 매개적 인식과 사유를 내면화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디모데라는 인물은 사도행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거나, 아니면 유대인 따로 이방인 따로의 개별 교회들 사이를 이어주고 통합하는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즉 그는 초기 선교의 2중 소속 교회를 상징할 뿐더러, 나아가 그들 교회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디모데가 선택되고 긍정적으로 제시되고15) 있는 이유 중 중요한 사항 하나는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묶을 수 있는 태생적 조건을 가졌다는 점일 것이다.16) 물론 유대인
들에게 이방인과의 결혼 자체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경원할 것이었다. 또 그 결혼으로 낳은 자식 역시 마찬가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적어도 형식논리나 외견상으로는 유대인 어머니와 이방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디모데의 존재가 유대인과 이방인 관계를 잇고 묶을 수 있는 혈통적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뜻에서 디모데의 할례조차도 양자의 관계를 이어 결속시킬 수 있는 자격에 좀 더 가까이 가게 하려는 의도로 이해될 수 있다.17) 디모데와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후예가 이질 문화의 접점에서 복음의 전달자와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발전은 보다 유연한 탄력을 받아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행 6-7장에 등장하는 스데반 등의 인물이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로서 다중 문화 귀속자로 중요하게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초기 기독교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문화적 경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B. '하나님 경외자'
(1) '하나님 경외자'의 성격
사도행전 선교 보고에는 매우 독특한 정체의 인물군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행 8장의 구스 출신의 내시 개종자, 즉 이교도로서 유대교에 호감을 지녔던 사람이나, 행 10-11장에 길게 등장하는 백부장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들이 대표적 존재다. 이들은 유대교와 이방세계를 잇는 길목에서 다리를 놓는 존재로 매개역을 하다가 기독교에 입문한 후엔, 기독교의 이방세계 접촉 창구로 주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초기 선교 연구를 위해서는 유대교 회당 주변의 이들 경계인들을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범주의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 일컫는데,18) 이들은 행 8장에 처음 나타났다가 행 18장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뒤 사라진다.19) 이 사람들이 사도행전의 가운데 1/3부분, 즉 선교와 관련된 기록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와 사도행전을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관심의 환기는 기독교의 초기 발전에서 이들이 맡았던 역할과 그 위상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해됐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독특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20)
우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사도행전 이외에서는 묘사된 적이 없던 이들에 관해 누가가 사용했던 관련 용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몇 개의 용어들이 거론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fobouvmenoi to;n qeovn, 행 10:1-2, 22; 13:16, 26)이라는 표현이 발견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sebomevnoi to;n qeovn, 13:50; 16:14; 18:6-7), "경건한 개종자들"(sebomevnoi proshluvtoi, 13:43), "경건한 헬라인들"(sebomevnoi JEllhvne", 17:4), "경건한 자들"(sebomevnoi, 17:17)
과 "개종자"(proshluvtoi, 2:11; 6:5; 13:43)21)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저자가 이런 유사한 용어들을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용어의 혼용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여러 각도에서 모색되었다. 누가가 사용한 자료의 상이함, 여러 저자들의 작품이 편집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이 문제를 해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이것들은 사도행전 본문을 자료에 따라 구분하기가 본질적으로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료에 따른 의미 차이와 관련된 토론은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가 구사했던 이러한 다양한 표현들의 원인과 배경에 관해 의문이 일게 된다. 즉 저자가 분명한 개념차를 인지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이 용어들을 구분하여 썼겠는가, 아니면 용어의 내용적 차이를 고려치 않고 무작위적으로 사용하였겠는가를 물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여러 용어들이 과연 전문적·기술적 의미를 담고 사용되던 관례가 있었느냐의 여부인데, '개종자'의 경우엔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외자'와 '공경자'의 경우는 판단이 분명치 않다.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확실한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비교 자료의 부족이라는 결정적 이유로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회당 주변에 존재했던 특정 인물들로서 '경외자'라는 개념은 기술적으로 두드러진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일반적 합의가 형성되는 상황이다.22) 누가가 아무런 구분 없이 이런 용어들을 무작위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대인을 수식하는 '일반적 형용어'로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누가는 1세기 회당 주변에 존재했던 하나님을 경외했던 어떤 특정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룹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점차 적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누가의 경우, 그가 범주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기술적으로 엄밀하게 고착·
정리된 전문술어로 활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개념 정의의 한계를 일단 인정하고 관련 용어들이 갖는 의미를 추측한다면, '개종자'의 경우는 그 추정이 쉬울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대적 관습을 지키는 사람들'(즉 경외자나 공경자)과 '진정한 개종자'를 구분하는 표현을 남긴 에픽테투스(주후 55-135년경)의 경우가 참고가 된다.23) 양자를 별개의 부류로 취급하는 확실한 문헌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개종자'들은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며, 회당 예배와 종교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일컬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경계를 넘어 유대교의 영역 안으로 이미 들어온 사람들로 '거의 유대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경외자와 공경자다. 이 둘의 개념은 모호하다. 우선 경외자는 이방인이면서, 할례 받지 않은 자이고, 유대교 신학과 윤리에 경도된 자,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율법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자이며, 유대사회와 사회적 친밀함을 유지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외자에 관한 세부적 범주 규명도 시도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코헨의 경우는 유대교에 호의를 가졌던 이방인들을 7범주로 나누고 그 범주 중에서 경외자들을 판별한다.24) 이같이 이방인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경외자 이해에 도움이 되고 상당한 시사점도 준다. 그러나 이런 분류 자체가 임의의 설정이고, 그 내용도 개연적 추론에 그칠 뿐이기 때문에 큰 신빙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이런 '경외자'들과 사도행전의 '하나님 공경자'들을 어떤 관계로 놓고 파악하느냐의 문제는 해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 공경자들은 회당 주변에 있던 이방인들, 즉 개종자도 아니고 회당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도 아니지만, 유대교에 동정적이었던 회당 외곽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즉 유대교를 가깝게 추종하는(a
dherents) 그룹과는 달리 다만 유대교에 호기심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심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동정자(sympathizer)들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 문헌에서, 특히 누가에게서 이들 두 용어가 기술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 쓰이고 있다면 그 두 지칭 사이의 의미 규정에 지나치게 매달릴 수는 없다. 경외자가 공경자보다 유대교에 더 가까운 무리라고 상정한다 해도 그 경계를 설정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경외자와 동정자로서의 공경자를 엄밀한 구분 없이 동일 선상에서 고려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누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들 여러 용어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출현하는 장소가 가이사랴, 비시디아의 안디옥,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 등 지중해 연변의 각 도시가 망라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회당에 출입하고 있는 부류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당연스런 일이지만 이들이 기독교 복음을 처음 듣게 되는 이방인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사도행전 기록의 평면적 관찰에서 지적할 수 있는데, 경외자와 공경자에 대한 특이한 차이 없이 이처럼 진술하고 있는 누가 기록으로 보아도 양자를 인위적으로 갈라놓고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2) '하나님 경외자' 발생 배경 및 유대교와 기독교의 각축
경외자로 분류되는 이방인들의 발생 배경에는 1세기 유대교의 이방인 선교와 관련된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의 대(對)이방인 선교의 결과 회당 주변에 유입되었던 이방인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경외자'로 지칭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는 도대체 그러한 유대인의 선교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관한 근본적 문제에서부터 의견이 현격하게 갈라진다. 1세기 정황이나 문헌 증거로 볼 때 당시 유대교가 커다란 규모의 조직적 이방인 선교를 시행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방인들 중에는 유대교에 이끌린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의 다른 이방종교들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유대교의 부분적이고 소극적인 선교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단순히 종교적 이유에 이끌린 것이 아니고, 경제 사회적 이해타산의 어느 접점에서 유대인들과의 유대를 통한 이익을 추구했던 사람들 역시 종교적 허울을 쓰고 유대교와의 호의적 관계를 과시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숫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각 지역 회당 주변에는 상당수의 이방인들이 외곽을 형성하고 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유대교 내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할례를 통한 개종의 길에 들어서야 되는데, 이것은 이방인들로서는 도덕적·관습적으로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할례는 신체적 고통이 따를 뿐 아니라, 고대의 위생상황에 비추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외과적 수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회당 주변에서 유대교에 대한 호의를 축적하던 적잖은 사람들은 유대교로의 마지막 경계를 넘지 못하고 바깥에 위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외곽 사람들에게 신생 기독교의 가르침은 호소력 있게 들릴 수 있었다. 크게 보아 유대교의 범주 속에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공동체로의 유입에는 할례와 같은 장애가 없다는 것을 제시할 때, 또 이방인 출신
인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각별히 우호적인 메시지들을 거듭 접하게 될 때, 그것은 이들 바깥 경외자들에게 솔깃한 초대가 될 수 있었고 유대교 공동체에게는 위협이 될 여지가 있었다. 바로 여기에 이방인 경외자들을 놓고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벌렸을 갈등의 양상과 사회적 다이내믹스의 얼개가 존재한다. 유대인들과 회당 주변에 출몰했던 이방인 '하나님 경외자'들과의 오랜 유대와 연결은 이방 세계와의 관계에서 일종의 완충역할을 했었을 것이다. 즉 외부 세계와의 연결 통로이며 창구로서의 두툼한 외곽세력의 존재는 그 자체가 유대교의 힘이요 안전판 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이해다. 기독교로서도 유대교와 동일한 이유로 경외자 그룹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키울 수 있었다. 신생 기독교의 외부 지원 세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공리적 의도가 작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독교 복음을 가장 쉽게 전파하고 그 결실을 볼 수 있는 선교 대상으로서는 이들 경외자 그룹보다 나은 목표가 있을 수 없었다. 성서에 대한 전이해를 갖추고 있고, 메시아에 관한 가르침이 무리 없이 개진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유대적 가치에 대한 호의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사람들은 복음전파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를 간과할 리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선교 노력은 일차적으로 이들 경외자들에게 집중되었을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일단 선교가 성공했을 경우, 경외자들은 유대교의 외곽세력으로서 완충역과 방패역을 수행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전에 유대교에 참여했던 열심 정도만 가져도 신생 기독교에서는 공동체의 외곽인이 아닌 내부자로서의 참여로 전환될 수 있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는 회당 내부에 가담하는 개종자 일부와 다수의 외부 경외인으로 구분되었지만,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내부인이 될 수 있었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집단의 힘은 유대교 안에서의 그것과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을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의 본질 변화를 가속시킨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유대교의 경우는 회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내부인과 외부인으로 나뉘고 그들이 이교적 외부세계와 만나게 될 때, 외부인인 경외자들이 완충세력·외곽세력으로서 가교적 매개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외부세계는 언제나 유대교 바깥에 남을 수밖에 없는 복수 경계선과 배제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은 언제나 수세적 현존의 양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룹의 힘이 외부와 만나는 데는 항상 몇 개의 경계를 넘어야 되는데, 그 경계가 보호의 기능을 할 때는 일정한 효과를 보지만 외부 확산을 할 때는 장애와 차단의 거침돌이 된다는 뜻에서 수세적이라는 말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 공동체의 경우,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두가 내부인이 되었다면 완충·외곽의 매개존재 등의 중간세력을 내부로 곧바로 끌어들임으로서 외부와의 직접적 만남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내부인이 되는데 따르는 집단적 힘의 창출이라는 효과와, 완충 없이 외부세계와 직접 만나게 되는데 따르는 긴장의 항존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보게 된다. 물론 이 힘이 내부에 머무르게 되면 공동체 내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최악의 경우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경계선과 배제의 구조가 아닌 상황에선 당연한 일이다.25) 그러므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세적 현존, 즉 선교적 원심운동으로 변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내부에 장착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유대교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던 경외자들에 대한 기독교의 선교가 시작되어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면, 그때 유대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질투 이상의 긴장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6) 누가가 행 8-18장의 기독교 선교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경외자 관련 묘사를 꾸준히 삽입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문학적 기능 이상의 역사적 실체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행 19장 이후는 에베소 장면(19장)을 제외하고는 주로 바울의 로마 압송에 관련된 바울 재판 기록이 주를 이루
고 있기 때문에 선교 관련 사실을 기록할 여지가 적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이방지역 선교와 관련된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외자는 항상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의 주변에 경외자가 언제나 있었던 것을 의미하고, 그 말을 거꾸로 하면 기독교는 경외자에게 예외적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왜 사도행전 저자가 초기 기독교 선교의 주요 대상이 회당 주변의 경외자였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마련될 수 있다. 주후 50-60년대의 선교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주후 80년대의 누가 저술의 시점에서 이 경외자 문제가 유대교와의 갈등의 한 이유로 현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가 경외자에게만 집중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초기 기독교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방선교에 일익을 담당했다면, 이들을 사이에 둔 기독교 지도자들의 애착과 관심은 유대교의 그것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양자 사이의 긴장은 첨예화될 수 있으며, 그 갈등은 누가의 기록 당시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가 경외자와 관련된 내용을 명백히 기록하지 않는 것도 그런 갈등이 잔존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바로 이들 경외자들이야말로 기독교를 이방세계와 이어주는 '가교적' 존재들로 초기 기독교의 확산과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다중 문화인으로서 이방인이면서 유대교, 그리고 마침내는 기독교의 언어와 문화, 사유양식과 신념체계를 공유할 수 있었던 문화적 매개인들이었던 것이다.
III. 결어
초기 기독교의 선교 발전에는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 세계 상황에서 기독교와 이방세계 사이의 한 가운데에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이방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무리가 있어서, 이들 두 무리들이 때로는 유대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과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루살렘과 대척적인 위치에서 희랍철학과 이교의 표상으로 있던 아테네와의 교량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행했던 두 상징적 도시 사이에서의 다리 구실을 통해 기독교는 존립조차 부정될 수밖에 없었던 초기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기독교 발전과 확산의 계기마저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유효 적절히 활용되었던 다리 같은 존재로서의 다중 문화귀속자의 천재적 감각과 노력을 통한 기독교의 세계내 활착 전략이었음이 판명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요 경륜이라 부르는 것이다.
주제어
이중 문화적 정체성, 디아스포라, '하나님 경외자,' 문화적 매개자,
기독교 선교,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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