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치유사역
Ⅰ. 서 론
A . 문 제 제 기
인류는 창세이래로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과 고독 그리고 죽음의 위협과 아픔을 겪으며 살아온다. 현대 문명과 과학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생활은 여러모로 편리하게 되었고 육체적 건강과 수명은 향상 되었지만 정신적 혼란과 난치의 질환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여년간의 경제발전과 공업화 과정으로 우리의 사회구조와 의식구조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핵가족 구조로 변모 되었다. 이에 따라 의식구조 또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
다. 전통적 가치관 붕괴로 각종 범죄율, 이혼율이 늘고있으며 도시인과 근로자들의 질병이 늘고있다. 또한 교회안에도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성도들이 늘고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양육하는데 있어 성서적 치유를 믿고 인정하는 사역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들은 치유는 의학자들에게 해당하는 영역이기에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목회에 있어서 치유사역은 비과학적이며 신비적인 것이라 하여 부정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치유사역은 목회자가 관심 가져야 할 중요한 목회영역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목회 활동에 있어서 치유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과 교회는 주님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복음 전도와 교육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으나, 질병을 치유하는 면에서는 그 활동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부흥회, 총동원주일 등을 통한 복음 전도활동이 왕성하고, 벧엘, 크로스웨이 등의 성경공부는 강조되고 있으나 치유 사역에는 이러한 관심이 약한 형편에 있다. 원인이야 어떠하든지 고통스러운 질병의 현장에서 인간으로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군중속의 고독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그들의 필요를 목회자는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목회에 있어서 치유사역에 대해 성서적 이론의 근거를 제시하므로 치유사역에 대한 주요 관심을 회복하고자 한다.
부언하여 치유사역은 이론적 지식을 습득하였다고 성공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꾸준하고도 성실한 치유사역을 위한 전문적 훈련을 계속할 때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B . 연구의 범위와 방법
목회에 있어서 치유사역은 전인과 환경 전체에 대한 치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본 논문의 연구는 육체적 질병에 대한 치유만을 다루기로 한다. 본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그 방법은 기독교 치유에 관한 저술과 연구 자료를 토대로 한 문헌 연구를 원칙으로 한다.
제 I 장에서는 본 논문의 문제제기와 연구의 범위와 방법을 제시하겠다.
제 II 장에서는 질병에 관한 이해로서 질병의 개념과 그 원인 그리고 질병의 원인별 유형을 영적,심리적,육체적인 요인들로 나누어 규명하겠다.
제 III 장에서는 치유에 관한 이해로서 치유의 어원을 고찰해 보고 그리고 치유의 의미와 치유의 능력을 살펴 보겠다.
제 IV 장에서는 치유의 성서적 배경과 신학적 배경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조명해 보겠다.
제 V 장에서는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목회의 정의와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사역의 유익 그리고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 방법들로 살펴보겠다.
제 VI 장에서는 결론 부분으로 교회는 오늘날 이 치유사역을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과 오늘의 목회자는 성서적인 치유 방법을 연구하여 목회 현장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규명 하려한다.
Ⅱ. 질병에 관한 이해
A . 질병의 개념
질병의 개념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첫째로, 신체적 측면에서는일반적으로 건강상태로 부터의 이탈이고 구체적으로는 특수한 증후, 증상을 수반하는 비정상적인 생의 과정 으로 정의 하고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생리적 상태에서 병리적 상태로 타락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즉 타락되어서 몸의 정상 기능을 감당할 수 없어서 비생동적이고 비활동적으로 되어진 상태를 뜻한다.
둘째로,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 즉 평온이 깨어진 상태로 본다. 웹스터 사전에는질병이란 평안함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 또는 몸의 건강이 장애를 받고 있는 상태 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평안함이 결여되었다고 함은 다분히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써 불안,근심,공포,분개,분노,증오,시기,적개심,죄책감,질투,절망,불행감,억압감 등에 휘말리어 적절한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지도 못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 잡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째로, 영적인 측면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악령의 지배하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탈,분리된 상태로 본다. 이는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악령의 지배로 인해 정욕대로 살아가는 상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질병의 개념을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무질서와 불의,불신이 싹트는 사회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회의 병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결핍으로 오며 심하면 사회의 와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질병은 육체, 정신, 영과 같은 인간의 구성요소 사이의 불균형의 상태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의 무질서도 포함하는 것이다.
B . 질병의 원인
폴 투니어(Paul Tournier)는 사람의 질병에 대하여 질병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인격과 인격 그리고 삶과 연관시켜 보았다. 그래서 의학적인 치료만으로 완쾌될 수 없으며 그 원인에서부터 치료를 해야 근본적인 치료가 될수 있다고 보았다. 설사 의학적인 치료를 해서 병이 고쳐졌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며 다시 질병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 가장 중대한 요소는 생의 양태라고 보았으며, 자신의 단점과 그를 지배하는 열정과 고충, 반항과 의혹, 그 저변에 깔린 불안으로 인하여 저항력이 약화되고 삶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아울러 이 때 질병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또 하나의 질병관은 전인적 인간 이해에서 보고있다. 즉 몸, 마음, 영혼의 연관 관계에서 그 관계가 파괴될 때 질병이 발생된다고 보았다. 빌리 그래함은 질병의 원인을 우리 삶의 모든 병, 모든 잘못 또한 질환의 원인이 되는 원죄로 보았다. 멕너트는 질병 그 자체가 악이며 저주라고 하여 질병을 구속되지 못한 인간 상황에 내려진 저주의 일부분이라고 하였다.
질병에 있어서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존재이므로 과학적인 객관성에 입각하여 물리적, 정신적, 영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보아야 하는데 각 요소중 한 요소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요소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평형이 파괴될 때 질병이 발생된다고 볼 수 있다면 치유의 범위도 마땅히 신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 환경적 치료까지 포함하는 전인격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치유의 범위는 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도덕적 결함을 고치며, 본성적 또는 후천적 모든 결함과 와해를 회복시키며, 완전하게 유지하고 인도하는 것은 물론 영적인 결함까지도 치유하는 모든 것이 됨을 의미한다.
C . 질병의 원인별 유형
질병의 치유를 위하여서는 그 질병의 원인과 그 질병의 경로를 발견케 될 때에 올바른 치유가 가능하다. 콜린스는질병은 여러 원인들로 부터 오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병을 전염시키는 식물이나 동물과의 접촉, 영양이 적은 식물, 운동이나 체력 부족, 상처, 해로운 물질 섭취, 유전적 결함, 노쇠와 약화, 아주 뜨겁거나 차가운 것의 접촉 등으로 부터 온다고 하였다.이를 정리해 보면 질병이 몸 속에 들어와 고통을 주는데 세 가지 유형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죄는 영적인 요인이고, 나쁜 감정은 심리적 요인이며,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것은 물리적인 요인이다.) 권택조,당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1. 영적 요인들(범죄)에 의한 질병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 아울러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 위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그로 인하여 인간의 영혼과 심령은 약하게 되고 점점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며 결국은 그 틈을 타 평형상태를 깨뜨림으로 질병을 얻게 된다.
신명기 28장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를 범함으로 오는 질병이 열세가지가 열거 되어 있다(15-22).) 염병, 폐병, 열병, 상한, 학질, 썩는 재앙, 종기, 치질, 괴혈병, 개창, 미침, 눈멈, 경심증.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손길이 멀어진 틈을 타서 온갖 질병이 들어오게 된다. 힐(Stephen Hill)은 강조하기를 불순종은 질병을 가져오고, 순종은 치유를 발생시킨다고 하였다.
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한 결과로 정죄속에 살고 있다. 이들이 치유의 혜택을 입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하고 자기들의 죄에서 등을 돌려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죄란 사탄의 종으로 지배받는 것이다. 인간이 사탄에 복종한 죄의 보상은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다. 그래서 인간은 에덴 동산을 잃어버렸고 동생을 살인하기에 이르렀으며, 일하는 수고와 해산하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타락과 죄는 질병의 통로가 된다.
2. 심리적 요인에 의한 질병
나쁜 감정들 즉 질투, 공포, 염려, 분노, 좌절, 후회, 용서 못한 마음, 쓴 감정, 자기중심의 감정 등은 질병이 들어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 17:22) 염려하는 마음이 들어오게 되면 질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쁜 감정들이 질병을 유발하는 이유는 정신이 신체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정신(Psyche)와 육체(Soma)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하여정신 신체적 반응 (Psychosomatic reac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앓고 있는 요소중 하나가 나쁜 감정을 마음속에 고정시키고 있는 것으로 신경병 계통은 다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마음속에 나쁜 감정을 가질 때 스트레스가 증가되는데 이런 스트레스가 신경계통에 악영향을 주어 신경세포와 연결된 조직세포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다. 이때에 병균이 틈타서 조직세포에 침투한다고 본다.
3. 육체적인 요인들에 의한 질병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 인체는 매우 과학적이고 조직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몸속에 작용하는 자연법칙을 깨뜨려 버리면 몸을 지으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결과가 되어 그 결과 아픔과 질병을 통한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들면 사람은 자야 할 때가 있고 일어나야 할 때가 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며 육체적으로 무리하면 누구든지 건강에 무리가 생기는 법이다. 무리에 대해서는 항상 값을 치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체내에 주어진 자연법칙을 깨뜨려 버리면 병균이 몸속에 침투하고 병을 유발하게 된다.
Ⅲ. 치유에 관한 이해
A . 치유의 어원적 고찰
구약 성서에서 명사로 치유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아룩하와 말페이다. 전자는 의사가 상처를 고치기 위하여 사용하는긴붕대 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데, 예레미야 8장 22절, 30장 17절, 33장 6절에 사용되고 있다. 후자는 예레미야 14장 19절,역대하 21장 18절에서 이렇게치유 고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외에원기회복 이란 뜻도 있다. 또한 잠언 4장22절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와 12장 18절의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가 바로 이런 예이다.
구약성서에서 동사로 치유라는 의미의 단어는 할람: 회복케 하다. 이사야 38:16, 라파이며, 명사 아룩하와 함께 삼마하 :치료하다,이사야 58:8가 사용되고 있다. 이것 중에서 가장 사용의 빈도수가 많은 것은 라파인데, 이것을 자세히 세분시켜 볼 수 있다. 즉상처를고친다 ,치료하다 (창 22: 17,
욥 5:18),(하나님이)치료하다 ,본래의상태로 회복시키다 (대하 7:15, 시 30:3),수선되다 (렘 19:1),위로하다 (렘 8:11, 겔 34:4),치료받다 (레 13:37, 사 53:5),자신이 고침 받게하다 (왕하 8:29)등이다.
신약 성서에서는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과 이아스타이(ιασθαι)가 치유하다 라는 의미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은 헬라 세계 속에서 비종교적인 의미로 섬기다 ,기꺼이 돕다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것은 두이코네인( δυικονειν : 시중들다 ), 둘레우에인(δουλευειν : 노예가 되어 섬기다 ), 라트레이에인(λατρειειν : 섬기다 ) 레이튤게인(λειτευλγειν : 자기 돈으로 공적인 봉사를 하다 )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인 역에서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은 섬기다라는 의미로 쓰여진다. 비종교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로,하나님을 섬기다 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치료하다라는 의미도 가지는데 이때의 치료는 의학적인 육체의 치료만이 아니라 영혼의 치료에도 해당된다. 마태복음 에서는 이아스타이(ιασθαι)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치료하다 라고 하는 의학적인 의미는 가지고 있으나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과 같이섬기다나 봉사하다라는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 마태복음 저자는 15장28절과 13장15절에서 이사야6장10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아스타이(ιασθαι)를 사용하고 있다. 마가복음 에서는 이아트루(ιατρου : 의원 )란 말로 이아스타이(ιασθαι)가 사용되고 있다(막 2:17) 누가복음에서는 4장 23절에서 이아트레(ιατρε : 의원아 )란 말로 격언 인용으로 한번 나오고 있으나 이아스타이(ιασθαι : 눅 5:17), 이아토(ιατο : 눅 6:19), 이아스에이스(ιασειS : 눅 13:32)등 격언이나 예언서 인용이 아닌 예수의 치유 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용어로써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요한복음 에서는 예수의 치유 활동에 대한 묘사로서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보다는 이아스타이를 사용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행 17:25)라고 하는 바울의 설교에서 쎄라퓨에타이(θεραπευεται : 그가 섬김을 받는다 )로 사용되고 있고, 히브리서3장 5절에 쎄라폰(θεραπων : 사환 )으로 둘로스(δουλοS : 종 )의 강요된 억지, 섬김이 아닌 사랑으로 말미암은 섬김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의 특징은 봉사하고자 하는 자발적 의지를 표현 하는데 있으며, 봉사하는 사람과 봉사를 받는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를 표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봉사는 의사들도 제공하기 때문에 쎄라퓨에인(θεραπευειν)은 병든 자들을 염려하여 돌보는 의학적 치료를 묘사하는데도 쓰여진다. 그러나 신약성서 안에서의 쎄라퓨에인(θεραπουειν)은 실패할 수도 있는 의학적 치료로서가 아닌 참된 치료를 묘사하고 있다.
B .치유의 의미
성서에서의 치유는 구속적인 은혜와 그 은혜의 표현이다. 엘률교수는 [치유란 언제나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이다]라고 말했다.
투니어(Tournier)는 진정한 치유란 단지 질병의 회복 단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회복 이후 계속적인 삶의 자세까지 연관시켜서 하나님 앞에서 헌신자의 삶을 사는 것을 완전한 치유로 보고 있다. 그는 회복된 건강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건강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힐트너(Hiltner)는 치유란 단지 육체적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치유라고 할 수 없다. 치유란 온전하게 만드는 일, 다시 회복하는 일을 말한다. 방향이나 스케줄에서손상(병) 입었던 기능적 불완전성을 다시 회복하여 회복 이전 단계보다 한단계 더 발전한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다.(창1:26) 이 말은 곧 치유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치유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 혹은 사회적인 질환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는 온전히 만드는 일, 다시 회복하는 일을 말한다. 즉 치유는 생의 위기나, 전기 또는 시험을 이기게 하고, 도덕적 결함을 고치며, 본성적, 후천적 모든 결함이나 와해 등을 회복 시키며, 완전케 하고, 유지하며 인도하는 총체라고 하겠다.
C . 치유의 능력
치유의 근본 능력은 하나님이다. 그 이유는 생명은 위에서부터 오는 것으로 신과의 사귐으로 풍성해지며,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될 때 인간의 생명은 확실하고 안정되고 평화롭고 불안에서 해방 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자가 치유받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이 자신의 자존심, 독립심을 버리고 의사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병에 대하여 수긍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인 영적체험을 통하여야 행동이 변화되고 성격의 오류가 교정되며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이 영적체험은 아무리 심오한 영적체험이라도 단번에 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며 전진과 퇴보를 거듭한다고 한다.
인간치유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이론들을 더 살펴보면, 폰라드는 구약의 하나님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 즉 하나님만이 치료할 수 있고(왕하5:2) 그 만이 꿰맬 수 있으며(욥5:18) 그가 고치시며(시6:3, 렘17:4, 시30:3, 103:3), 그를 신뢰하면 모든 처방들이 효력을 발생한다고(왕하20:1-7) 보았다. 본훼퍼는 인간을 신과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참다운 인간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키엘케골은 삶의 단계를 심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로 구분하고, 인간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아름다운 인간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하였다. 바르트는 절대자에 의해서 상대자의 문제가 해결되고 영원자에 의해서 유한자의 문제가 소멸되고, 하나님의 빛 아래서 인간의 모든 문제가 분명해 짐에 따라 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폴 틸릭은 모든 제한되고 예비적인, 부분적인 인간의 치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간들은 인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생각과 방법대로 치료할지 모르나, 근본문제가 존재 자체의 문제이므로 이 존재 자체의 문제는 존재의 근원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며, 존재의 근원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인간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의존 되어야만 한다. 투니어는 인간의 근본적인 치유방법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며 하나님이 인간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맡김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관하시도록 할 때, 인간은 삶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자존심이나 독립심은 포기되며 영적체험을 통해 놀라운 평화속에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고 있다.
Ⅳ. 치유의 배경
본장에서는 바울이 말한 새로운 피조물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전인적인 치유를 위하여 성서적인 근거와 문헌적인 고찰로서 신학적 근거와 교회사적 근거를 찾아보고목회의 치유 기능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찾고자 한다.
A . 치유의 성서적 배경
목회의 치유기능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이다. 성서를 통하여 신구약에 나타난 치유의 예와 목적을 찾아볼 수 있다.
1 . 구약 성서
구약에는 선지자나 제사장들을 통하여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는데 그 예가 신약의 경우보다는 많지 않다. 그들의 사역은 예방의 가르침과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예방적 측면에서 모세에게 그의 백성들을 가르치라고 한 내용을 보면 신명기 23장을 통하여 장티푸스,이질,콜레라 등의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배설물 처리를 그의 백성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다(12-13). 또한 제사장들을 통하여는 문둥병, 매독, 흑사병 등을 살피고 그러한 환자를 격리 수용하여 개인적인 접촉을 금지하게 하는 일을 종사하게 하였다(레 13:4).이것을 가리켜 카스트 글리온은 최초의 위생법의 전형이라고 하였다. 지혜의 왕 솔로몬을 통하여는 술에 관하여 경고하며 술취함이 많은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잠23:19-21), 오늘날에 있어서도 술이라고하는 것은 정신질환은 물론 내장의 손상뿐만 아니라 많은 사고의원인이 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치유적인 측면은 창세기 20장 17-18에서 그 최초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구약의 치유는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들이나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을 통하여 진행되어졌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의 불임을 치유 하셨으며 생산케한 사실이다(창20:17-18). 민수기 12장에는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가 죽은 후 구스(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는데 이때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걸렸고 7일간 격리된 후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를 받았다(1-15). 그외에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치유(8-14), 민수기 14장의 회중의 원망함으로 백성중에 염병이 시작될 때 아론의 기도로 염병이 그친 사건(41-50), 민수기 21장의 놋뱀 사건(4-9), 열왕기상 17장의 자신에게 공궤한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일(17-24), 열왕기하 4장의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꿇어 기도함으로 아들을 살린 일(32-37) 등등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치유하시고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여호와 라파 (출15:26) 이시며 반드시 그의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과 같은 특별한 사람등을 통하여 기적과 치유의 사역이 진행되었다. 여기에서 기적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고 그의 선지자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적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과 제사장이 백성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인도하면서 아울러 치유 목회에도 깊이 관여를 하였음을 본다. 목회자들도 문제를 가진 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주신 권위와 능력으로 그들을 돌보며 위로하는 일에 있어서 그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2 . 신약 성서
신약성서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와 사도들에 의하여 많은 치유의 이적이 나타났으며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구원의 역사도 아울러 일어났다.
1) 예수님의 치유 사역
그리스도의 치유의 특성은 자신을 구세주, 메시야라는 자기 인식에 근거한 복음 선포의 한 부분을 보여 주며, 그의 치유 사역은 악의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눅 11:20-23). 반면 병자들을 볼 때 민망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바로 그의 치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심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다(마9:36, 요9:35-36).
그는 치유를 통하여 대속의 은총을 허락 하신다. 그는 전인 치유의 대의사(Total Healer)로서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완전한 개인으로서의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의 치유는 풍성한 삶을 주실 뿐 아니라(요10:10)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잃어버린 인간을 회복시키는 선교였다. 즉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유하시면서 어느 한 면도 간과하지 않으시고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전인성을 치유하여 주셨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치유와 죄사함의 선포를 하시거나 다시는 범죄하지 말것을 경고하심으로(눅5:20, 요8:11) 육체 및 그 육체에 속한 악한 세력까지 소급하여 승리를 선포하심으로 전인 치유를 이루셨다. 예수의 치유사역의 또 하나의 특성은 제자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계속 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그의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들린 자를 바로잡고 앉은뱅이와 반신불수를 일으켜 세우라고 명령하시고 실제적인 권능도 주심으로 그의 치유 사역이 계속 되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마10:7-8 ; 막3:14-15) 이런 놀라운 능력이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실제로 나타났으며 지속되어온 것이 사실이다(행2:33, 4:30). 예수의 치유 방법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요구하시거나 혹은 그들에게 손을 대시고 아니면 다양한 물질적인 매개물을 사용하였다. 가장 일반적인 치유방법은 병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과 그들의 몸에 손을 대시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열거해 보면 침을 사용하신 경우(3번), 예수의 몸에 손을 대거나 옷을 만졌을 때 일어난 경우(막5:25-34),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드린 예수의 감사의 기도(요11:41-44),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치유된 딸(마15:25-28) 등등 예수의 치유에 있어서 당사자의 믿음이 유력한 요소로 작용하였던 예(막 5:34 ; 마 9:29 ; 막 9:23-24)들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몇몇 치유 기사들에는 제3자의 믿음이 치유의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었다.(요 4:47,53 ; 막 2:3-11)
2) 사도들의 치유
사도행전 3장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기사가 나오고(6-7), 사도행전 5장에는 허다한 무리들이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성령의 치유 능력에 의하여 고침 받는 것을 목격하였다(14-16). 바울은 아나니아의 기도로 병 낫는 체험을 하였던 사람이다(행9:15-19). 그는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고 앉은뱅이 된 자를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행14:10)고 하여 고쳐 주었다. 사도들의 치유 능력은 오직 주님이 주신 것으로, 이 능력으로 예수가 메시야 되심과 복음 전파에 놀라운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들은 치유 사역을 감당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였으며 자신들은 주님의 능력을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약성서에서의 주님의 치유사역과 사도들의 사역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특별한 치료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병자들을 볼 때 예수는 전형적인 위로자가 되시면서 근본적인 치료자가 되셨고, 이것이 사도들에게 계승 발전하여 내려오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의 목회자의 치유적 사역을 재조명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B . 치유의 신학적 배경
1 . 기독론(christology)
치유사역의 신학적 배경을 찾기 위하여 기독론을 다섯가지 범주로 나누어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예수의 치유의 목회는 이미 예언되었던 사실이라는 것이며 둘째, 예수께서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것을 실천하셨다는 것 세째, 예수께서 우리의 질병을 십자가에서 짊어지셨다는 것 네째, 치유는 예수의 구원의 사역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다섯째, 예수의 부활 속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메시야에 의한 치유 사역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것이다. 이사야 53장은 장차 올 메시야가 자신을 내어줌으로 죄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치유하여 살리심을 예언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4장에서는 그가 구약의 이사야를 읽으시며 또한 자신을 구약에 예언된 치유자 즉 메시야와 동일시 하였다. 둘째, 예수는 구약의 예언된 대로 치유자의 사명을 친히 감당하셨다. 누가는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며 저가 두루 다니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고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치유자의 사명을 행함으로 잘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치유는 메시야 임재의 특징이었다. 세례요한이 예수의 사역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제자들을 시켜 예수에게 그가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라고 시켰을 때 예수를 찾아간 요한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4,5) 예수는 자신의 치유사역을 통하여 메시야 임을 확인시켜 주셨다. 세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다는 사실이다. 마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8:16-17). 예수께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심으로 마지막 십자가의 순간까지 치유목회를 수행하셨다. 네째, 육체의 치유는 예수님의 구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예수의 십자가는 과거에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고, 예수의 부활은 우리가 휴거될 때에 온전한 몸을 입는다는 것을 확신을 준다. 예수의 구속해 주심은 죄를 속하여 주시는 은혜만이 아니라 질병까지 치유해 주시는 은혜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영적 능력을 통한 육체의 치유는 전인적인 구원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치유는 예수님의 부활속에 포함되어 있다.
부활은 기독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는 이런 부활의 기록이 없다. 부활하신 예수를 마음 속에 영접한 사람은 부활의 씨를 가지게 되어 그 부활의 씨가 치유의 근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부활은 완전한 건강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이 우리의 육체속에 파동칠 때 온전한 치유가 나타난다.
2 . 성령론 (pneumatology)
성령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어원학적으로 헬라어에서는 영 ,바람 혹은 숨이라는 뜻을 가진프뉴마 (πνευμα)라고 하였고 히브리어로는 루아흐이다. 이 두 어휘는 모두 생명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창세기 1장 1-2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흑암이 가득차고 천지가 혼돈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 이 루아흐로 되어있다. 루아흐즉 성령이 사람을 창조할 때 흙을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질병은 육신 속에서 생명력을 빼앗아 죽게 하지만, 성령은 육체에 생명을 주고 치유의 능력을 나타내 준다. 성령은 죽어가는 환경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바람처럼 역사하신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보면 120명의 제자들이 모인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성령이 임하심으로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아울러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는 능력을 받았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초조와 긴장 그리고 두려움과 절망의 분위기였던 곳이 성령이 임하심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장으로 바꿔 놓으셨다. 성령은 보혜사 라는 이름을 가지며 그 뜻은 돕는자 혹은 위로자 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여기에서 보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 곁으로 부름을 받고 오신 영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육신의 병으로 고생할 때 성령께서는 가까이 와 계셔서 치유의 능력을 통해서 가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기억하라고 권면 한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육신이 병들었을때 성령께서는 대리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셔서 치유하여 주신다. 따라서 치유는 성령의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신앙적 치유는 성령의 사역중 중요한 것으로 악령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오는 것이다. 치유목회는 영적으로 사탄과 마귀등 악령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주셨는데 그 중에 치유의 은사에 포함되어 있다(고전12:4-11). 이런 의미에서 치유목회는 성령론적 입장에서도 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3 . 교회론 ( ecclesiology )
교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골1:18상). 몸의 특징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치유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는 몸의 지체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2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크리스챤은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크리스챤이 곧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치유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치유가 필요하다. 물론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으로는 병이 없는 완전 건강의 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되는 이상,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이 병 많은 세상에 살면서 병이 걸릴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 치유는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과 마음과 육체를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교회가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가 몸의 지체인 이상 치유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며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론의 시야로 볼 때에도 치유가 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 구원론 ( soteriology )
구원론은 전통적인기독교 신학의 하나로, 구원의 교리인 그리스도 사역인 속죄론, 의인과 성화의 교리와 죄의 교리, 은혜의 방편 그리고 인간의 최후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이는 파괴된 인격적 관계의 회복에 기본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이 때에 회개가 요구되며, 죄의 용서가 약속되고, 인간을 해방하여 책임있는 피조물이 되어 이웃사랑으로 봉사하게 된다. 이러한 광범위한 구원론에서 치유의 구원론적 배경을 찾기 위해서 성결교회의사중 복음(The Four Fold Gospel) 에 나타난 구원론적인 면을 살펴보려 한다.이명직 목사는 그의 책기독교의 4대 복음 에서 중생, 성결, 재림, 신유를 말하고 있는데 특히 신유는 하나님이 고치는 역사로 보고 있다.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은 심프슨과는 달리 구원론적인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전도와 구령에 대한 열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은 구원의 첫 단계요 출발이다. 중생에서 하나님의 영에 의한 새 생명을 얻는다. 중생은 신학적으로 의인(칭의, Justification)과 양자됨과 동시적인 사건이다. 다만 논리적인 순서로 구분할 따름이다. 구원의 순서에 따르면 죄를 용서받고(의인), 거듭나고(중생), 하나님의 자녀된다. 거듭난 자녀는 성장 하다가(점진적 성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두번째 축복을 경험한다. 이것이 성결이다. 중생에서 시작한 구원이 현세에서는 성화에서 그 절정에 이르며 가장 확실한 구원의 보장을 얻게 된다. 신유는 구원론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기독교의 복음은 단지 영혼의 구원만을 위한것이 아니다. 복음은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은 영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영혼과 육의 구원을 포함한다. 즉 전인을 위한 전인구원의 복음이다. 구원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면, 질병은 죄의 결과로 이땅에 오게 되었기에 구원의 범위에는 질병의 해결도 포함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질병이 다 낫지 않음도 사실이다. 이것은 새하늘 새땅에서 완전히 해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재림은 우리 구원의 완성이다.현재의 구원은 재림시에 얻게 될 궁극적인 구원의 보증이요 약속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이들은 예수께 신유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 예수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 고쳐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을 때에, 신유의 은사를 통한 치유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C . 치유의 역사적 배경
목회의 치유적 사역의 배경을 찾기 위하여 앞에서는 성서적인 측면과 신학적인 측면을 조명하여 보았으며 여기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찾고자 한다. 역사적인 배경을 찾으려고 하면 자연히 성서의 역사는 물론 교회사적인 내용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대 교부시대부터 오늘까지의 내려온 치유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보기로 한다.
1 . 고대 교부 시대
저스틴 마터(Justine Marter, 100-165 A.D.)는 강조하기를 기독교인들 중 성령의 역사가 다방면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분별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상담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능력의 은사를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치유를 영적인 은사로 받아들였다. 사도시대 뿐만이 아니고 고대 교부시대에도 주어진 영적인 은사로 생각했었다.
터툴리안(Tertulian,155-230 A.D.)은 당대의 놀라운 저술가인데 그의 저서 To Scapla"에서 귀신을 추방하고 치유하는 일들이 평민들에게는 물론 수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증언한다. 그는 그의 저서중육신의 부활에 관하여서에서 주장하기를 육체는 영속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로 부터 하나의 부활한 형태가 생겨나는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의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식물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기독교적 치유를 위한 어떠한 사고방식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터툴리안은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서 나오는 치유의 힘을 믿었던 것이다. 오리겐(Origen,185-254 A.D.)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경건한 기독교 가정에서 양육을 받았다. 그는 평생을 기독교 서적을 집필하는데 온 정력을 쏟아 바친 사람이다. 그의 저서원리 란 책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혼란을 제거하고 귀신을 추방하며 질병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대 교부시대에도 치유목회가 행하여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히포(Hippo)의 감독인 어거스틴은 라틴교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성 어거스틴의 고백이라는 책을 썼는데 제9권 7장 16절에 치유의 기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에는 한 소경
이 눈을 뜬 기적이 나오고(P.433) 칼타고의 감독인 인노선트가 흉부암에서 나음을 입었다는 기적도 소개하고 있다(pp.437-438).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어거스틴이 저술한 책에서 나고 있으며 그런 기적의 내용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소개한 것은 단지 치유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치유의 사역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육신적으로 이미 그들과 같이 살고 있지 않는 고대 교부시대에도 역시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고대 교부시대에도 역시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이다. 램슬리는 치유목회는 그 당시 교회에도 특별 은사로 주어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인치유인 치유사역이 역사적으로 확고한 배경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2 . Roman Catholic 교회 시대
많은 사람들은 중세를 가리켜서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그 때에 카톨릭 교회가 서구 시대를 지배하였고 중세에서 교회는 모든 삶의 중심지였다. 암흑기라고 하나 이 때에도 하나님은 교회에 대한 그의 사역을 계속하였고 그 중에 치유사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드 (Bede)는 영국의 교회사라는 책에서 기적에 대한 사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는 기록하기를 어떤 성직자가 기도하다가 10세의 소녀가 치유 받은 사실과 제2권 2장에서 소경이 눈을 뜬 사실을 언급했고 또 요한이라는 감독이 벙어리를 고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으며 (pp.237-238), 제3장에서는 병든 여종이 치유받은 이야기가 실려 있고 (pp.238-240), 제4장에는 요한이 한 백작 부인의 병을 고치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으며, 제5장에는 그 백작의 종이 죽었다가 살아난 기사가 소개되고 있다.
앗시스의 성자 프란시스는 믿기 어려운 정도의 치유목회를 행한 사람이다. 그는 토스키넬라에서 절름발이를 고쳤고 Narni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쳤었다. 그는 악령에 시달리어 죽어가는 형제를 자유케 하였고 그가 안코나로 가던 도중 아에토라고 하는 어떤 젊은이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으며, 귀머거리요 벙어리인 거지를 고쳐주었다고 헤르만은 성 프란시스에 의한 여러가지 치유를 소개하고 있다. 치유적 사역은 암흑기라고 하는 중세에서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통하여서 계속적으로 이어져 나왔고 교회역사 밖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바로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되어 온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이것이 곧 역사를 통하여 도도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기도 한 것이다.
3 . 종교개혁시대 및 그 이후
마틴 루터는 초기에는 치유의 사역을 부인하였다. 자기의 시대에는 치유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의 체험을 함으로써 비로소 치유의 기적을 인정한 것이다. 그의 친구였던 멜랑히톤이 여행중에 병으로 쓰러졌다. 어떤 사람이 이 소식을 루터에게 전하자 루터는 친구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멜랑히톤은 곧 치유의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그때 상황을 설명한다.루터가 나에게 기도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루터도 자기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내가 그에게 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지. 그러나 명백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는 살았어요!
존 칼빈은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였고 카톨릭의 치유기적에 대하여 무엇인가 그릇된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더우기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오는 힘을 믿었었다. 그의 치유의 시대가 지났다고 하면서도 충분한 성경을 지적하여 말하지는 못했다. 그가 이처럼 치유에 대한 반감을 가진 것은 중세 로마 카톨릭의 부패한 여러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시대의 인물로서 진젤돌프는 우리 사람으로서는 치료불능인 난치병, 다시 말하면 암이나 폐병같은 것으로 환자들이 죽음의 고뇌 속에 있을 때에 믿음으로 치유된 확실한 증거를 수없이 가지고 있다. 치유가 되는 증거와 사건을 많이 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요한 웨슬레도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여러곳에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그가 치유목회를 통하여 친히 체험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윔버는 그밖의 여러 단체들에서도 일어난 치유 역사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즉 모라비안 교도들, 퀘이커 교도들, 복음주의적 계약교회 등은 신앙단체들로서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4 . 현대 목회에서의 치유
프란시스 톰슨은 치유와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05년 건강과 성결 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우리는 더 이상 육체와 영혼을 대립적인 관계로 놓아서는 안된다. 육체와 영혼이 서로 굳게 연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육체의 구원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셨고 또한 육신의 병을 치유하시기 위하여 많은 병자에게 접근 하셨다. 임마누엘 운동은 미국의 성공회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치유목회운동이었다. 그 교회의 이름을 따라서 신문이 보도한대로 붙여준 이름이다. 이것의 가장 큰 특색은 기독교의 과학을 솔직하게 모두 인정하고 서로 연합을 통하여 인간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운동이다. 이들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고 상호간에 같이 서로 역사함으로 병을 치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을 위하여 영적인 방법이 필요하고 육체를 위하여 과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반드시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가 또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도움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 모두를 창조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도 육신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성령의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이상 또한 인간의 육신을 위하여 도움을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일인 것이다. 이 운동은 여러 곳으로 확산되어 갔으나 기대 이상으로 널리 보급은 못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래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이 운동은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어떤 교회나 교단은 치유적 사역을 부정하려 하나 그것을 부정할 만한 성서적 근거는 없다. 치유적 사역은 이런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전인 치유를 목표로 하는 목회자의 치유적 사역에 있어서 성서와 신학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Ⅴ.목회에 있어서의 치유사역
A . 목회의 정의
목회란 성경적 근거를 두면서도목회 라는 말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다음부터 쓰여졌다. 목회는 개인 영혼의 성장과 발달, 치유, 구원을 중요시하고 이에 대하여 특별한 배려를 강조하는 어프로치로서 영혼을 돌봄 이라 한다. 특히 이러한 목회는 근대에 이르러 두드러 졌지만 근원은 이미 예수의 목양자로서 목회자의 이미지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목회의 동기여부가 될 수 있는 마9:35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느니라. 고 하신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지상에서 사역을 하실 때 세가지 주요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르치셨고, 설교를 하셨고, 병자를 고치셨다. 그러므로 가르치심과 설교와 치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의 목회는 치유이시며, 관심이시고, 사랑이셨다. 인간(영혼)을 돌보는 일은 각 시대를 통하여 목회의불가결한 요소로 계승되었다. 목회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목사 의 어원을 살펴 보아야 한다. 목사라는 어휘는 헬라어 포이멘(ποιμεν)을 번역한 말인데, 보호하는것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18회나 사용되었는데 8회(마9:36,25:32; 막6:34; 눅2:8,15,18:20; 요10:2)는양의 목자 와 관련된다. 7회는예수를 상징해서 쓰였다.(마26:31; 막14:27; 요10:11-12,14,16) 한번은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히13:20)를 말한다. 또 한번은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리스도(벧전2:25)를 말한다. 포이멘(ποιμεν)과 같은 뜻인 라틴어 Pastores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신약에서 사용된 이 헬라어 어휘의 다른 용법은
엡4:11에 사용한 이 말과 같은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나 동사형인 포이마이노(ποιμαινω)는 신약에서 11회 쓰여졌다. 4회는 다스린다(눅2:6, 계2:27,12:5,19:15)는 뜻으로 표현한다. 한번은 양을 친다(눅17:17-고전9:17 참조)로 번역 되었다. 계7:17에는 자기의 양을 먹이시는 어린 양 을 말한다. 그 외에는, 유1:12을 제외하고,그리스도의 무리를 먹이시는 영적인 목자를 의미한다.
목사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를 보면 류형기씨는 Pastor는 근원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수단이었던 목양술에서 비록되었다고 보았으며, 에드워드 뚜르나이젠(Edward Thurneysen)은 목사란 양을 돌보는(Pastoral Care)사람이며, 목회란 슬픔이나 기쁨을 만나 특별한 격려를 필요로 하거나 기대하는 사람들과의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하며 인간의 영혼을 돌보는 일 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모범인 치유와 사랑에 근거하여, 섬김의 즐거움에 의하여 섬겨야 하고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며(요10:1) 치유하는 것이 목회라고 본다.
B .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사역의 유익
우리는 치유를 통해서 육신의 건강, 정신적 건강, 영적 건강, 물질적 축복,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다른 성도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는일, 불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을 갖도록 전도가 되게하는 것등의 유익을 도모 할 수가 있다. 행3:1-26에서 그 예를 들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가 된 어떤 사람을 성전 미문에서 만났을 때 그 병자가 사도들에게 돈을 좀 달라고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은과 금은 내게 없거나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3:6)고 베드로가 외쳤다. 그 때 그 병자는 즉석에서 일어나 찬송을 하고 기뻐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고, 이것을 본 많은 성도들의 신앙은 더욱 뜨거워졌을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믿게 되었든 것이다. 이 치유의 기적으로 병자는 첫째로, 육신의 건강을 얻었고 둘째로,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즉 정신적 건강을 지닌 사람이 되었고 세째, 그렇게도 성전에는 많이 왔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던 영적 불구자가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함으써 영적 건강을 얻었다는 증거를볼 수 있으며 네째로, 그는 더 이상 거지로 살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다섯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여섯째, 다른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여 큰 영적유익을 끼쳤고 일곱째,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전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가 있다.치유는 이처럼 유익을 주게 되므로 목회에 있어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프랜시스 맥넛(Francis Macnutt)은 말하기를, 치유목회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카톨릭 교회에 쇄신운동이 일어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것이 치유목회가 목회의 질적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보고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치유의 경험은 개인적인 신앙생활 자체에 큰 변화를 주고 있으며, 교회생활에도 좋은 변화가 나타났고, 개인의 성격도 원만하고 긍적적인 성격으로 변화하며, 특히 가정생활을 위한 좋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치유의 경험이 있는 성도들의 삶의 태도가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의심에서 확신으로,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치유는 목회에 있어서 양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치유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치유 경험을 통해 전도의 문이 열릴 뿐 아니라 전도의 효과도 크게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치유목회(Healing Ministry)를 하는 교회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치유목회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고 그들은 병 고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깊어진 경우가 많다. 물론 병 고침을 받고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겠지만 많은 병자들이 병 고침의 체험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던 것이다. 사도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 등 사도들은 유대에서 치유의 능력을 행했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도 돌아왔으며, 바울과 실라 같은 사람들은 이방 땅에서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많은 이방인들을 교회로 오게 했던 것이다. 치유목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삼대 사역의 하나였고, 또한 칠중의 유익을 주며, 목회에 있어서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도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C . 목회에 있어서의 치유의 방법들
1 . 믿음
히브리서 11:1에는 믿음을 정의하기를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다. 로마서 10:17에 의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7에서 믿음에 대해 밝히기를보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고 했다. 야고보는 약1:5-8에서의심하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한다. 믿음이란 이처럼 보이지 않고 불가능한 형편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의심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서 상을 얻게 한다.( 히1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킬 수 있다.(약 5:1) 힐트너(Hiltner)는 말하기를 신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믿고, 그것에 주의하면 뚜렷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보다도 더욱 큰 힘으로 그의 곁에서 싸워주셨고, 현재 싸우고 계시며, 앞으로 싸워 주실것을 믿을 때, 영적, 육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고 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 중에는 믿음을 요구하시거나 믿음을 보시고 능력을 나타내신 경우가 많았다. 또 그 반대로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능력을 행치 않으시기도 하셨던 것이다.(마13:58)
2 . 기도
기도는 하늘의 우리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E.M.Bounds는 기도를 정의하기를기도란, 하나님의 현존을 나의 현존으로 인식하여 그 분에게 나의 모든 필요를 요구하고 그 요구가 충족되면 충족된 것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사업을 위하여 투자하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열망이다고 했다. 믿음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실현을 기대하는 특권이라면 믿음은 기도를 통해서 표현되게 되어 있다. 이런 믿음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때 그 병은 치유된다. 아그네스 샌포드는 기도에 관해 말하기를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기를 바치어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되어 풍요한 생명의 흐름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력이 기도자를 통하여 이웃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했다.
존 터너는기도는 하나님이 치유의 에너지를 내어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채우는 것이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잘 통할 수 있도록 통로를 깨끗케 하기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치유를 포함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다음과 같은 주의할 기도의 조건들이 있다.
① 합당한 이유를 위해 기도하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4:2-3)
② 올바른 관계 안에서 기도하라.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3:7)
③ 올바른 믿음을 갖고 기도하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6-8)
④ 올바로 행하여 기도하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3:22)
⑤ 올바른 영역안에서 기도하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5:14-15)
⑥ 올바른 절제심으로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18:1)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소원의 응답을 누릴 수 있다.
3 . 말씀
예수님께서는 치유 사역을 행하실 때 말씀만으로도 능력을 나타내셨다.(마 9:6-7; 요 5:8-9; 막 10:52)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을 창조하고 치유하고 권능이 있었다.예수님께서는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고 하셨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히 4:12- 믿는 자 속에 역사한다.(살전 2:13) 고 했다. 오늘날도 전도나 설교,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지는 곳에서는 영육간의 질병을 치료하며 조화와 관계성이 온전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육체적인 치유가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해도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면 곧 다시 넘어지고 더 큰 질병이나 죄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38년된 질병에서 나음을 입은 병자에게 말씀을 주셨다.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5:14) 말씀은 치료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치료 후의 회복과 성장 그리고 더 큰 질병의 예방 능력도 가지고 있다.
4 . 죄의 고백
죄는 전인적인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파괴한다. 어떤 육체적 질병은 하나님앞에서의 죄의 댓가로서 주어지기도 한다.(민12:1-15) 또한 육체적이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심한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시32:5-7) 그러므로 매일의 생활에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건강을 누리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모두가 약하고 죄를 범하는 존재들이므로 죄의 용서가 필요하게 된다. 죄의 파괴력은 하나님앞에 고백과 회개를 통한 용서를 얻을 때 제거되어진다. 우리의 죄의 고백은 실제적인 치유의 능력이 있다.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그에 따른 육체적 질병의 짐을 대신 져 주셨기 때문에 사죄의 고백은 용서와 해방감, 그리고 자유와 건강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대한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는 다음과 같은 귀절들이 있다. 마8:16-17 -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벧전2:24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치유는 사죄의 결과라고 볼 때 죄의 고백과 그에 따른 용서는 치유의 역사를 가능하개 한다. 고백을 통한 용서의 감격과 기쁨은 육체에 영향을 미쳐서 육신의 병도 치유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런 사죄의 고백과 용서받는 감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받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럴때 하나님으로부터의 치료의 에너지가 우리의 영혼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적시고 흘러서 건강한 공동체와 개인을 만들 수 있다.
5 . 예배
모든 예배 의식속에는 누군가에게 어떤 종류의 치유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즉 성도의 교제를 통해 외로움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깨달을 때 과거의 심각한 죄책감이 치유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새로운 희망이 싹터 슬픔이 치유되고, 용서 받았기에 용서할 수 있게될 때 실망한 영혼이 치유되고, 하나님은 인생의 사소한 일 조차도 처리해주실만큼 위대함을 깨달을 때 근심이 치유되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가를 인식할 때 자기 비하가 치유되고, 예배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때 돈에 대한 강박 관념이 치유된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열어놓고 깨끗함과 치유의 능력을 가져오는 성령의 파도를 받아들여야 한
다.
6 . 성례전
성례전을 통해서도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질병을 담당하시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떡과 잔을 취할 때 예수님의 몸과 피 속에 들어있는 치유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례전을 통해 죄의식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깨닫고 마음과 육체까지도 치유되며, 주님이 나를 위해 피흘리셨다는 것을 확신할 때 자신이 부적합하다는데서 치유되며, 가장 비참함을 맛보신 주님을 통해 슬픔에 젖은 사람이 치유되고, 주님의 식탁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함을 믿을 때 고독과 외로움에 빠진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말이다.
7 . 의사와 의약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의술이나 약은 기도와 믿음과 모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학적 지혜나 의술을 가진 인간을 사용하시어 병자를 고치시기도 하신다. 의술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과정에 대한 끝없는 연구의 참여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지혜를 인류의 육체적 치유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병원, 최신 의학기술 그리고 복잡 다단한 제약법들은 병든 사람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분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믿는 자들이 의사와 약의 도움을 받을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복용하라고 말했다.(딤전5:23) 예수님은 의사들과 약을 합당한 수단으로 인정하셨다.(마9:12; 눅10:25-37) 그러므로 우리가 아플 때, 우리는 우리의 건강이 전적으로 의사들에게 달린 것처럼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우리의 회복이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에 달린 것처럼 계속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와 약이 한계를 갖는 때에라도 믿음과 기도는 계속될 수 있다.
8 . 안수
때때로 예수께서는 단지 말이나 명령만으로 치유하셨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말씀하시지 않고 접촉으로만 고치셨다. 마14:35-36을 보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그곳 사람들이 예수인 줄로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그러므로 치유는 손을 대는 것으로도 일어난다. 성서에서 안수는 축복할 때(창48:14, 마19:15), 사명을 위임할 때(민27:23, 민8:10, 행66, 딤전4:14, 5:22), 안수하는 자와 안수받는 자의 동일시할 때(레1:4), 치유할 때(막1:41, 행9:12, 17, 행28:8), 성령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행8:17) 사용되었다. 맥트너는 치유를 위해서 이러한 안수의 방법이 필요한 때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소리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는 안수하라는 것이다. 특히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왔을 때, 큰소리로 기도하여 환자들이나 간호원들을 혼란케하지 말고, 단지 환자들의 손을 잡고 있어도 하나님의 치유 능력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둘째, 오랜 시간 기도할 필요를 느낄 때에도 안수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성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할 때 우리는 금방 말을 다해버려서 할 말이 없을 경우에는 단순히 계속해서 손을 얹고 있는 것이 가장 크게 도와 주는 것이다. 그 자체가 강력한 기도이다. 안수에는 생명력을 전달하는 잠재력이 있다. 크리스찬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누리는 우리도 병자들에게 안수할 때 치유의 에너지가 전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생명력의 전달을 위해서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며 안수의 능력을 사용하고 향상시켜야 한다.
9 . 기름바름
약3:14 너희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라는 말씀에 근거하는 이 치유의 방법은 카톨릭 교회에서 수세기 동안 종부성사로 화해서 이어져왔다. 이 때에 바르는 기름은 감람유로서 병자의 이마와 손에 발라주는 것이라고 한다. 1 세기에 기름이 의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것은 사실이며, 고대인들은 기름이 사람들에게 치유 효과를 주는 것으로 믿었다. 이사야 1장 6절에 보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곪아터진 흔적을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치료하지 않겠다는 말을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 는 표현을 사용 하셨다. 이 기름은 특별히 상처난 곳을 싸매어 주고 상처난 곳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에게 매를 맞고 죽게된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주었다(눅10:34).마가복음 6장13절은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기름을 바르며 병을 고쳐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기름과 포도주가 당시의 치료약이다. 신유를 위해서 기도하고 의사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목회의 치유사역에서는 이 기름부음의 방법은 기도와 함께 의사의 치료로 병이 낫는 것으로 이해되어 행해져야 한다.
10 . 사랑
맥밀렌 박사는 말하기를 미움은 질병을 생산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할 때 우리의 몸속에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화학 반응에서 생성된 독성이 질병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속에 독성이 생성되지 않고 육체속에 치료하는 힘이 생산 되도록 사랑해야만 한다. 샌포드는 말하기를 사랑은 치유하는 힘이라고 했다. 사랑은 정신적인 병은 물론 육체적인 병까지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랑은 질병 속에 숨어있는 나쁜 힘을 제거한다. 신체의 저항 능력을 활성화하여 병원균의 감염을 견뎌내게 도와준다. 이상구 박사에 의하면, 사람이 사랑할 때에 엔돌핀이 생기고 그 엔돌핀의 활성화로 암을 비롯한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랑은 살리는 힘이 있다. 요일4:8에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죽음과 죄에서 건져내어 살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안에서 생명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치유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11 . 찬양
찬양은 치유를 가져오는 힘이있다. 찬양은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임재하게 함으로써 질병을 가져오는 사탄을 내어쫓는 힘이있다. 삼상16:23에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니라 라는 기록이 있다. 찬양은 하나님을 모셔들이게 하는 준비자세가 된다. 하나님은 찬송중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주를 찬양할 때 사탄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고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찬양할 때에 성령이 임재하시므로 치유의 능력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12 . 상담
예배는 아무래도 대중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면이 소홀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상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인상담은 상담자가 피상담자에게 교훈을 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심령이 상한 사람은 심령을 치유받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기도함으로써, 또한 서로 말함으로써 치유의 역사가 창조되어야 한다. 클라인벨은 심방중의 경청과 응답은 치유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대화를 지니도록 도와주며, 교인들이 그들의 목사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모든 목회 접촉을 통해 상담함으로써 치유의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심령의 병으로 과거보다 더욱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현대목회에는 상담을 통한 치유목회도 필요하다.
13 . 돌봄
돌봄은 상처를 입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전인격적 완성을 추구 하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자들을 위한 투자라고 할수 있다. 돌봄은 개인이나 그룹이 다른 사람이나 그룹을 위해서 관심어린 자세와 도움을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기독교적 돌봄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며 인생의 중요성을 깨닫고 투자의 위험성을 전제할 때에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돌봄은 아가페의 사랑 위에 세워지고 그 사랑에 의하여 움직여 지는 것이다. 돌봄은 타인의 전존재를 소중히 여겨 바로 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행동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능력이다. 돌봄은 개인과 그룹 혹은 삶에 영향을 주는 사회 구조에 깊은 관심과 아울러 사려 깊은 행동까지 하도록 요구 한다. 돌봄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독특성을 재 강화 해준다. 한 개인의 지속적인 정체성 유지, 자기 완성의 가능성, 타인을 위한 행동의 민감성 등은 돌봄에 의하여 더욱 안전하여지고 확장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돌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충성 때문이다. 즉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인간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위탁하여 주신 양들이 이리의 공격으로부터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아가페의 사랑으로 돌볼 때 예방적인 치유가 가능하고 또한 지속적인 돌봄을 통하여 전인격적 치유를 위한 힘을 공급할 수 있다고 본다.
Ⅵ. 결 론
치유는 하나님이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치유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그러나 치유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들었을때 약을 먹고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 같이,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 영혼만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것이 아니라, 육체를 포함한 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치유는 예수님의 선교사역의 절대 필요한 요소였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말씀선포(preaching)와 가르침(teaching) 그리고 치유(healing)가 본질적인 부분이었다(마4:23). 그런데 현대교회는 말씀선포와 가르치는데는 신실하지만 치유사역은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다. 한 인간의 아픔은 단순한 육체적 질병뿐만이 아닌, 정신적, 영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가정과 사회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어 간다. 그러므로 병든 상태에 있는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치유사역은 말씀선포와 가르침 못지 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을 돌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치유사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이 감소되고 상처가 아물어져 가는 것으로 기뻐하면서 보살피는 것이 치유사역이다.
현대 교회가 성장과정에서 조직화, 제도화 그리고 대형화 되어 가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깊이 병들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교회는 예수의 사역을 계속하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목회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사역을 이어 받는 일이기 때문에 치유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목회의 모든 일들을 치유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 말씀선포와 가르침은 치유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결국 목회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회복시키며, 하나님과 역동적인 관계를 가지게 사람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유사역은 지역 교회에서 필요하며 목회자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역이다.
본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목회자는 목회현장에서 만나는 병자에 대한 계속적인 보살핌과 연구가 필요하다. 영혼의 차원에서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기능적인 모든 회복, 즉 전인적인 회복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목회자는 치유적 사역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 교회 안과 밖의 전문 치료팀을 잘 연결하여 치유 공동체를 형성하여 전인치료에 힘써야 한다. 팀의 구성원을 분야별로 나누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영적 치유(Spiritual Therapy) - 목회자, 신학자, 영적 상담자 등.
2) 신체적 치유(Somatic Therapy) - 의료인, 간호사 등.
3) 정신적 치유(Psycho Therapy) -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자등` 임상 심리학자.
4) 사회적 치유(Socio Therapy) - 사회 사업가, 법률가, 경제 부분에 종사하는자 등.
또한, 목회자는 교회 안에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 운용해야 한다고 본다. 한 사람이 병들면 주위의 다른 사람도 함께 병든다. 사실 모든 사람은 질병의 경험과 가능성을 다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목회에서의 치유 사역은 예수님 당시 뿐만 아니고 오늘날 현대 목회에 있어서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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