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교회 이해
1. 서 론
교회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각 시대의 교회형태에 의존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교회상이 있다. 역사상 특정한 교회의 생할과 형식이 있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 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다. 그러나 또한 변화무쌍한 교회사의 온갖 정신사적, 교회사적, 신학사적 조류와 역조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있다. 이것은 교회 자체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자기 이해의 역사에는 불변의 요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하는 것 속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은 다양한 변모속의 동일성이요 갖가지 사건속의 연속성이며 현장속의 일관성이다. 요컨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되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변하는 역사적 양상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때 비로소 우리는 교회를 파악할 수있다.1)
신약성서에서도 처음부터 어떤 교회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출발했고 그 다음에야 이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2)
바울의 교회이해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의 복음선교는 자연적으로 교회를 형성했고 그 교회의 운영과 문제들에 대한 해결로 부터 바울신학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3) 바울서신들의 대부분은 그 내용이 그가 복음선교로 낳은 공동체가 안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서 당시 교회 상황이 잘 반여되어 있다. 때문에 바울의 교회이해는 바울 당시의 교회 상황 가운데서 이해 되어져야 한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본문을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고전 12:12-26에서 나타난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바울이 그 교회에 대해서 어떠한 해답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본문의 주석을 통하여 과연 바울이 교회를 어떻게 이해 했는가에 대해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의 개몀을 중심으로 살펴 볼것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2장이 고린도전서 전체 서신에서 가장 중요하며 12장의 빛 아래서 전체서신을 이해해야만 바울이 전해 주고자 했던 그 멧세지를 올바르게 이해 할수 있기 때문이다.
2. 고린도 교회의 기원
2. 1. 고린도
바울은 주후 50년 내지 52년겅에 아덴으로 부터 고린도에 도착하였다.(행 18:1-8) 그가 그 도시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을 때는 그는 약하고 두렵고 떨렸다.(고정 2:3) 디모데와 실라는 마게도내에 남아 있다가 조금후에 고린도에 왔기 때문에(행 18:5) 처음에는 바울 혼자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었다. 그후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로 부터(살전 3:6) 실라는 아마 빌립보로 부터 선물을 가지고 와서(고후 11:9) 바울은 기쁨으로 복음만 전할수 있었다. 바울의 전도전략 가운데 하나는 그가 대도시를 찾아 복음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이제 바울은 이 희랍의 고도(古都)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4)
그러나 바울이 방문했던 고린도는 본래의 고린도가 아니었다. 희랍의 광채요 장식이라 불리우던 옛 고린도는 로마의 루시우스 머미우스에 의해 파괴되었고(주전 166년) 그후 주전 46년에 쥬리어스 시저에 의해 새롭게 건설된 도시 고린도였다.5)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로 총독 거주지이자 아가야 지방 원로원의 수도로서, 양면에 바다를 접한 곳에 위치해서 동쪽과 서쪽 항구를 갖고 있어서 동서간 자연적인 무역의 중심지가 된 상업 도시였다.6) 그리고 북 그리스 본토와 남 펠레폰네시스 반도 사이의 주요 시장이었고 수공업이 번성하였다. 주민으로는 로마인, 그리스인, 동방인, 유대인 등이 섞여 있었고, 문화적 종교적으로는 혼합주의가 성행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들 외에 이시스와 세라피스 그리고 소아시아 신들의 어머니들인 성소들이 있었다. 또한 고린도는 그리스 철학의 심지는 아니었으나 디오게네스의 무덤이 있다는 것과 함께 견유주의자들의 철학자였음을 고려 한다면 통속철학이 유행했던 것을 알수 있다.7)
고린도 지방엔 당시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종교적 혼합주의가 생겼다. 그래서 낮은 윤리생활과 무너진 윤리기준은 기존종교를 퇴폐케 했으며 오히려 종교가 부도덕을 권장하는 자리에 까지 나갔다.8)
바울이 고린도 지방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한 고린도인들의 도덕성에 대해 그 도시명에 붙여진 풍자적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 Κορινθια Κορη (고린도 창부), Κορινθιαξεσθαι (고린도 난봉꾼), Κορινθιαστησ (고린도 탕부)와 같은 말들이 있어, 당시 "고린도인이 되어라"는 말은 창녀(부)가 되라는 욕설의 은어였다고 한다.9) 이런 곳이 고린도 지방이였고, 이러한 부도덕한 면이 교회에 까지 침투되게 되었다.10) 그러기에 부패한 지방의 교회에 바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 것이다.
2. 2. 고린도 교회의 기원
고린도 교회는 최초 바울의 회당 전도를 통하여 설립되었다.(행 18:1-11)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방 세계로 부터 유입되어 온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삶과 행위에 대한 규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11) 따라서 처음 서신에서 바울이 강하게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성과 행위에 대한 문제는 놀랄것이 없고, 믿지 않는 자들과의 교제에 대한 강한 경고도 그러하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왔고 그는 여기에서 A.D 49년 글라우디우스(Claudius) 칙령에 따라 로마로 부터 추방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유대인 부부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곧 유대인들의 방해에 부딪혀 다른 모임 장소를 찾아야만 했는데 찾게 된 곳이 바로 유스도(Justus)의 집이었다. 이곳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그의 청중들은 회개 하였으며, 그러던 중 마게도냐로 파견했던 실라와 디모데도 돌아와 합세함으로 바울은 점차 안착하게 되고 복음전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니 교회는 더욱 견고해 져 갔다.(행 18:4-18)
고린도 교회내의 신자들의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은 각약 각색이어서 시(市) 재무관과 같은 높은 신분을 가진 에라스도와 같은 사람도 있었고, 그런가하면 노예의 신분을 가진 비천한 자도 있었다. 또 이중에는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교인들 대다수는 가문이나 지식 교육정도에서 그리 높은 수준을 가지지 못한듯 싶다.(고전 1:26)12) 그들은 또한 반도 국가로서, 또한 도시국가로서 작은 국가들이 할거해 온 영향으로 그 성향이 극히 분파적 이었다.
이것은 또 그들 공동체가 여러곳 여러 인종들이 유입되어 합류되고 또 그들 각자의 신분이 큰 차등이 있다고 하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실로 대륙국민의 자긍심, 도서 국민의 배타심, 그리고 반도 국민의 분파심은 세계를 토한 일반적 심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종한 유대인들의 민족적 우월감도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또 그런가 하면 그들 가운데는 아직도 지적인 자랑을 하는 쓸데없는 경향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고전 1:18-20;3:18;19:8:1) 또한 이에 더하여 아직도 그들 출생지에서의 이전 버릇대로 감각적인 죄에 끌려가는 자들도 있었다.(고전 5:1;6:15-18;11:21)13) 또 유대인들은 회당의 훈련받은 사람들로 대체로 유대화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복음보다 율법을 중시하려 했다.(고전 6:11) 고린도 교회의 회집 장소와 시간은 분명치 않다. 다만 고린도전서 14:23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라고 기록한 사실로 보아 평소에는 소집단으로 모였을 것이다. 또한 그 모임의 날짜는 매주 첫째날(고전 16:2)이 암시되어 있으나 확실치는 않고 매주 모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며(고전 14:23,11:33) 그 시간은 매주의 첫째날이 시작되는 안식일 밤(행 20:7)이었을 것이다.14)
바울은 고린도에서도 자신이 천막을 만든것은 토라를 가르치면서도 생업은 자신이 꾸려가는 랍비의 관습을 따랐다고 보았으나 호크(R. F. Hock)는 그것은 2세기 이후에나 나타난 관습이며 바울은 헬라 철학자들의 삶의 유형을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15)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린도교회를 위해 다른 곳으로 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다.(고후 11:8) 바울은 그의 첫 고린도 방문에서 18개월을 지냈다.(행 18:11) 그의 체류가 거의 끝날무렵 아마도 주후 52경 늦 여름에 갈리오가 아카아주의 총독으로 부임했다.16) 바울이 고린도 전도 역시 유대인의 방해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의 전도와 목회활동을 시기한 유대인들은 그를 총독 갈리오에게 소송하였기에 결국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게 된 것이다.(행 18:12-17) 바울이 떠난 후 이 교회는 급성장을 하였고, 이후에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서 활동하였다. 이것이 후에 이 교회에서 아볼로 파가 생기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행 18:24,19:1) 때문에 바울이 고전 12장에서 "그리스도 몸"의 개념으로 그의 교회관을 기술한 것도 위의 상황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 3. 당시의 상황
고린도교회에서의 1년 반의 사역 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있었지만 고린도 교회와 계속적인 접촉을 가져왔다.17) 바울은 고린도에서 온 사람들 -- 글로에의 집 사람들 -- 을 통해서, 또한 고린도교회가 일련의 문제들을 질문하기 위해 보내온 편지를 통해서 그 교회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전해진 모든 교회의 소식은 좋은 교회의 모습은 아니었다.18) 이러한 좋지못한 일련의 교회 모습들을 접하고 바울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는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는 고린도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일일이 제시되어 있다.19)
고린도전서에 나타나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상황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것들이었다. 우선은 부도덕성의 문제였다. 어떤 사람은 교회로 부터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계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5:1ff), 이러한 사람은 자신들의 행동을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새로운 자유의 표시로 받아들였다.20) 또한 자신들의 영적인 충만함이 결코 자신들의 육적인 문제들에 의해서 속박당하지 않음을21)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인 문제에서 더욱 더 난잡해 졌으며, 다른 한편으로 모든 성적인 것을 죄된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적인 태도들이 나타났던 것이다.(7:1-40)22)
또한 교인들간의 의견대립으로 싸움이 생기고 급기야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일까지 생겼으며, 우상에게 바쳤졌던 고기가 제공되는 식사에 초대를 응하기도 하였고(10:27ff), 이교사원에서의 식사에 참석하기도 하였다.(8;10)23)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술 취하는 자가 많았고 애찬에서 조차 위하는 자가 많았다. 애찬에서 부자는 먹을 것을 많이 가져오고 가난한 자는 적게 가져옴으로서 서로간 위화감만 조성되었다.24) 또한 영적 은사의 우위성에 대한 토론으로 서로 반목하게 되었고, 방언등으로 인해 예배질서가 파괴되곤 하였다. 특히 이러한 영적인 경험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영성의 표현으로 간주했고 동시에 별로 뚜렷지 못한 은사들을 갖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전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경시해 버렸다.(12:21)25) 또한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다.(15장) 이들은 이교도적인 불신앙의 오해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 구성원들이 아니라 세례에서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울은 교회안에 파당과 분쟁이 있다는 소식에 가장 괴로워 하였다.26)
그렇다면 이 파당을 낳게 한 근원은 무엇일까?
Merkel 은 이에 대해 이 근원이 세례를 준 사람들과 결합 되었다27)고 말한다. Perrin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주는 사람과 세례 받는 사람을 동일시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세례를 베푸는 사람에게 있다고 여겨지는 힘을 나눠 갖게 되는 일종의 신비한 의식으로 세례를 생각했다28)고 말한다. 큄멜은 이 파당이 단지 교회내의 다른 교사들이나 경향들이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만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인간인 교사들에 대한 부당한 평가를 통해서 특히 세례에 대한 신비적인 이해를 한 결과, 고린도인들 사이에서 세례를 행했던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29) 말한다. 이로 볼때 파당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것은 세례의식이라고 볼수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례의식을 통한 신비적인 요소들고 결합된 성령 소유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열광적인 과대평가는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와 특별한 그리스도인의 지혜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왜곡하게 하여 엘레니즘 종교 30)의 열광주의적으로 해석하게 했다. 바울 자신도 헬레니즘 세계의 한사람 이었기에 고린도인들에게 영적인 열심을 촉구했음이 틀림 없지만 고린도 현상들은 손댈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회의 통일성을 파괴하고 있었다.31) 이러한 교회의 위기와 관련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치를 호소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당시 고린도교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바울의 교회 이해는 어떤 것이었는가가 잘 나타나고 있다.
3. 고린도전서 12:12-26 의 연구
3. 1. 고린도전서의 구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치 문제를 강조하는 본서는 교회내의 분열된 당파의 연합을 강조 하면서 교회내에서 성찬, 영적 은사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가 거룩해야 하듯이 개인생활도 그러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32) 이러한 본서의 구조는 크게 2 부분으로 나눌수 있다.33)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전체가 먼저 글로에의 집 사람들로 부터 보고를 들은 후 그에 대한 응답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전반부를 형성하고(1:1-6:21) 다음으로 고린도 교회로 부터 받은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 된 후반부를 구성(7:1-16)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본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수 있다.
a. 전반부 (1:1-6:20)
1. 교회내의 분열 (1:1-4:21) - 그리스도가 나뉘지 않았음을 주장.
2. 성적인 죄악 (5;1-13) - 몸은 성령의 전.
3. 세상법정에의 소송 (^:1-11) - 기독교인이 세상법정에서 심판 받을수 없고
스스로 해결.
4. 모든것이 가하다는 주장 (6:12-20) - 육체적 방탕에 대한 도덕적 영성
강조.
b. 후반부
1. 결혼과 독신문제 (7:1-40) - 하나님이 주신 본분대로 살것
2. 우상숭배 문제 (8:1-11:1) - 기독교인의 자유는 책임을 수반
3. 기독교 예배 규정 (11:2-34) - 관리의 준수
4. 성령의 은사 (12:1-14:10) - 은사 중 최고는 사랑이며,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
5. 죽은자들의 미래 부활 (15:1-58) - 미래의 몸의 부활
c. 에필로그 (16:1-)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신학적 특징들은 예배 드리는 교회의 공통적 신앙규범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론의 분야로서 교회에서의 바른 예배행위에 대해서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12-14장에서 상술하고 있다.34)
3. 2. 고린도전서 12장의 해석사
고린도전서 12장과 관련하여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시각에서의 해석이 있어 왔다. F. C. 바우르 부터 약 1880년 까지는 전문가들 가운데 명쾌한 일치를 보여 왔다. 그 일치는 , 고린도 교회 생활은 유대적 모형으로 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한 기독교 교회생활의 유형적이고 대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는 영감된 개체들에 의해 구성되어 세워졌고, 후에 어떤 자극으로 국부적 교회가 현재의 필요와 은사에 따라 낮은 곳으로 부터 그의 직무를 형성한 민주주의로서 구성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지역적 자치권은 교회들 사이의 관련으로 손상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의 구성원들을 자극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영에 대해 다소 충실함으로 근본적으로 연합, 성장, 발전 된다고 믿어졌다. 반석과 하늘나라의 열쇠를 가진 베드로와 삼위의 이름으로 세레를 줄 필요성에 대한 말들의 역사적 신뢰와 함께, 예수에 의한 교회의 제도는 문제시 되었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높은 교회 교리는 비교적 늦은, 가장 바울학파적 산물의 반영으로서 경멸되었다.35)
1880년 이후 1930년 사이에는, 초기 교회에 있어서 다양한 사역의 유형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모아 졌는데, 그것은 카리스마와 직무에 대한 관계였고, 성문화된 교회법의 신적 혹은 인간적 기원에 대한 것이었고, 성령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신비적 경험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헬라 종교와 제의 사회에 대한 이런 경험의 관계였고,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와 교회의 여러 부분에서 생기는 교리와 생활의 구별된 유형에 대한 것이었다.36) 이 시기에 초기 기독교에 대한 개신교 해석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세가지 전제를 수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즉 종교적 경험의 창조력, 그리스 문학, 문화, 제의의 결정적 영향, 그리고 사회적 발달 법칙의 한정하는 기능이다. 좀 더 초기의 단계에 있어서, 성령의 소유와 함께 혹은 성령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개인은 교회가 근거되어야 했던 가장 깊은 반석이 되었다.37)
그 이후의 시기에는 현저한 새로운 출발과 함께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양식비평은 교회와 케리그마 상호간에 조건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시도했다. 유대적, 묵시적, 랍비적 신약의 배경안에서 언어적, 문자적, 역사적 그리고 신학적 연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랍비적 가르침 사이, 신약의 기독론의 특징들과 종말론적 기대 사이, 메시야와 종말시의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예배와 사역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나타냈다.38) 이러한 발견들은 사회학의 법칙들과 신비적 제의의 충동에서의 맹목적인 신뢰를 금지 시켰다. 더욱이 초기 교회 역사에 대한 적합한 평가와 제시가 이루어져야 했다. 교회는 그 자신의 권리 안에 있는 실체로서 연구 되었다. 보편적 운동안에서 거의 예외없이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제도로서, 하나님이 주신 일치로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표지와 도구로서, 신조의 필요 부분으로서 받아 들여질 뿐 아니라 불리워졌다.39)
3. 3. 고린도전서에서 고린도전서 12:12-26 의 위치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지역 교회의 단합이다. 이 강조점은 분쟁의 문제에서 주의 만찬과 영적은사 등을 관련시킨 논법에서 볼수 있는데, 바울은 성도와 교회의 거룩성을 "몸"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낸다.40)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사용한 중심 용어들인 깨달음, 분별, 영적인 것, 지혜, 세상, 권세, 사랑, 거룩 등도 모두 교회와 관련된 것들이며, 주어진 문제해결에 대한 바울의 응답을 통해 바울의 교회론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교회론적 특징은 고린도전서의 구조에서 볼때, 고린도전서의 후반부에 속하는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부분에서 독특하게 나타난다. 즉 바울이 12장에서 14장 까지 은사에 대한 언급에서 12:12-31 은 은사 중 최고의 은사가 사랑이며,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개념으로 전개 시키고 있으므로 바울신학 해석에 있어서 본 12장은 고린도전서의 해석의 열쇠라 볼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신학의 전개는 논리적, 사변적 신학의 전개가 아니라 상황적 이해 위에서 교회라는 전제 속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의 통일성을 표현하여 교회가 하나의 몸 이거나 믿는자의 사회라는 의미보다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즉 고린도 교회는 분열적, 분파적, 당파적으로 분열 대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41)
이러한 분열적 분파적 교회 가운데에서 고전 12장에서 영적인 은사 문제로 인하여 분쟁이 더욱 심화 되었다. 고린도전서 12:7-10에는 9가지 은사들, 즉 지혜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기적 행하는 은사, 예언함, 영 분별함, 방언말함, 방언 통역하는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다. 바울이 이와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와같은 은사들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최고의 선물로 치유이적과 방언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42)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들은 상호분쟁과 자포자기적인 위축감 그리고 소외자들에게 파멸 직전에 이르게 하였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은사들로 인하여 협력하지 못하고 그 은사들을 상호 대립하는 도구로 이용하엿던 것이다. 심지어 바로 앞 부분에 언급된 주의 만찬에 까지도 고린도 교회는 파벌과 당파로 분열되어 성례전의 효과 전체가 파괴될 정도이었다. 바로 이러한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바라보는 바울은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 원인 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성령은 어떤 개인의 특권적 소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함으로 자랑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43) 고린도 교인들이 받은 은사들은 분열을 초래 하는데 사용 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조화속에 내재하는 은혜의 다양성을 일치시킬수 있는 방법을 고전 12:13에서 한 성령으로 세레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과의 일치를 통해 교회의 몸이 생긴다는 표현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몸과의 일치를 뜻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되고 세례받은 자들의 공동체로서 한 몸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44)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은 한 성령안에서 나누고 다스려짐을 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통해서 볼때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해 주장하려는 의도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주의자들의 분위기를 꺽으려는 것이었다.
3. 4. 고린도전서 12:12-26의 주석 45)
이 본문은 세부분(12:12-13, 14-21, 22-26) 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수있고 세 부분으로 주석하고자 한다.
첫째부분(12:12-13) 은 그리스도의 몸의 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12절 : 다양성은 한 몸속에서의 결합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몸의 하나됨은 부분 가운데 다양성을 제거하지 않는다.46) 그리스도의 몸도 이와같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그리스도 자신이 여러 지체들 -- 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며 함께 활동하는 -- 로 이루어진 한 몸이라고 말할수 있다. 바울은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도 많은 지체를 가진 한 몸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13절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한 몸으로 말할수 있는가를 설명하여 접속사 왜냐하면( γαρ )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한 몸이 된것은 우리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뜻한다. 이 세례를 통하여 기독교인은 자기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과 변호의 종말론적 사건들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안에서 그는 새 세대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거룩하게 하는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단지 부분적으로만 분명해진 사실이다. 말하자면 지금 성령이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고 또 그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면 같은 성령이 다른 기독교인 안에서도 또 그들을 위해서도 활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몸이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들이 우주적 통일체로 결합되는 것은 "은혜"를 통해서이다.47) 여기서 우리는 단지 비유 뿐 아니라 본연의 용법을 갖는데, 이것은 유기체의 비유로 부터 이끌어 낼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은 부분에 대한 관계속에서 선재한다. 그것 속에서 연합은 세례를 통하여 일어난다.48) 자연에 비추어 볼때 그들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며 이질적인 존재이다. 즉 유대인, 헬라인, 종, 자유인이다. 유대인은 여전히 유대인이고 헬라인은 여전히 헬라인이다.49) 그러나 고린도에 있는 다양한 사회적 민족적 집단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종파적 파당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에 동참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이런 하나됨을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서 표현해야 하고 부인해서는 안된다. 영적 현상의 충만함이 이런 목적을 위해서 활용되어야 한다. "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 ( εβαπτισθημεν )는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의식에는 확실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함축되어 있고 그 배후에 깔려 있지만, 바울은 기도교인들 각자가 참여했던 세례행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바울이 가장 개인주의적인 행동 - 기독교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하고 또 표현하는 활동 --을 한 성령과 한 몸 안에서의 연합의 기초로 본다는 것이다. 새로 나온 동사 " 마시게 되었다" ( εποτιθημεν )는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와 같이 단순과거 시제이고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경우를 가리킨다. 이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진술에 필요한 보충어이다. 즉 성령이 우리를 에워 쌀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기독교인들이 한 몸 즉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표현하는 하나의 비유적 방식이긴 하나 바울의 비유들 가운데서 중요한 위치를 차치하며, 바울은 이 비유를 좀 더 발전시킨다. 우선 그가 고린도 교회 상황과 관련하여 몸에 대해 중요한 점은 그 다양성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똑같은 은사를 받으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런 주장이 다음 절을 시작하는 접속사 γαρ 에 함축되어 있다.50)
두번째 부분(12:14-21)은 몸의 지체들의 상호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4절. 사람의 몸은 모든 기관을 필요로 한다. 모든 기관은 다 제각기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 사람의 몸 전체는 한 기관만 그 기능을 상실해도 약해진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기관도 손실된 기관의 기능을 대행할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교회 구성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인 각자는 다 불가결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것 없이는 교회는 활동이 마비된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은 서로 남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회생활의 통일적 형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 가운데서도 통일성을 찾는 진정한 보편 정신이 언급되어 있다.
15-21 절에서 발, 손, 귀, 눈이 계속적으로 언급된 것은 그중의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몸은 제 구실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떤 한 기관만으로 구성된 몸은 결코 몸이라고 할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기능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은 눈은 듣는 감각기관이 아니요 귀는 냄새 맡는 감각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으로 명백하다.51)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치유의 은사를 갖고 있는 어떤 기독교인이 나는 방언의 은사가 없기 때문에 교회의 일원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그의 불평은 온당치 않은 것이다. 그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과 똑같이 기독교인이다. 다양성은 아주 바람직하고 실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모든 기독교인이 다 예언을 하면 기적 행하는 것과 같은 합당한 다른 기독교적 활동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52) 18절은 비유 해석이 중단된다. 이제 몸의 구조에 대한 특유함과 결합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을 요구할 것이다. 이것 대신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지적한다.53) 즉 하나님은 그 몸의 다양성을 원하신다.54) 이것이 19절에 강조되어 있다. 이 강조는 구성원과 몸을 바꾸는 것에 의해 확신된다. 그러나 20절에서는 그 강조가 하나됨의 개념에 놓여지고 있다.55) 21절에서 바울은 다소 다른 관점에도 화제를 돌린다. 진실로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를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방언의 은사를 갖고 있는 그의 형제에게 자신의 독자성을 자랑할 수 없다. 각 기독교인은 다른 기독교인을 필요로 한다. 자랑은 잘못된 태도이다.56)
세번째 부분(12:22-26) 에서는 몸의 조화로운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몸의 지체들 가운데 일종의 보충하는 조화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2절의 약하지만 더 요긴한 몸의 부분은 눈과 같이 정교한 기관들이나 심장과 같이 볼수 없는 내부기관이 될것이다. 23절의 덜 귀히 여기는 몸의 부분은 손, 발, 사지가 될 것인데, 그것들은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줄 것이며, 아름답지 못한 몸의 부분은 발, 몸통, 가슴일 것이며 그것들은 더욱 아름다은 것을 얻을 것이다.57)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보다 약하고 비천한 성원들이 멸시 당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각별히 귀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58)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의 유비적 부분의 동일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입장을 위한 입지를 준비한다. 즉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만드셨고 부족한 지체에 존귀를 더하셨다는 것이다.(24절) 바울은 거기에 보충적 조화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 그것은 그 목적이 분리를 배제하고 서로의 돌봄을 세우려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25절)59)
26절에서 바울은 주제를 발전시킨다. 26절 b부분은 생리학적 비유로 맞지 않는데, 이점은 교회를 "몸"으로 서술하는데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비유로 말하지 않음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성령의 은사들과 관련하여 고린도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교인이 이같은 은사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해서 이것이 다른 교인들이 그를 멸시할 만한 이유는 못된다. 그만이 고통방는 자가 아니라 교회전체가 그의 부족함 때문에 고통 받는다. 어떤 교인이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랑해서도 안되며 다른 교인들도 그를 시기하거나 불쾌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교인은 하나님께서 모두의 유익을 위해 한사람에게 부여해 주신 그 한사람을 통해 집단 전체에 부여해 준 은사안에서 함께 즐거워 해야 한다.60)
4. "그리스도의 몸" 의 개념에 나타난 바울의 교회 이해
그리스도의 몸이란 개념은 결코 모든 시대에 똑같이 명료하거나 직접 해득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개념들과 같이 그것은 역사적 상황, 그 생의 자리를 가지며 이 빛에서라야 정당히 이해될 수 있다.61) 그 역사적 상황과 그 생의 자리는 바로 예수의 십자가에 달린 몸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십자가의 몸은 교회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라는 선언을 통하여 그렇게 연관되며, 둘은 일치하도록 되었다.62)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몸은 "계속적 흐름"으로서 높임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시 될수 있고 교회의 영역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이란 관념은 교회에 대한 두가지 주요한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호 형제들의 도움과 사랑안에 그 자신을 표현하는 교회의 하나됨이라는 것이다. 이 두 측면이 고린도전서 12장에 특별히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힌 몸에 대한 것이, 그의 하나됨과 충분함, 사역의 완전성, 전체성을 언급할때 설명된다. 고전 12:12도 이에 해당된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몸이 한 몸이고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그리스도도 이와 같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관계는 그리스도가 교회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사하게 한 몸에서의 세례는, 13절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교회안에서의 세례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혹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세례로서 설명 되어진다. 우리가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포함했기에 우리는 교회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몸에 대한 머리의 우선권,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선권, 의견을 달리 하는 개체들과 부분들에 대한 십자가의 우선권, 성령활도으이 교회의 인식과 향유에 대한 성령의 활동의 우선권은 바울 사상에 있어서 기초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 교회가 아니다 -- 는 우리의 화해이시다. 교회는 자유자와 노예, 헬라와 유대의 단일성을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완전한 일을 실행했다.63)
그리스도의 몸이란 개념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리워질 때 십자가에 못박힌 영광의 주안에서, 주에 의해, 주로부터, 주에 대해 교회에 참여, 양육, 지도, 그리고 성장이 강조된다. 성육신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이야기는 지나간 구원사건이 사실로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전 교회와 그의 지체들을 살게하고 기르고 격려하고 지배하고 지도하도록 자극을 주는 현재의, 영구불변의 영적인 능력으로서 생각되어진다.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다"라는 말은 신앙으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의 위대한 사건이 다른 엯적 사건으로 부터 구별되고 우월함을 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곤경과 삶이 하나님의 삶으로 이해되고, 돌보아지고, 결합되었고, 고립에서 자유로와졌고 저주로 부터 구원되고, 혼돈으로 부터 질서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서 그들 위에서 그리고 그들 안에서 느끼게 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그는 살았고 너희를 위해, 너희와 함께 모든 위대한 일들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능력, 그의 부활과 불쌍한 죄인들과 혼돈된 교회를 다스리는 왕 되심을 전제하고 선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그가 한 일에 대한 기독론적 진술이다.64)
그리스도의 몸이란 이름이 교회에 주워진 때, 그것은 교회에 대해, 교회 안에서, 교회에 의해, 그리스도의 영적인, 살아있는,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놀라운 현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교회를 다스리고 그 자신의 도구로서 사용할 그리스도의 권리를 서술한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에 대한 3가지 언급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담화를 우선하고 지배한다. 예수가 주라고 고백의 행위에서, 많은 은사를 자유로이 시여하시는 성령에 의해 풍부해 지며, 영적인 세례의 근거 위에서 고린도의 회중은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리운다. 단지 삶의 행위속에 사랑받고 사랑하며, 진실로 듣고 말하며, 복종으로 대답하며, 찾고 구하며, 듣고 목격하는 것의 모든 새로운 행위 속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몸은 살아있는 몸이다. 교회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빛을 비추어 주고, 증거케 하는 성령으로 부터 받은 생명의 다양한 사건과 표적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란 이름을 받는다.65)
"그리스도의 몸" 이란 표상에서 바울은 또한 신자 상호간의 내적인 관계성에 관심하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일치 즉 신자 상호간의 일치이다. 이러한 바울의 사상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는것이 고린도전서 12장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교회문제로 교회의 일치성이 위협받고 있던 당시 고린도 교회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 문제를 다루며 교회의 일치성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내에 여러가지 은사들66)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치는 은사, 기적 행하는 은사, 예언, 영분별함, 방언 및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가 받은 은사들에 대해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으로 어떤자들은 자포 자기적인 낙담에 이르게 되고, 위축된 지체들이 서로 분쟁을 일으키고 경쟁하며 오만한 자들의 안하무인격인 행패와 소외감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파멸직전에 놓이게 된것이다.67)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당파가 일어난 것은 꾸짖고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데68) 그리스도의 몸을 들어 말하고 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몸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몸이 하나로서 많은 지체를 가지며 몸의 모든 전체는 하나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69) 즉 교회는 몸과 같은 어떤 것이 아니라, 더 현실적인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의 몸이고 어떤 지상적인 다른 공동사회와 비교할수 없으면서도 지상적인 현실이며, 뭄으로 죽음에 던져졌으나 교회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에 근거를 둔 것이다.70)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강조는 우선적으로 일치를 말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의 한 몸을 이미하며 다른 지체들과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71) 그러므로 교회내의 각기 다른 구성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하며, 각자는 서로 다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5. 결 론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바울의 교회이해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고찰해 보았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선교자로 부름 받았다고 말했던 만큼 이방인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는데, 그 결과 이방 지역에 많은 교회 형성을 보게 되었다. 그가 세운 교회 중 고린도 교회는 특히 그에게 많은 근심과 걱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던 자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삶의 습관을 교회 내에서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안게 되었고, 심지어 파산 직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교회안의 파당과 분쟁의 문제는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표상을 통해 교회의 일치를 호소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가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될 때 그것은 "교회 = 그리스도" 관계가 아니라 " 교회 < 그리스도 " 관계가 성립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개념에서 신자 상호간은 성령께서 부여해 주신 각자의 은사를 통하여 서로를 봉사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으며, 때문에 교회는 활동 모습은 다양하지만 하나 됨을 이루고 있다. 그 하나됨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고 구성원들은 성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심히 앓고 있는 오늘의 교회 상황에 있어서, 교회의 참 모습을 찾아가는 우리에게 큰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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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Kung, 「교회란 무엇인가」이홍근 역 (서울:분도출판사, 1992), pp. 21-22.
2) Ibid., p. 22.
3) 전경연외 4인, 「신약성서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73), p. 229.
4) 이종윤, 「신약개론」(서울:개혁주의 신행협회, 1988), p. 398.
5) 김득중,「신약성서개론」(서울:컨콜디아사, 1990), p. 185.
6) W. G. Kummel, 「신약정경개론」박익수 역(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275.
7) 전경연, p. 33.
8) 이종윤, p. 397.
9Ibid., pp. 397-398.
10) 5장, 6장에서 찾아 볼수 있다.(5:1-13 은 근친상간, 6:12-20은 음행)
11) F. F Bruce, 「Paul Apostle of the Heart set Free」(Michigan : Eerdmans
Publishing Co, 1983), p. 368.
12) Ralph Martin, New Testament Foundations Vol 2」(The Peternoster:LTD
Press, 1978), p. 171.
13) 이상근, 「고린도서」(대구:성등사, 1969), p. 45.
14) R. Banks, 「Paul's Idea of Community」(Wm B Eerdmans, 1982), p. 30.
15) Ronald F. Hock, 「The Social Context of Paul's Ministry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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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경연, 「원시기독교와 바울」(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p. 184.
17) C. K . Barrett, 「고린도전서」국제성서주석(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2), p. 20.
18) W. G. Kummel, p. 276.
19) C. K. Barrett, p. 46.
20) H. C. Kee, 「신약성서이해」서중석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0), p. 358.
21) G. BornKamm, 「바울」허혁 역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1), p. 116.
22) H. Koester,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2 : History and Literature
of Early Christianity」(Philadelphia:Fortress, 1982), p. 122.
23) W. G. Kummel, p. 276.
24) 김득중, p. 187.
25) J. P. Dunn,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김득중외 역 (서울:나단출판사,
1988), pp. 434-435.
26) W. G. Kummel, p. 276. 이 파당과 분쟁의 문제는 위에서 나열한 여러문제들의
근원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1:12에 보면 고린도 교회내에 4가지의 다른 그룹(바울, 아볼로, 게
바 ,그리스도)이 있었음을 볼수있다. 그런데 이 4가지 다른 그룹들이 서로 다툼
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서신 처음에 4개의 파당에 대한 이
야기를 언급했기 때문에 F. C. Baur 이래로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파들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각 개별 분파들을 분류하고, 이 서신에 문제점들을 그 분파들
과 관련이 있도록 나누어 보려는 시도들이 게속되어 왔다. Ibid., pp. 276-277.
27) H. Merkel, 「신약성서연구입문」박창건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1),
p. 135
28) N. Perrin, 「신약성서개론(상)」박익수 역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1), p. 280.
29) W. G. Kummel, p. 277.
30) 헬레니즘 세계는 종교를 신비적인 능력의 과시, 기적을 행할수 있는 능력, 여러
종류의 종교적 황홀경 현상들의 체험, 그리고 뛰어난 지식으로 생각하는 경향
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31) N. Perrin, p. 244.
32) 이종윤, p. 406.
33) 고린도전서의 구조를 설명함에 있어서 학자들은 다양한 구분을 한다. 바이스(J.
Weiss), 헬링(J. Hering), 고겔(M. Gogel)과 딘(J. T Dhan)등이 있다. 그중에
바이스는 고린도전서를 고린도 교회와 사도바울간에 관계가 점차적으로 발전
되어 가는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세 부분으로 편집되었다고 본다.
D. Guthrie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London: I. V. F, 1988),
p. 439.
34) 바울이 고전 16장 전체를 교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수있
다. 이렇게 볼때 고린도 전서에서 Climax장은 바로 12장 이며, 12장의 맥락에
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개념 아래에서 볼때 본서를 올바르게
파악 할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목회자였고, 그의 관심은 그가 세운 "어린
교회" 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볼때 더욱 확증된다.
35) M. Barth, " A Chapter on the Church - The Body of Christ" , 「Inlerp」12
(1958), pp. 133-134.
36) Ibid., p. 134.
37) Ibid., p. 135.
38) Ibid.
39) Ibid., p. 136.
40) E. F. Harrison, 「Introduction to New Testament」(Grand Rapids: Eerdmans,
1964), p. 275.
41) W. Barclary, 「The Mind of Paul」(London:Fontana, 1974), p. 182.
42) E. Schweizer, 「The Church & The Body of Christ」(London:SPCK, 1965),
p. 57.
43) G. BornKamm, p. 119.
44) H. Ridderbos, 「Paul:On Outine of his Theology」(Michigan:Eerdmans, 1975),
p. 372.
45) 고전 12장은 4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① 12:1-3 : 하나님의 영과 성령의 은사
② 12:4-11 :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③ 12:12-26 : 그리스도의 몸과 그 지체
④ 12:27-31 : 교회안에서의 지체들의 기능
46) W. E. Orr, 「I Corinthians」Anchor Bible, p. 285.
47) C. K. Barrett, p. 334.
48) H. Conzelmann, 「1 Corinthians」trans. J. W. Leitch, (Philadelphia :
Fortress), p. 212.
49) W. F. Orr, p. 285.
50) C. K. Barrett, pp. 334-335.
51) C. T. Craig, 「1 Corinthians」The Interpretation Bible, pp. 160-161.
52) C. K. Barrett, p. 336.
53) H. Conzelmann, p. 213.
54) C. K. Barrett, op cit.
55) H. Conzelmann, op cit.
56) C. K. Barrett, p. 336.
57) W. F. Orr, p. 286.
58) C. K. Barrett, p. 337.
59) Ibid.
60) Ibid., p.338.
61) E. Kasemann, 「바울신학의 주제」전경연 역 (서울:한신대학출판부, 1989),
p. 331.
62) L. Cerfaux, 「The Church in the Theology of Paul」(Edinburgh:Herder and
Herder, 1959), p. 236.
63) M. Barth, p. 142.
64) Ibid.
65) Ibid., p. 147.
66) 고전 12 : 8-10.
67) G. Bornkamm, p. 194.
68) J. A. Fitzmyer, p.70.
69) G. E. Ladd,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Michigan:Eerdmans p.
C, 1974), p. 454.
70) G. Bornkamm, p. 194.
71) M. Bouttier, 「Christianity According to Paul」(Napeerille:A. R. Allenson
Inc, 1966), p.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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