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 생활

까망쑤나 2011. 4. 11. 18:54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 생활
The life of the first Jerusalem church community
행 2:42-47 6/24/01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지상에 보이는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처음 교회가 초대 예
루살렘교회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성령 강림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함으로 지상에서 가
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일 뿐 아니라 모든 교회 생활
에 있어서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예루살렘교회에서 교회의 원리와 이상을 보게 됩
니다.

교회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어떤 원리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 이 물
음에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 답을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 충만 이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 교회도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생활의 특징을 소개해 준 말씀입니다. 오늘도 내일
도 어떤 교회든 그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와 같이
생활하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경건 생활에 힘쓴 공동체였습니다.
본문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경건에 힘쓰는 생활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46절을 보면 저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는 주일에만 모인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모였습니다. 날마다 모여 기도하
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신앙생활은 교
회에 열심히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모이기를 게을
리 하면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경건 생활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경건한 성도는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교회의
모든 공적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점점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성도들이 있음이 문제입니다. 틀림없이 그들
의 신앙은 성장하지 않고 침체되고 시험을 만나면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경고하였습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입니다. 모여야 기도
도 하고, 성경도 배우고, 성도의 교제도 갖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저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사도로 세운 신앙 지도
자의 가르침에 잘 순종하고 협조했습니다.

행 6장을 보면 처대 예루살렘교회에 헬라 파 과부들과 히브리 파 과부들 간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에 사도들이 7집사를 뽑아 그들에게 구제와 봉사의 일을 맡기자고 하자 모든
성도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도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그들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행 12:5을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목회자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신앙의 인도자 역할을 하도
록 교회에 세운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협조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잘 섬기는 성도의 가장 기
본 자세인 것입니다.

이 기본 자세를 망각하고 목회자에게 불순종하거나 비협조적으로 행하면 교회는 중심을
잃게 되고 각종 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들은 한결같이 목회자와 성
도들이 흔연 일체가 되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건 생활이란 신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 생활인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의 의식주
와 같은 것입니다. 의식주를 떠나서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호흡해야 합니다. 그리고 봉사로
운동해야 합니다.

딤전 4:8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
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 생활을 힘쓰는 성도는 어떤 핍박과 환난을 당해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정병으로써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역군이 되는 것
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경건 생활에 힘썼습니다. 우리 동성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저들처럼 경건 생활에 힘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44, 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재산과 물건들을 모두 내
어놓았습니다. 저들은 자기의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 그것을 모든 성도들이 동등하게 나누
어 가짐으로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균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들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
것은 저들에게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가진 모든 소유가 자기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깨달았기 때
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아까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데 사
용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들의 교제는 음식을 나누며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아끼지 아
니하고 주님께 바치어 필요한 형제들이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정말 위대한 사랑공동체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빚을 내서라도 아들의 필
요를 응해주지 않습니까? 가족들은 서로가 아깝게 여기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들을 내놓지
않습니까? 참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인 것입니다.

저들의 유무상통의 교제는 어떤 종류의 압력이나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
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현상이었습
니다. 이는 저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 것을 외적으로 나타낸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주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사마리아와 이방 땅에 세
워진 안디옥교회에 선교사들을 보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예루살렘교회도 재정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다른 교회에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나눠 준
것입니다. 그 결과 유대에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어 가는 자들이 허다할 때 예루살렘교회
는 그 도와준 교회들의 헌금으로 무사하게 보존되며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눠주는 교회가 성장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더 풍
성한 은혜와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8). 주님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고 하
셨습니다.

셋째,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저들은 모이면 교제하며 떡을 떼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떡을 뗐다고 하였습
니다. 저들은 사랑의 떡을 나누었습니다. 소위 아가페 만찬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떡
은 주님이 제정해 주신 성만찬이었습니다.

사람은 떡을 함께 나눌 때 교제가 깊어집니다.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가까운 것
이 없습니다. 성도간에 함께 떡을 나누는 것 성도간의 참된 교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신
경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성도의 교제인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한 가족입니다. 세상의 가족 이상인 것입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것입
니다. 그러니 모여서 설교만 듣고 뿔뿔이 흩어지는 극장 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교회는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이 바로 가지 않고 남아서 다과나 음식을 나누며 친교
를 합니다.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교인수가 많은 교회는 전체가 한 자리에 안기 어려우니
구역이나 선교단체나 기관끼리 모여 친교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도간의 보다 밀
도 있는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떡을 뗐다는 또 하나의 의미는 성만찬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 의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고 동참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밥을 먹어야 하고 화초는 물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교회
의 생명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를 망각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
가 아닙니다. 한낱 친교단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들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이 충일 해야 서로 용서하고 관용하며 서로 사랑할 수 있
는 것입니다. 내가, 나 같은 죄인이 주님의 은혜로 용서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내 형
제를 용납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은혜가 충만한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
새로운 은혜가 여러분 개인에게도 우리 교회에도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넷째,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공동체였습니다.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
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놀라운 증언을 우리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 즉 불신 유대인들도 교회를 칭송하
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자신들과 다른 종교인들을 칭찬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다 사단이 만든 거짓 종교라고 낙인찍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그들과 다른 새로운 사상을 전했기에 그들이 예수를 이단자로 비난
하고 조롱하고 핍박한 것입니다(마 9:34). 그런데 그와 같이 완악한 자들이 초대 교회를 경
외하게 되고 칭송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기에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대적자들의 소굴인 예루살렘에서도 든든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의 공동체로서 경건 생활에 힘쓰고, 사랑의 공동체로서 교제하며 유무상
통 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는 행
위였던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 생활과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불신자들에게까지 칭송을 받은 직접적인 이유는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초대 교회는 주님만
찬미하고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만 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끼리 교제하고 나눈 것이 아닙
니다.

불우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도 힘썼던 것입니다. 성도들인 교회에 드린 재물로 당시
로마 식민지 아래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을 구제해 주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업에 힘쓴 것
입니다.

여러분, 가난은 나라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예로부터 말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에 수탈 당하고 있던 유대 민족은 거의가 다 가난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헤롯
왕도, 산헤드린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런 큰 사회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주고 있었기에 불
신 유대인들도 교회를 칭송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권위를 지니게 되었고 교회가 전도
하는 복음을 영접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사회도 교회에 관심을 가집니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도
움이 되어야 사회도 교회의 진리에 대해 신뢰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인들이 놀랄 정도로 부흥해 왔습니다. 그 부흥의 용인은
성령의 놀라운 권능이 함께 한 이유입니다만 초대 교회가 우리 한국 사회의 문제에 잘 참여
한 것이 교회 부흥의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초대 한국 교회는 후진적인 한국 사회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 세워 사회를 계몽시켰으며
각종 구제 사업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 해방과 자유에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교회를 칭찬하고 존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들이 사회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오직 교회 자체의
성장에만 몰두했기에 교회가 사회 가운데서 소외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도 이웃을 사랑하고 지역사회를 봉사하는 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것
은 두 말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고 성도들이 자기들
끼리만 위한다면 결코 주위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본받아야 합니다. 경건 생활에 힘써
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칭송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 교회도 초대예루살렘교
회처럼 놀랍게 부흥 발전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특별계시와 초자연적 계시   (0) 2011.04.12
▶특별계시◀   (0) 2011.04.12
“예루살렘 교회, 이상적 모델 아니다”   (0) 2011.04.11
성경; 사도행전 1; 1 ~ 14  (0) 2011.04.11
설교주제 : 제일좋은 교회   (0) 201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