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의 신학 ▣...기독교 신학(神學)연구
욥記의 神學 無罪한 자의 苦難이 무엇을 意味하는가? 신학 전문 대학원 Th.D 과정 최승열 담당 교수 : 한동구 博士 제출 일시 : 2001. 6. 27 (火) 평 / 택 / 대 / 학 / 교 / 신 / 학 대 학 원 Ⅰ. 들어 가는말 인생을 살아 가노라면 인과응보가 아닌 선량한 사람에게도, 고난이 주어지는 일이 있기에 이러한 문제를 깊이 다룬 책이 욥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금으로 부터 2500년전 그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인간들의 생각과 삶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욥기를 가르켜 말하기를 "모든 시대의 언어로 된 작품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다. 결말이 결코 나지 않는 문제, 곧 인간의 운명과 이땅 여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문제를 최초로 다룬 가장 오래된 시다. 성경안에서나 성경 밖에서나 이와 비견할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 헤롤드 S. 쿠스너 著 . 김쾌상 譯 . 「착한사람이 왜 고통받습니까?」 도서출판 심지 1983 욥기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써 가장 깊이 있는 주제 곧 "왜 하나님은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 하는 주제를 다룬 깊이 있고 아름다운 책이다. 본인은 방대하고 깊이 있는 내용들을 욥기에 대한 관심있는 자들의 저서를 참고 할 것이며 본인의 삶의 경험을 되살려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Ⅱ. 욥기의 내용 요약 욥기는 욥이라고 하는 경건한 인물에 대한 미담으로서 사람들의 종교심을 복돋아 주기위해서 전해지는 일종의 교훈적인 우화라고 학자들은 믿고 있다. 어느날 사탄은 하나님 앞에 나타나 인간들이 지상에서 저지르고 있는 죄를 모두 하나님께 고해 바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 종 욥을 눈여겨 보았느냐? 그와 같이 죄라고는 짓지않고 철저하게 선량한 사람은 없다." 그때 사탄이 대꾸 하기를 "물론 욥은 경건하고 순종하는 인물임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없이 하나님을 경외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에게 부와 축복을 내려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받은 축복을 빼앗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종이 되는가를 시험해 보십시오." 하나님도 사탄의 도전을 받아 들였습니다. 어떤일이 진행되는지를 전혀 욥에게 알리지 않은채 사탄은 욥의 집과, 가축을 파멸시키고 욥의 자녀들을 죽게 만듭니다. 욥의 온몸에 부스럼이 나게 하며, 욥이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육체적 고통이 되게 합니다. 욥의 아내는 욥의 처한 환경에 실망하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비아냥 거리면서 집을 나가 버립니다. 세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러 왔습니다. 이 친구들 역시 경건으로 받은 보상이 기껏 그런 환경이냐고 그런 경건을 포기하라고 권고 합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욥에게 일어난 어떤일도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그의 헌신을 포기하도록 만들지 못합니다. 친구들은 가고, 홀로 알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하여 방황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틀속에 이해하는 하나님의 신뢰를 벗어나 무소불능하시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룰 것이 없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회개합니다. 그런 새로운 경험 이전의 하나님 신앙을 귀로 듣는 것에 불과 했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는 것 처럼 확실하다고 고백합니다. 욥의 신실한 믿음이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새 가정과 새 재산, 새 자녀를 허락하십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역경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할 유혹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그럴만한 신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래 참고 신앙을 유지하면 고난에 대한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Ⅲ. 욥기에 나타난 고난의 신비에 대한 이해 우리는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의 전통적 틀(전례적 신학)에서만 하나님을 인식하기 때문에 피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상처만 더 깊어 졌다. 욥 자신의 하나님 신앙 역시 자신의 틀 안에서의 신 이해 때문에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신 이해를 경험하고 자신의 문제는 물론 오고오는 세대 속에서 고통에 대한 저항감에서 자유롭게 하며, 새로운 신 이해 속에서 고난의 문제를 수용하고 인내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욥기에 나타난 고난의 신비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삶의 여정에서 새롭게 숨쉬게 하고, 신선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1) 전통적인 신 이해의 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공평하신 분으로서 사람들이 각자 받을 만한 것을 하도록 애쓰시며 선한 사람은 번성하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게 하신다. 2) 폰라드의 욥의 고난 이해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도 끝나지 않고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속에서 새로운 신 경험의 차원에 뛰어 들었다. 야웨 하나님은 욥의 도전을 받아 들이고 불손한 자의 긴 호소를 인정했다. 욥은 신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신의 의(義)를 침해했다. 그러나 욥은 새로운 신경험을 통하여 전 세계를 신의 지배하에 되돌려 주게 둔다. 세계는 신을 위해 있으며, 신만이 세상을 지탱하고 유지한다. 그는 불평을 단번에 취소 하였는데, 그것은 분명히 그가 운명 까지도 신의 비밀에서 잘 받아 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신에게 그 만큼 보호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고 폰라드는 이해한다. ) 폰라드 著 . 허혁 譯 . 「구약 성서 신학 Ⅲ」 분도 출판사 . 1996 . pp253-257 3) 테릭 키드너의 욥의 고난 이해 고난이 반드시 그 희생자에게 어떤 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으며 그가 조심성이 없거나 신앙에 어떤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암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욥기의 공헌은 무고한 고난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 함으로써 욥기의 저자는 고난 받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거나 임재의 밖으로 쫓겨 난자라고 두려움과 고난에서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악을 진압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하나님이 선택하고 싶은 방법은 악을 손으로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씨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전쟁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합격자의 깨달음과 같은 좋은 것을 주신 다는 것이다. ) 대릭 키드너 著. 유윤종 譯. 「어떻게 지혜서를 읽을 것인가」 IVF. 2000. pp 71-105 4) 제임스 L. 크렌쇼의 욥의 고난 이해 "무죄한 자의 고통을 어떻게 설명 해야하는가? 는 순수한 종교가 어떤것인가를 보여주며 모든 종교에 가득차 있는 주술적 요소를 거짓으로 단정짓는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계속되는 욥의 오해의 상상이 계속된다. 그러나 욥은 점차 하나님의 침묵을 이해한다. 크렌쇼는 욥이 직면하고 있는 영적인 위기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의 한 결정적인 단계를 대표하고 있다는데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욥을 자신과 마주치게 만든 송사에서 그를 완전히 침묵 시킴으로서 우주가 합리성이라는 원리를 따라 운행된다고 보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은총이 반드시 인간의 선악 개념에 상응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의 자유에 직면하고 난 후에, 합리성의 원리를 철회한다. 욥이 믿었던 원리가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 눈녹듯이 사라진 이유이다. ) 제임스 L. 그렌쇼저 著 . 강성열 譯 . 「구약 지혜 문학의 이해」한국장로교출판사 . 2000 . pp141-170 5) 헤롤드 S. 쿠스너의 욥의 고난 이해 쿠스너는 600가정 약 2500명으로 이루어진 유대인 회당의 랍비이다. 자신의 사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딸의 짧은 생애 속에서 겪은 고난의 경험에서 새롭게 하나님이 해와 고난에 대한 이해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음을 쿠스너는 믿는다. 이 세상의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발적 사고나 자연재해는 하나님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지닌 자연법칙으로 인한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또한 착한 사람도 고통을 받으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선량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나 이런 불행은 인간의 창조질서의 파괴로 말미암아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막을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종교가 필요하며, 기도는 해서 무엇 하느냐의 질문에서 하나님은 이런 불행을 일으키지 않았으나, 선량한 사람이 당한 이런 불행을 안타까와 하시고 이런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희망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불행을 당하며 자학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이런 불행을 헤쳐 나가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희망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 헤롤드 S. 쿠스너 著. 김쾌상 譯. 「착한 사람이 왜 고통 받습니까」심지. 1983 6) 박철의 욥기에 나타난 고난의 이해 욥의 친구들의 이해에서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고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욥은 친구들이 제기한 고난의 원인이 아님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기에 심리적·육체적 고통보다도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므로 오는 소외감으로 인한 극심한 고독에 몸부림친다. 박철씨는 욥기에서 고난은 "인간 죄에대한 신의 보응"이라는 인과응보의 교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욥의 고난을 완전히 모른다는 뜻에서의 신비가 아니라 완전하게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신비로 이해했다. ) 박철. 목원대학교 신학 대학원. 「욥기에 나타난 고난의 이해」1996 7) 김유영의 욥의 고난이해 의인은 고난으로 인하여 절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므로 평안과 기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의인의 고난을 실존적 하나님 체험으로 이해했다. 욥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가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 김유영. 사울신학 대학교 Th.M 「욥기서를 중심으로 구약성서 문서에 나타난 고난에 대한 이해 연구」1987 8) 강석규의 욥의 고난 이해 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재앙이 있을것로 생각하고(31:23)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히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대답듣기를 원했다(31:35-40)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은 정당하며, 또한 자신의 정당함를 풀어줄 분이 계신다고 확신한다. 그는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다. 욥기 19장에 나온 그의 확신대로 그는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당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을 그의 구속자요, 자신의 변호자라고 인정한다. 욥 자신도 인과응보 교리를 인정하였고 또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고 부정하였던 욥 자신 마저도 하나님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틀속에 가두어 벼렸다. 그러나 욥은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고난을 바라봄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을 불러왔다. ) 강석규. 서울신학 대학교 신학대학원 「욥기에 나타난 고난에 대한 연구」1999 Ⅳ. 나가는 말 욥의 고난에 대한 이해를 연구함에 있어서 여러 학자들의 책을 심도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보석을 찾고자 하는 심정으로 책을 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지혜문학, 특히 욥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열렸다고 확신한다. 욥 자신욥 자신과 욥의 친구들 역시 전례적 신학의 틀을 넘지 못하므로 고난 앞에서 방황의 범주를 뛰어 넘지 못하였다. 고난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고난 속에서 살고있는 성도들의 목양자며, 상담자로써 얼마나 단편적이었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감추기 힘들다.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신(神)이해도 고난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유대인 사역자인 쿠스너의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다"는 주제의 설명은 막연한 고난에 대한 이해에 깊은 사고력과 삶의 현장의 구체적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ANCHOR: |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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