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서를 공부하기에 앞서...(바울의 인사)
고전 1장 1 - 3절
로마서가 교리적인 문제를 다룬 서신이라면 고린도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실제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즉 당시 성도들이 겪었던 영적인 문제와 윤리, 도덕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성숙한 성도로서의 삶을 지향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고린도는 어떤 도시였나?
*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고린도는 지형적으로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쪽의 이오니아海(레카이온 항구)와 동쪽의 에게海(겐그레아 항구)를 하나로 이어주는 운하를 갖춘 항구도시였다.
*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이어주는 교통망을 갖춘 항구도시였기에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뛰어난 조선(造船)기술과 상업 수완으로 경제적인 부를 누렸던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성행하는 까닭에, 우상 숭배가 만연했으며, 매춘이 성행할 정도로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 또한 상업적 사고방식(배금주의)을 앞세웠기에 물질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여겼고, 도덕과 윤리, 지성과 예술 같은 정신적인 가치는 우습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퇴폐적 문화에 물들어 있었으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철학자 플라톤은 매춘부를 부를 때 [고린도 소녀]라고 말할 정도였고, 시인이자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간통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하다”라고 표현했으니, 당시 고린도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은 어떠했나?
* 바울이 AD 52년경에 고린도를 방문하여(2차 전도여행) 당시 고린도의 퇴폐적인 환경을 보고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음을 확신하고 복음을 증거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해 주셨고, 마게도냐로 파송했던 디모데와 실라가 고린도로 돌아와 합류를 함으로 탄력을 받아, 선교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 바울이 안식일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면서 복음(예수)을 증거 했지만, 유대인들의 격렬한 반대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회당에서 쫓겨난 바울은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예수를 증거 했는데, 이것이 발판이 되어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 고린도 선교의 환경적 잇점이라 하면, 일단 고린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당시 인구는 자유인 20만, 노예 40만 명으로 추산함). 또한 저들은 하나같이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진짜 구원받고 변화되어야 할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것도 선교에 자극이 될 만 했다.
* 그러나 워낙 생활이 난잡했기에 교회는 늘 분쟁에 휘말렸고, 예수는 영접했지만 옛 생활 습관은 버리지 못해 부도덕함은 여전했다(구체적인 문제점들은 본문을 공부하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때로는 성도들이 바울의 목회적 권위에 도전하는 일도 있었고, 자신들끼리 서로 그룹(파당)을 만들어 교회를 분열시키기도 했으며, 영적인 은사만을 강조하며 집착할 뿐 생활(삶)의 변화에는 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으며, 오직 구별된 삶과 순결한 삶을 강조하면서, 고린도가 변화되면 다른 지역은 저절로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목회를 했다.
◈ 고린도서는 언제 어디서 기록했을까?
*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3년 정도 머물러 있으면서 고린도교회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이미 듣고 있었다. 그래서 AD 55년경에 서신(고린도전서)을 보내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변화를 촉구했다.
* 그러나 그들은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바울이 AD 55년경에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게 되지만, 오히려 그들은 바울의 권위에 도전을 하면서 바울을 곤경에 빠뜨린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를 떠난 뒤, 또 다시 서신(고린도후서)을 보내면서 그들의 신앙적인 성숙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ꋮ 1 절 / 바울은 자신이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과 권위에 대해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인데,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즉 바울은 자신은 사도로, 이 편지를 읽는 무리들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2절)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전권을 위임받은 특사를 뜻한다. 즉 바울이 특사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도로 먼저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 사도란 ① 지상의 예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 ②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고 이를 증거하는 자 ③ 성령의 특별하신 영감을 받은 자로서, 12명의 제자 이외에 바울과 바나바, 예수의 형제 야고보, 실루아노와 디모데, 그리고 아볼로 등이 있었다.
* 바울은 예수의 12사도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서 직접 사도의 직분을 허락받았고, 특별히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하심을 받은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사명에 임했다.
* 특히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사도 된 바울은 (갈 1:1)』이라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 당시 사도의 임무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교회를 세우고, 감독할 권한이 있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징계까지 할 권세가 주어졌기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며 교회를 치리하려고 애를 쓴 것이다.
*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권위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면, 복음의 권위도 함께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 한편 바울은 함께 사역을 감당했던 소스데네를 소개하고 있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 사람을 사도행전 18장 17절에 나오는 사람과 동일 인물로 판단한다.
*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 회당의 회당장이었으며,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롯하여 기독교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소스데네도 함께 뭇매를 맞았는데, 이를 미뤄볼 때 회당장의 직임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영접했던 아주 용기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소스데네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당시 초대교회에서 유력한 인물로 성장했던 것이 분명하다.
ꋮ 2 절 / 당시 [고린도]는 퇴폐를 상징하는 말이었는데,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야말로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거룩한 무리로 부르심을 입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성도란?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존재요, 예수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존재이며, 예수의 이름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교회란? 그런 무리들이 모인 곳이다.
* 죄 가운데 있는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특히 고린도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거룩함을 덧입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도는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는 존재다. 아마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도라고 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부족하지만 거룩하신 예수께서 우리를 감싸주고 계시니 우리가 거룩함을 덧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바울은 “각 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이라는 말을 하면서, 좁게는 고린도교회 안에 각양각색의 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져야 할 것이요, 넓게는 주를 고백하는 모든 무리들은 같은 성도로 인정할 것을 심어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 그리고 이 편지가 단순히 고린도교회 성도들만 읽을 것이 아니라, 주를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도 함께 읽게 되어질 것을 알았기에, 넓은 의미의 인사와 축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모든 성도들에게 선포했던 축복은 무엇인가?
ꋮ 3 절 /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으며(창조주), 나를 인도하셨기에(섭리자)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심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 것 또한 “예수 그리스로 좇아” 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예수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맺어질 수 없으며, 예수가 없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축복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와의 관계성에 신경을 쓰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을 앞세워 허락하시는 은혜와 평강을 허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죄에 대한 용서다. 그래서 가장 큰 은혜란? 내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또한 평강은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케 만들어 주셨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즉 은혜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은혜와 평강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가운데 거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목회자의 가장 큰 바람은 성도들이 기쁨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요, 이는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좇아서 나온 은혜와 평강이다.
* 바울은 세상적인 기쁨에 젖어 살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적인 은혜와 평강을 덧입어 살아가길 소망하면서, 이와 같은 축복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우리 성도들을 향한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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