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중한 자료

돌로레서 클레이본

까망쑤나 2010. 11. 5. 19:32

수년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김보은’양 사건이라는 것으로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해 오던 의붓아버지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모르게 자행되는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당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해,<돌로레스 크레이본>은 난폭한 아버지에게서 딸을 보호하려는 한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어린 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버지를 직접 살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다. 논자에 따라서 과연 정당한 살인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만일 김보은 양에게 <돌로레스 크레이본>과 같은 강한 어머니 혹은 주변의 도움이 사전에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앞서와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이번 정신건강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을 보는 내내 나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같이 영화를 보았던 5~6분 모두 긴 한숨으로 충격을 대신 표현했다. 이것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비한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이 상황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이 영화를 통해 부모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부모상을 계획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줄거리 및 주제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은 알콜 중독자로 짐작되는 아버지에게서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시작은 ‘돌로레스 크레이본’이 한 여인의 살인용의자로 검거되면서 시작되고, 누군가에 의해 전해진 팩스에 의해 어머니의 소식을 알게 된 돌로레스 크레이본의 딸이 귀향해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뉴욕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살해용의자로 몰린 어머니와 함께 경찰조사를 받은 충격,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등으로 인한 과거의 충격으로 약물중독상태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수년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김보은’양 사건이라는 것으로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해 오던 의붓아버지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모르게 자행되는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당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해,<돌로레스 크레이본>은 난폭한 아버지에게서 딸을 보호하려는 한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어린 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버지를 직접 살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다. 논자에 따라서 과연 정당한 살인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만일 김보은 양에게 <돌로레스 크레이본>과 같은 강한 어머니 혹은 주변의 도움이 사전에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앞서와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이번 정신건강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을 보는 내내 나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같이 영화를 보았던 5~6분 모두 긴 한숨으로 충격을 대신 표현했다. 이것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비한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이 상황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이 영화를 통해 부모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부모상을 계획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줄거리 및 주제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은 알콜 중독자로 짐작되는 아버지에게서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시작은 ‘돌로레스 크레이본’이 한 여인의 살인용의자로 검거되면서 시작되고, 누군가에 의해 전해진 팩스에 의해 어머니의 소식을 알게 된 돌로레스 크레이본의 딸이 귀향해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뉴욕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살해용의자로 몰린 어머니와 함께 경찰조사를 받은 충격,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등으로 인한 과거의 충격으로 약물중독상태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수년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김보은’양 사건이라는 것으로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해 오던 의붓아버지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모르게 자행되는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멸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당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해,<돌로레스 크레이본>은 난폭한 아버지에게서 딸을 보호하려는 한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어린 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버지를 직접 살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다. 논자에 따라서 과연 정당한 살인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만일 김보은 양에게 <돌로레스 크레이본>과 같은 강한 어머니 혹은 주변의 도움이 사전에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어쩌면 앞서와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이번 정신건강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을 보는 내내 나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같이 영화를 보았던 5~6분 모두 긴 한숨으로 충격을 대신 표현했다. 이것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비한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이 상황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이 영화를 통해 부모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부모상을 계획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줄거리 및 주제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본>은 알콜 중독자로 짐작되는 아버지에게서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시작은 ‘돌로레스 크레이본’이 한 여인의 살인용의자로 검거되면서 시작되고, 누군가에 의해 전해진 팩스에 의해 어머니의 소식을 알게 된 돌로레스 크레이본의 딸이 귀향해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뉴욕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살해용의자로 몰린 어머니와 함께 경찰조사를 받은 충격,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등으로 인한 과거의 충격으로 약물중독상태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우선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스릴러물이면서 드라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스릴러물인데도

다른 영화에 비해 무섭지 않기 때문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중간중간  깜짝 놀랄만한 장면들이 간간히 나오는데

나는 돌로레스가 유리창을 깰 때가 제일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 속에 비춰진 돌로레스가 함께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 또 하나. 우물 속에서 일식이 보이는 장면 또한 정말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이 영화 속 돌로레스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인물이다.

아무리 딸을 위해서라도 남편을 살해하기까지는 많은 혼란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이겨내고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셀리나 또한 그런 어머니의 모성을 결국은 알아주지 않던가.

 

이 외에도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영화 속 인물 하나하나를 잘 살려낸 영화라고 생각된다.

조지도 그렇고, 도노반, 매키형사까지 모두 개성있는 등장인물들이었다.

 

정말 한번쯤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오늘 볼 영화는 '돌로레스 클레이본'이라는 영화입니다.


혹시 다시 보고 싶거나, 못 보신 분들을 위해 CD 표지에 나와있는 줄거리를 올립니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 Dolores Claiborne

 

주연 : Kathy Bates, Jennifer Jason Leigh

 

명석하고 날카로운 문체를 자랑하며 뉴욕에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셀리나에게 어느 날, 발신인을 알 수 밝히지 않은 한 장의 팩스가 날아든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돌로레스가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지방의 신문기사였다. 셀리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돌로레스를 찾아간다. 15년만에 만난 두 모녀는 가슴속에서 과거의 악몽과 회한들이 거꾸로 역류하는 것을 느낀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 지방 여류 부호인 베라 도노반을 살해한 혐의로 곧 정식 심리를 받게 될 예정이나, 그녀는 여전히 변호사 선임을 완강히 거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18년 전 돌로레스는 사랑하는 딸 셀리나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베라 도노반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술주정뱅이 남편의 학대에 몸과 마음이 상할대로 상하고, 저택에서는 깐깐하고 인정머리 없는 베라 밑에서 손등이 터지도록 고된 일을 하면서도,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셀리나를 위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돌로레스는 남편이 딸 셀리나를 성추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녀는 그동안 저금한 돈을 찾아 셀리나와 도망치려 하지만, 그 돈마저 남편이 빼돌렸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돌로레스의 사정을 알게된 베라는 함께 격분하며 '이 세상의 수많은 사고사가 모두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해준다. 며칠 후 개기일식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일식으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순간 술에 취한 남편이 낡은 우물에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개기일식으로 유명한 미국의 메인주 리틀 톨 아일랜드의 바닷가 외딴 언덕, 음산한 바람 속에 버려진 한 채의 집에 셀리나가 15년 만에 돌아온다. 이집은 그녀가 증오하며 떠났던 어머니 돌로레스의 집이다. 셀리나는 뉴욕에서 명석하고 날카로운 문체로 유명해진 여기자로, 발신인이 밝혀져 있지 않은 한 장의 팩스를 받는다. 자신의 어머니 돌로레스가 살인혐의로 구속됐다는 지역신문의 기사였다. 셀리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어머니 곁에 찾아왔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어머니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다.
돌로레스는 그 지방 여류 부호인 베라의 살해혐의로 곧 정식심리를 받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녀는 변호사 선임을 완강히 거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사건에 특별히 늙은 형사 매키는 돌로레스의 유죄를 확신하며 집요한 수사를 벌인다. 86사건의 사건 중 85건을 해결하는 완벽에 가까운 수사 기록을 갖고 있는 매키형사. 그런 그에게 단 한건의 미해결 사건을 가져다준 주인공은 바로 18년 전 남편의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유죄가 밝혀지지 않았던 돌로레스이다.
18년전, 톨로레스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 딸 셀리나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노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었다. 술주정뱅이 남편 조의 학대로 몸과 마음이 상한 돌로레스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희망인 딸 셀리나를 위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린 딸 셀리나가 남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본후~

 

이 영화를 본적은 꽤나 오래 전이었다. 그래서 인지 확실한 영화제목, 주인공들 또한, 영화의 줄거리조차도 자세히 기억나질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영화의 줄거리를 읽으며, 몇 년 전의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되새겼다. 이 영화를 보여주신 국어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영화제목에 대한 설명은 확실히 떠오른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정말 어렵게 태어나 더럽게도 고생만 하다가는 뒤웅박 같은 팔자를 가진 여인이라는 의미라고 ... 듣기만 해도 참으로 비참한 제목이었다.

더듬어 기억해낸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처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음 .. 전체적으로 으스스하다!, 공포스럽다! 라고 해야할 것 같다. 영화의 느낌이 어둑 칙칙한 블루 톤을 연상케 하였다.

생각보다 영화는 훨씬 재밌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인지 나는 졸음 오는 기색도 없이 열심히 영화를 보는데 몰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만 해도 많은 영화를 접해보지는 못했던 나였지만, 다른 영화와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흔치 않는 듯한 영화의 주제! 여성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의 일면을 고발하는 듯 하였다. 외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의 부정된 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아 내 마음조차 속 시원하였다. 많은 주인공들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회의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확실하게 다룬 것으로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인 가부장제를 비롯한 남성우월주의 풍토에 의해 남성들과 여성들의 영화를 보고 난 이후가 아주 많이 대조되었을 것으로 보였다. 끝내는 어머니와 딸의 화해에서 남성에게 억압받던 여성들의 승리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남성들은 불만을 터트렸을지 모른다. 이제껏 대부분의 영화들은 남성주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남성천국에서 고통받고 천대받던 여자들의 대항에 어이없어 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죽음까지 당해버린 남자 주인공들에게 수치심에 모욕감까지 준다며 욕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통쾌하다고 까지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비롯한 사회적 갈등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은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남편 죠 클레이본사이에서 죠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같은 가정 속에서의 폭력과 아버지 죠와 딸 셀리나사이에서 죠의 근친상간의 아동 성추행, 이로 인해 어머니 돌로레스와 딸 셀리나의 오해로 범벅되어 15년 간의 발길을 끊어버리게 되는 관계를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인간 관계들간의 갈등을 공포스럽기 까지 할 정도로 표현하였다.

감히 나는 돌로레스를 존경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냉대와 학대 등을 이겨내며, 억척스럽게 딸의 교육을 위해 애쓰고, 딸 셀리나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희생했으며, 셀리나 만큼은 남성에게 억압받지 않으며 불우하지 않게 자신과 같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때로는 악녀가 되는 것이 편하다를 깨달고, 끝내는 남편 죠를 살인하는 선택까지 한 것에 말이다. 여기서 나는 살인을 단지 부정적으로 보이지도, 보지도 않았다. 이 살인은 돌로레스의 불평등하고 피지배자로써 가부장적인 가정생활 안에서의 괴로운 과거, 전혀 나아지질 않는 현실에서 보이지도 않는 불확실한 미래 등 모든 면에서 무시당하는 여자라는 이름에 최후의 일격 이였으며,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 이 세상 모든 남성들에게 이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보여주고 싶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반발을 해댈 것을 예상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고, 양심이 있다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껏 여자들은 남자들에게서 억압받는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은 약한 자를 괴롭히는 지배층으로써 가정속에서 폭력이라는 수단과 외도와 자식의 성추행 등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로 단지 남자라는 이름 하나로 잘났다는 듯 여자들을 압박하고, 이용하고, 정복하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 남자들이여, 반성하라!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제가 여태까지 읽은 책 중 가장 재미나게 읽은 소설이었습니다. 책의 완성도나 인상깊은 정도를 떠나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소설이에요.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세워가며 책을 놓을 수 없었죠.
다 읽고 나서 책의 재미로만 따진다면 이 책을 따라올 수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죠. 책을 읽은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 전에도 그랬고 그 후에 읽은 책들 중에서도 속도가 이렇게 잘 나가고 어느 한 곳도 지루한 틈이 전혀 없던 책은 저에게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유일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이 책은 제가 읽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 중엔 최고였고 몇년동안 스티븐 킹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여겼죠.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영화도 있습니다. 이 책이 국내 출간된 것도 영화 개봉에 맞춰서였죠. 3년전에 황금가지에서 스티븐 킹 전집 목록에 [돌로레스 클레이본]포함돼있어 개정판이 나왔더군요. 제가 읽은 건 초판본 '잎새'출판사 버전이었습니다. 번역자가 달라서 어떻게 번역됐는지 궁금하군요.
그러나 영상소설 스타일의 표지디자인으로 나온 '잎새'출판사 버전도 좋았습니다.

저는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무지하게 재미있더군요. 책은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살인죄로 경찰서에 가서 밤을 세워 진술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나이 많이 먹은 할머니고 경찰서에서 진술할 때도 반말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돌로레스 클레이본 할머니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욱이 할머니의 1인칭 관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섬뜩하고 오싹한 그런 이야기 말이죠.

장편소설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진술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이 소설은 영화보단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옮긴이는 이런 말을 했죠. 돌로레스 클레이본 역을 맡은 배우가 나와 모노드라마 식으로 진행시키면 좋을 거라고.

책을 다 읽고 과연 영화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까 궁금했어요. 주인공 돌로레스의 이야기는 일반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죠.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영화가 더 유명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이 돌로레스가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남편을 개기일식날 살해하는 이야기만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아니면 딸과 어머니의 이야기, 모성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딸에 대한 애정을 다룬 그런 이야기 말이죠.

물론 책엔 모성애와 남편 죽이는 살인사건도 담겨 있지만 영화만큼 그 비중이 크진 않습니다. 책은 베라 도노번의 비중이 큽니다. 영화는 베라가 돌로레스의 살인을 부추기는 정도의 비중이지만 책에선 베라의 가족사와 베라와 돌로레스의 애증섞인 우정같은 것이 잘 표현돼었죠.
돌로레스가 남편을 죽이는 것은 남편이 워낙 폭력적이고 무능한 술주정뱅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큰딸인 셀레나를 성폭행하는 것에 분노하고 자식을 위해 부은 적금을 남편이 몰래 찾아 썼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영화나 책이 똑같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이 책은 영화로 각색하기가 까다롭습니다. 300쪽짜리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방대해요.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2시간을 넘기는데 원작과 같이 베라의 이야기과 셀레나의 이야기까지 다루려면 미니시리즈 분량이 되죠. 거기다 이 작품에서 일식은 중요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도 시간을 잡아먹죠. 그런 이유로 영화에서 베라의 이야기가 대폭 축소됩니다.
그리고 책처럼 진술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일반 미스테리 물로 만들었죠. 셀레나의 비중을 높이며 엄마의 또 한번의 살인사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어색한 만남을 갖고 누명도 풀고 어머니의 모성도 확인하고 애증도 씻기는 과정을 담습니다. 셀레나는 아버지의 의문섞인 죽음 배후에 어머니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에 괴로워하며 얼룩진 어린 시절로 황폐해져 있죠. 결국 모든 게 자기 자신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긴 하지만요.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남편을 죽이는 이야기보단 베라와 돌로레스의 관계입니다. 베라의 강박관념과 결벽증, 그리고 베라의 미스테리한 가정사 같은 것 말이죠. 베라는 바람피는 남편과 정부뿐만 아니라 그녀의 자식까지 죽이고 반평생을 미친 상태로 살죠. 그런 이유로 돌로레스의 살인을 부추기는 건데 영화에선 그런 게 표현이 안 되있으니 뜬금없어지는 겁니다. 몇 십년을 공통된 감정을 갖고 의지하며 사는 두 노인네의 우정이 책 곳곳에 표현되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달픈 베라가 돌로레스한테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는 것이 설득력 있지만 영화는 그런 중간 부분이 모조리 편집되는 바람에 뜬금없죠.

셀레나의 비중도 그래요. 책에선 이미 셀레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걸 알고 있으며 그런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그 사건 이후 어머니를 친밀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 뿐이죠. 그냥 건조하게 지내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영화 속의 셀레나가 돌로레스의 살인을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둘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죠. 그러니까 영화는 딸이 어머니의 살인사건을 이해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고 책은 돌로레스가 저지른 살인과 누명쓴 또하나의 살인사건, 그리고 베라와의 관계에 집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략한 부분이 너무 많고 셀레나의 비중이 너무 높아진 바람에 책이 담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감동, 그리고 소름 돋는 부분이 영화엔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물론 영화도 잘 만들어지긴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주 좋고요. 돌로레스 역에 캐시 베이츠는 적역이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셀레나 역의 제니퍼 제이슨 리도 그런 역 전문이니까요.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일식 장면이나 교차 편집, 현재와 과거가 확연히 구분되는 촬영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대게 원작이 있는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진 못합니다. 원작을 떠나서 보면 잘 만들어진 드라마지만 비교하자면 한없이 미흡하죠.


dolores_claiborne_ver1.jpg

어제 저녁에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돌로레스 클레이본’이었다. 이 영화가 마음을 끌었던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케시 베이츠와 제니퍼 제이슨 리이다. 케시 베이츠는 생존하는 여배우 가운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다. 영화 ‘미저리’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미저리’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는 케시 베이츠 아줌마를 좋아한다. 그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케시 베이츠라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케시 베이츠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해왔었다. 영화에서 발견한 그이의 아름다움은 별다른 것이 없다. 케시 베이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이의 외모가 참으로 평범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이도 있고 몸도 뚱뚱하고 키도 별로 크지 않은, 옆집 아주머니같은 수수함이 있는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하지만 케시 베이츠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나는 그이를 처음 영화에서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조금도 숨김없이 솔직한 고백이다. 영화 ‘미저리’에서 싸이코 전직 간호사 역할을 맡았던 케시 베이츠는 완벽한 연기로 영화를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완벽한 연기의 중심은 얼굴 표정, 특히 눈빛의 연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케시 베이츠의 눈빛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악함, 사랑과 저주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눈빛만으로 연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이의 온몸에서 나오는 연기의 결정이 눈과 눈빛의 표정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케시 베이츠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이는 타고난 연기자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세상의 어떤 배우보다 완벽한 연기를 한다고 나는 자신한다. 보통 여성 배우의 연기는 남성 배우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자 관행이었다. 이를테면 세계의 대배우를 들었을 때, 말론 브란도를 비롯해 몇 명이 내리 남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의 연기력이 낮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은 차치하고 이제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케시 베이츠와 같은 대배우가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믿는다. ‘미저리’에서의 그 천진과 악마의 눈빛이 교차하던 표정연기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평범한 여성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당당한 여성으로 바뀌는 드라마틱하고 유쾌한 연기를 보면 케시 베이츠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다음 연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미모와 몸매를 바탕으로 ‘육체과시형’ 배우들이 판을 치는 요즘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지성에 바탕을 둔 연기를 하는 순수한 연기파 배우들이 더욱 귀중하게 생각된다. 케시 베이츠는 좋은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지성파 배우이며 그이의 완벽한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내면의 연기로 말하자면 ‘제니퍼 제이슨 리’도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 ‘부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창녀로 연기를 했던 제니퍼는 나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이 역시 1994년 최우수 여배우로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 영화 ‘조지아’로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그이만의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부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영화음악 가운데 ‘a love idea’는 내 영혼을 흔들었다고 말할 만큼 아름다운 곡이었다. 이 곡과 함께 제니퍼의 연기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는 케시 베이츠만큼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아직 그가 출연한 영화를 몇 개 못본 탓도 있지만 좋은 배우라는 인상 외에는 아직 이렇다하게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이 두 주연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이니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내용이 어떻든 케시 베이츠만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갔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감독을 보는 것이다. 어떤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소설가의 이름을 보고 책을 사듯이 영화는 영화감독의 이름을 보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옳다고 믿는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면 바로 케시 베이츠와 같은 배우 때문이다. 케시 베이츠에게 보내는 나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애정은 바로 그의 연기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배우의 연기력을 완벽하게 믿는 것도 힘들지만 나는 케시 베이츠를 무조건 신뢰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케시 베이츠를 믿고 사랑하는 것 때문에라도 갔겠지만, 이 영화의 원작자가 바로 ‘스티븐 킹’이라는 사실이 또 나를 들뜨게 했다. 스티븐 킹이 누구인가? ‘미저리’를 쓴 작가이고 ‘쇼생크 탈출’을 작가가 아니던가. 나는 영화 ‘미저리’를 보고 나서도,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 나서도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었다. 그저 글 잘쓰는 추리소설가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통신망에서 스티븐 킹이 쓴 소설 ‘쇼생크 탈출’을 구해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어떤 분이 애써 영문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는데, 분량도 만만치않았다.
그 소설을 읽고나서 나는 스티븐 킹을 단순한 추리작가로 여기지 않고 아주 훌륭한 작가로 인정했다. 스티븐 킹은 존경할만한 작가이다. 소설 ‘쇼생크 탈출’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영화를 볼 때보다 더 많은 상상과 자유의 갈망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분명 훌륭한 작가이다. 그를 단순히 대중작가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그의 작품이 너무 좋았다.
원작 소설의 훌륭함과 함께 뛰어난 명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를 안본다는 것은 영화와 철천지 원수지간이 아닌 다음에야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2시간 15분이나 된다. 135분나 되는 긴 시간동안 스펙타클하지도, 폭력이나 섹스가 난무하지도, 스피드와 환상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어찌보면 아주 심심한 영화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2시간 15분이 마치 한 30분 정도 지난 것처럼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빠르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까닭일까.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구성력이 먼저 떠올랐다. 원작이 훌륭하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당연히 그보다 더 탄탄한 구성력을 가지게 된다. 순서는 영화에 맞게 바뀌지만 당연히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원작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게 된다. 소설과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도 문제를 던지고 하나씩 풀어나가는 추리기법을 동원했다.
주인 마님인 ‘베라’의 살인범으로 몰리는 돌로레스, 돌로레스를 구속하기 위해 사건을 맡은 존 매키 형사, 돌로레스의 딸인 셀레나를 사건에 끌어들이는 것도 역시 존 매키였다. ‘베라’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15년만에 고향을 찾은 셀레나, 그리고 18년 전에 발생했던 돌로레스의 남편이자 셀레나의 아버지 의문의 실족사가 함께 물리면서 사건은 혼란과 미궁 속에 빠진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한다. 돌로레스, 그의 딸 셀레나, 돌로레스의 술주정뱅이 남편, 부자집 마나님 베라, 형사 존 매키가 거의 전부이다. 이들이 길게는 25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다. 조연으로 나오는 마님 ‘베라’역을 맡은 쥬디 파피트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젊은 마나님에서 중풍든 늙은이까지 상당히 어려운 역을 자연스럽게 해냈고 이지적이고 냉정한 차가움에서 점차 돌로레스의 친구로 바뀌는 그 따뜻한 인간성의 표현이 마음 아프면서도 감동을 주었다. 또한 정의의 화신인 존 매키 형사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로머’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바로 일곱 아이의 아버지인 폰트랩 대령 역을 맡았던 유명한 사람이다. 연륜이 있는 만큼 연기력 또한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몇 개의 함정과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주 자세하게 논의하는 것은 이 글의 한계로 접어두고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 먼저, 여성의 우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만큼 여성의 입장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여성의 우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5년 전에 돌로레스는 부자집의 하녀로 들어간다. 주인마님은 물론 ‘베라’이다. 이 둘은 당연히 주인과 하녀의 사이로 시작한다. 하지만 겨울 여행을 떠났던 베라와 남편 잭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베라만이 돌아오게 된다. 그전에 설정된 내용은 베라의 남편 잭이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애정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베라가 돌로레스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을 때, 베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돌로레스가 몇 년동안 푼푼이 모아두었던 돈을 은행에서 빼낸 술주정뱅이 남편이 딸인 셀레나까지 성폭행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돌로레스는 그 충격 때문에 깊은 절망과 슬픔에 잠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세라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라고 설득하고 돌로레스의 말을 들은 베라는 자신이 어떻게 남편을 죽였는지 말한다. 그리고 ‘더 큰 사랑을 위해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돌로레스를 위로한다.
관객은 이미 모든 정황을 알아차린다. 베라는 잭의 차브레이크를 고장낸 다음 교통사고로 죽은 것처럼 만들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베라는 돌로레스의 술주정뱅이 남편을 죽이라는 암시를 한다. 두 여자의 우정은 이렇게 같은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동일한 대상, 남편이라는 남성지배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공감대를 통해 여성의 우정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15년 전에 집을 떠나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전화조차 하지 않았던 딸 셀레나와 돌로레스의 우정이다. 두 사람은 모녀사이지만 딸은 엄마를 증오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오해는 엄마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풀리게 된다. 셀레나는 엄마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는지 마침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화해로 이 사건은 행복한 결론으로 나아간다.
여성의 우정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남성들은 폭력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지배를 드러내고 있다. 돌로레스의 남편은 술주정뱅이에다 아내를 구타하는 전형적인 악당이다. 게다가 아내가 푼푼이 모은 딸의 장학금 통장을 털어서 도박과 술로 날리거나 딸을 성추행하는 인간쓰레기이다. 결국 아내의 꾀임에 빠져 죽음을 당하지만 그의 죽음을 아무도 동정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돌로레스가 은행에 쫓아가서 은행장에게 따질 때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즉, 돌로레스는 자신이 여자였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 몰래 통장을 해약할 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남편의 통장을 몰래 돌로레스가 해약하려 했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확인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즉, 모든 남성은 여성을 얕잡아보거나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도 마찬가지이다. 30년동안 86건의 살인사건을 맡았던 존 매키 형사는 그 가운데서 85건을 해결했다. 정말 훌륭한 형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사건, 바로 18년전 돌로레스의 남편이 실족사한 사건에 대해서는 ‘살인사건’이 아니라 ‘실족사’로 처리를 하고 말았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기 때문에 돌로레스를 기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존 매키 형사는 자신의 명예에 오점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베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돌로레스의 사건을 맡는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돌로레스를 살인자로 몰아가려는 존 매키 형사의 태도는 마지막에 셀레나의 날카로운 기자 본연의 모습이 나오면서 참담하게 무너진다.
이 영화가 가지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영상에 있다. 영화는 영상의 미학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스토리와 주제가 아무리 좋아도 영상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아름답지 못하면 실패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매우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 장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 컬러를 달리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고 있다. 또한 이미지의 흐름이 동일한 현상, 이를테면 문을 닫는다든가 커피를 마신다든가 하는 행위에서 연속적으로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고 흥미있게 보였다.
135분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흥미진진하고 감동에 젖어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오락용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영화가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단순히 오락의 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서 감정을 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감정을 정화한다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심각한 발언을 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는 도구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삶의 내면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에 나타난 여성의 삶...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힘들게 살아왔던 삶을 이 여성을 통해 보여주면서 모든 여성의 삶에 대해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가족관계 중의 하나가 어머니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딸 셀리나 클레이본의 관계이다. 가정부 일을 하게 된 돌로레스는 어린 딸을 돌보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홀로 집에 남겨 둘 수밖에 없게 된다. 돌로레스가 고용인 베라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딸에게 신경을 계속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미국 영화에서 돌로레스는 한국적 어머니상에 매우 근접해 있다. 그녀는 딸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희
생한 것이다. 그리고 우선 베라는 제외하더라도 돌로레스는 모성애라는 것 때문에 살인이 정당했다고 ...

 

명석하고 날카로운 문체를 자랑하며 뉴욕에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셀리나에게 어느 날, 발신인을 알 수 밝히지 않은 한 장의 팩스가 날아든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돌로레스가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지방의 신문기사였다. 셀리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돌로레스를 찾아간다. 15년만에 만난 두 모녀는 가슴속에서 과거의 악몽과 회한들이 거꾸로 역류하는 것을 느낀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 지방 여류 부호인 베라 도노반을 살해한 혐의로 곧 정식 심리를 받게 될 예정이나, 그녀는 여전히 변호사 선임을 완강히 거부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18년 전 돌로레스는 사랑하는 딸 셀리나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베라 도노반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술주정뱅이 남편의 학대에 몸과 마음이 상할대로 상하고, 저택에서는 깐깐하고 인정머리 없는 베라 밑에서 손등이 터지도록 고된 일을 하면서도,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셀리나를 위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돌로레스는 남편이 딸 셀리나를 성추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녀는 그동안 저금한 돈을 찾아 셀리나와 도망치려 하지만, 그 돈마저 남편이 빼돌렸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돌로레스의 사정을 알게된 베라는 함께 격분하며 '이 세상의 수많은 사고사가 모두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암시해준다. 며칠 후 개기일식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일식으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순간 술에 취한 남편이 낡은 우물에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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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국 헐리우드 영화라고 하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다. 제국주의의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 하고 무력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악랄함, 여러 가지 방법론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영화`일 것이다. 미국 땅에서,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이고 `돌로레스 클레이본` 역시 그에 속하지만 기존 다른 영화처럼 그들의 우월성이라든가 세계패권주의를 다루지 않는 이런 영화는 환영한다. 또한 서양 영화보단 동양 영화를 좋아한다. 유럽식, 미국식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 할지라도 나의 정서와는 조금 어긋난 듯 하고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주로 인물 면에서 한국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 주인공인 돌로레스가 딸 셀리나를 향한 애정과 교육열, 가사노동을 짊어진 모습에서 한국의 아줌마를 연상케 했고, 남편 죠를 보면서 무능·무식하고 악(惡)한,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하는 처자식 내팽개치고 막 살아가는 가장(家長)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자식을 향한(이 영화는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모성애를 유감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남성 우월주의와 맞서는 패미니즘, 남편에게 지배당하며 여자로서 온갖 멸시와 불평등을 받아야 하는 한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게 있다면 여성해방운동(?)을 주제로 다루면서 상대역인 남편 죠의 역할이 딸을 성추행이나 하고 부인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학대하는 극소수의 무능한 사람을 등장시켰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을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 예전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보수적이고 고집 센 황놀부처럼 전형적인 남성 우월주의의 표상을 등장시켜 그것에 맞게 패미니즘을 얘기했으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여성의 권위 신장을 외치고 패미니즘을 얘기하려고 했으면 좀 더 제대로 된 남성을 등장시켰으면 하는 마음에서 얘기를 한 것이고 엉뚱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걸작선 4 
스티븐 킹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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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대중작가이고, 호러킹이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다작을 하는 인물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위대한 이념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내는 것에 집착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대중 친화적 성향 때문인지 그가 쓴 작품은 늘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는다. 글을 써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작가이자, 유령이나 흡혈귀, 초능력자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노벨문학상 후보로조차 거론될 리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지는 않더라도 <돌로레스 클레이본>같은 작품이 세계문학 전집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최근 다시 출간된 중편집 <사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진부한 설정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가령 주인공 돌로레스가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한 이유 같은 것.) 소재를 파고드는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아쉽다.(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여자이자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성찰 같은 것.) 하지만 그의 용광로에는 순도 높은 걸작만을 걸러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끓고 있다. 그는 그냥 결대로 이야기들을 온전히 가려내기에도 바쁜 것이 아닐까.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읽으며 떠오른 또 다른 생각들.

1. 스티븐 킹은 욕을 아주 잘한다. 욕설은 그의 작품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데, 번역된 것만 보더라도 수위가 대단하다. 스티븐 킹 식으로 말하면, 기름 때 찌든 고기집 방석을 씹어 먹었는지 입이 건 인물이 매번 등장한다. 역시 번역의 문제로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욕설은 종종 캐릭터를 강화하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욕설들을 원문에서 확인해보고 싶은데, 미국인들이 실생활 속에 쓰는 욕일까?

2.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개봉했을 때 페미니즘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영화도 보지 못했을 뿐더러,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었다는 것도 몰랐고, 스티븐 킹의 소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으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스티븐 킹이 매우 남성적인 시선을 가진 작가라는 것.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더 놀라웠다. 시종일관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일인칭 진술로 진행되는 소설의 육성은 육십대 아줌마의 그것이었으니까!

3. 결국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TV에서 띄엄띄엄 본 걸로 기억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각색을 했더라? 이건 영화라기보다 한편의 모노드라마에 가까운데 말이다.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보았던가

아마 2004년 쯤?

두 번을 보았는데, 지금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세 명의 여자,

그녀들의 삶을 응시하며 참 많은 연민으로, 참 많이도 울었던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

남편의 학대와 술수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딸과 함께 도망을 가려고 하는 여자,

 게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딸을 성폭행한 남편에 대한 분노...

개기일식날, 우연한 사건으로 남편이 오래된 우물에 빠져 죽게 되고

그녀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다

증거불충분으로 혐의를 벗게 되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냉대와 괴롭힘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증오하며 집을 떠난 딸을 반듯하게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허리가 휘고 손발이 얼어터지도록 남의 집 일을 한다

그녀에게는 참으로 눈물겨운,  들풀같은 삶의 인내와 의지가 있다

 

셀리나 조지.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좋아하고 따르던 그녀,

그러나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면서부터 그녀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오히려 엄마에 대한 증오심을 키운다

뉴욕으로 떠난 그녀는 명석하고 날카로운 글로 유명해진 기자가 되어있다

어느 날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팩스 한 장을 받게 되고,

거기에는 18년 전 아빠를 살해한 범인으로 엄마가 구속되었다는 신문기사의 내용이 들어있다

그녀는 여전히 엄마를 의심하며 내키지 않는 귀향을 한다

게다가 그녀는 아빠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의식에서 지워버린 채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심한 신경쇠약증에 시달리고 있다

 

베라 도노반.

우아하고 아름다운, 돈과 명예를 다 가진 한 남자의 아내.

겉으로 보면 그들은 부러울 것이라곤 없는 완벽한 부부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기는 커녕 무시당하기 일쑤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그 남편은 늘 밖으로만 돈다

자존심에 끝없이 상처를 받고 살아가던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때론 악녀가 되어야한다는 삶의 지론을 갖게 된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남편이 죽게 되지만 그녀는 결코 슬프지 않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비싼 가구를 들이기도 하고, 성대한 파티를 열기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그녀에게는 화려한 삶의 뒤에 감춰진 쓸쓸함과 외로움이 있다

 

내가 특히 주목하게 되는 두 사람의 관계.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베라 도노반...

남편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끝없이 마음의 상처를 담고 살아가던 그녀들은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여자와 가진 것은 몸뚱이 뿐인 여자로 만나지만

주인과 하녀라는 신분을 넘어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돌보는 관계가 된다

베라는 허구헌날 돌로레스를 까칠하게 대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시켜대지만

그들 사이엔 어느새 서로에 대한 연민과 동정, 동병상린의 진한 자매애가 자리잡게 된다

베라는 돌로레스의 처지에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고 셀리나의 성공을 함께 기뻐해 준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돌로레스도 모르게 돌로레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한편 돌로레스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진, 늙고 병든 자신의 육체마저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베라를 위해

그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면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고자 한다

그녀들을 보며 나는 '자매애'와 '친구'라는 두 단어에 깊은 공감을 가졌다

 

사건이 종결되고

다시 엄마를 떠나는 딸 셀리나.

그녀는 이제 엄마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향한 엄마의 조건없는 사랑을 느낀며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돌아가는 배 안에서 어린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던 아빠를 기억해 낸다

돌로레스의 바람처럼, 그녀가 약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의 신경쇠약증을 씩씩하게 잘 이겨내기를...

 

딸을 다시 떠나보내는 엄마 돌로레스

자신을 그토록 증오했던 딸이지만 그런 딸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떠나는 딸에게 '내 걱정말고 너나 잘 살라'는 그녀의 담담한 당부가 왜 그렇게 눈물겨운지...

 

베라가 없는, 아니 '친구'를 잃은 그녀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갈까

떠나는 딸의 빈자리보다 떠나버린 '친구'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서

부둣가에 서서 손을 흔드는 그녀가 더 텅비어 보였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