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부의글

겨울 숲에서

까망쑤나 2008. 2. 28. 23:30
겨울 숲에서 - 홍사성

        겨울 숲에서 /홍사성 사람 사는 것이 나뭇잎 하나 돋아났다 떨어지는 그것보다 나을 게 없다.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아무리 하려하게 옷 갈아입고 변신해도 화살보다 빠른 시간의 눈길을 피할 재간이 없다. 어느 서리 내린 가을날 바람 불고 찬비까지 흩뿌리는 저녁 무렵 가랑잎 굴러가듯 쓸쓸하게 온몸 부르르 떨며 나뒹굴어야 한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곳에 처박혀야 한다.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승 사람들이 쓰레기 소각하듯 무심하게 불을 지피면 사랑 몇 올 미움 몇 조각도 남기지 못한 채 금방 싸늘한 재가 되어야 한다. 바람 속으로 하얗게 날아가야 한다. 아, 그래도 살아 있는 날에는 그것이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고 이슬이고 번갯불 같더라도 거기서 눈물 흘리며 살아야 한다. 푸른 잎은 더욱 푸르고 붉은 잎은 더욱 붉어지려고 바위처럼 단단하게 언 땅에서 물을 길어 올리며 한 겨울에도 맨살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처럼 날카로운 비명 지르며 그렇게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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